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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3회)

박문영
2020년 06월 25일



―안락사가 널리 퍼진 사회가 사회인가요. 이게 허용되면 노년층은 늙은 사람들이 아니라, 아직도 안 죽은 사람들로 보일 겁니다. 법이 살고 싶어하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모욕을 가하는 거라고요. 
 
―살고 싶을 거라고 믿는 근거는요? 그저 단순하고 무책임한 희망 아닙니까? 활동가님은 아까부터 죽음과 불행을 동일시하고 있잖아요. 그게 몰이해고 대상화 아니냐고요. 누가 더 비정한지 말씀해보세요.
 
반복되는 토론엔 생기가 없었다. 좌담을 여는 것 자체가 위선이란 말, 위선도 일종의 윤리란 말이 서로의 꼬리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세워졌다 무너지는 정책을 구경하는 이들은 불가한 각오를 품었다. 늙지 않겠다. 아프지 않겠다. 도움 받지 않겠다. 통증과 무력이 피할 수 있는 일 같았다. 멀어 보였다. 발의 후 차일피일 연기되던 안락사 합법화 법안은 통과되자마자 이전 세상을 낯설게 만들었다. 
 
안락사 심의의원회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는 데는 보통 1년 정도가 걸렸다. 이 기간이 너무 길다는 이들과 너무 짧다는 이들은 같은 이유를 댔다. 죽고 싶은 사람의 시간을 질질 끄는 것, 급히 마무리하는 것 둘 다 비인도적인 처사라는 게 그 접점이었다.
 
―억지로 떠밀려 죽는 분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보호자에게 짐이 될까봐 자기 선택인 척 구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거예요.
 
―그래서 준비 기간을 넉넉히 잡고 있죠. 당사자가 고통스럽다는데 왜 그 선택을 못 믿어요? 왜 결정을 존중하지 않으세요? 삶이 소중하단 말은 누군가에게 폭력입니다.
 
말기 암, 희귀질환, 중증 치매 같은 경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안락사 준비 기간이 단축되는 사례가 잦았다. 하지만 그외는 매달 자신의 강력한 의지로 죽음을 원하고 있으며 그 상태에 변화가 없음을 알려야 했다. 병원과 재활시설에서 받는 치료가 본인에게 여전히 무용하며 질병에 차도가 없다는 사실 역시 꾸준히 밝혀야 했다. 자가보고 어플리케이션을 쓰지 못하는 이들은 확인서를 지역 안락사 의무분과 홈페이지 양식에 맞춰 제출했고 이런 안내와 절차가 어려운 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보건소에 방문했다. 필수기입란인 서술형 항목에는 대안이 없다, 자살을 택하지 않게 해달라, 빠른 처리를 바란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안락사 희망자들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케어 패치는 상용화에 실패했다. 귀 뒤편에 붙이는 타원형의 작은 고무조각은 분실이 허다했다. 패치는 기름진 피부에 잘 붙지 않았고 접착력을 높이자 발진, 종기, 색소침착 등의 피부질환 문제가 생겼다. 부품 하청업체가 바뀌면 오작동도 늘었다. 패치 안의 금속 성분이 뇌전증과 심장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 후에는 자취마저 감췄다. 부작용을 개선한 제품은 좀처럼 개발되지 않았다. 
 
안락사 희망자들에겐 현장조사원이 통보 없이 찾아가 상황을 점검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대부분 미리 고지가 갔고 파견도 막바지에 몰렸다. 조사원들이 바빠지는 시기는 안락사 이행 후반부였기 때문이다. 9개월간의 보고가 끝나면 다음 3개월은 조사원 또는 상담사의 방문만 이뤄졌다. 7종의 필수 제출서류는 확약서와 증명서 2종으로 줄었고 거기엔 간략한 개인정보와 서명만 필요했다. 해외로 나간 이들과의 연락은 영상통화로 대체했다. 이 외의 것을 검토하려면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쓰여야 했다. 보고 막바지에 이른 안락사 희망자들은 대체로 이전까지와 같은 곳에 머물렀지만 해외를 포함해 휴양지, 종교시설, 요양 호텔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기저귀를 하루에 8번 갈아준다는 프리미엄 실버타운은 대기자가 넘쳤다. 영육(靈肉) 기업 산하의 주마등 임종 연구소는 안락사 후기 연계 기관에 포함되었다. 정부 협력 업체에 새로 선정되면서 입소 경쟁률도 차츰 높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져갈 건 이야기, 당신에게 가장 따스한 주마등을 제공해드립니다. 
 
열두 페이지의 홍보물 하단엔 우유, 견과류, 과일이 놓인 테이블 사진이 반복해 들어갔다. 다른 곳에 삽입된 사진도 노후 보장 보험 광고와 구별하기 어려웠다. 통유리 창밖엔 잎이 번쩍이는 사스레피나무들이 빽빽했다. 배드민턴 가방을 멘 노부부가 산책로에 서 있었다. 떠나는 날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잔잔한 목각 문양이 들어간 캘리그래피가 최종안으로 선택되었다. 어두운 삶, 밝은 죽음이라는 슬로건은 심의의원회의 저지로 쓰이지 못했다. 가족처럼 곁을 지킨다는 표현은 천미조를 비롯한 연구소 내 여성 직원들의 반발로 버려졌다.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은 계속 늘어났다. 완화 의료와 장례 문화에 대한 논의도 꾸준했다. 사람들은 맞이하고 싶은 죽음에 대해, 죽을 때 접하고 싶은 풍경이나 소리에 대해,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이들에 대해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죽는 과정과 환경에 변화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은 나날이 확실해졌다. 주마등 연구소는 안락사가 증가한 고령화 사회에 보다 입체적인 데드 스토리 모델링을 선보였다. 일종의 임종 환경 설계소인 이곳은 누구나 죽는 세상에서, 어떻게 죽을지 묻는 광고를 내보냈다. 지원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한 가상현실 시공간을 체험하며 멈추고 싶은 곳에서 암호를 말하고, 그 후 심장이 정지된다는 사실을 고지 받았다.
 
―저희는 안전상의 이유로 처음과 마지막 기억만 확인합니다. 나머지는 관여하지 않아요. 임종 때 체험하신 영상 기록은 지원자 분과 보호자 분 양쪽 모두가 원할 때만 보여드리고요. 둘러봐서 아시겠지만 불편하지 않게 지내실 겁니다. 지원자 분이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신 순간에는 정말 멈추시겠냐는 확인 질문도 세번 따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상시의 시뮬레이션이나 트레이닝에서 중도에 멈추고 싶을 때는 이 고무공을 누르시면 돼요. 간단하죠.
 
공을 여러번 눌러보는 보호자가 있었고 그쪽으로 아예 시선을 두지 않는 보호자도 있었다. 고무공에 손을 대지 않는 이들은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신경 안정제를 드시는데 괜찮으신가요?
 
―복용하시는 약들은 확인했어요. 처방전을 유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고통 없이 평온하게 떠나시겠죠?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부탁드려요.
 
곧 유가족이 될 이들은 지원자와 조용히 포옹했다. 방문객들의 안면근육은 복잡하고 풍부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고양이 배에 얼굴을 파묻고 싶어요. 머리통도 쓰다듬어야죠. 망고가 엄청나게 큰 모습으로 나오지 않아도 돼요. 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모습 그대로를 보고 싶거든요. 가을 해가 눈부신 날이었는데 귓등과 목덜미에서 카레 냄새가 났어요. 그날 오전에 카레를 만들었거든요. 그게 털에 밴 게 너무 귀여웠어요. 망고와 같이 있게 된다면, 걔를 다시 본다면 다른 소원은 없어요.
 
―하조대 해수욕장에 갈 거예요. 늦여름이고 비수기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4시쯤이라 햇살도 좋았고요. 거기 백사장에서 그 사람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눕고 싶어요. 신이 나서 막 떠들고 있었어요. 원체 장난기도 많았고요. 눈치를 보다 바지춤을 살짝 내려서 자주색 팬티를 보여줬는데 아유,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그때로 가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사별한 아내만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뇌척수염으로 육십도 안 돼 갔어요. 근데 선생 양반, 제가 지금 여든넷인데 아내도 여든 줄로 나와요? 죽었을 때 나이로 나와요?
 
지원자들은 반려동식물, 친구, 배우자, 가족 말고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계속 잃어간 이들이었다. 그들은 평온한 죽음을 원했다. 예정되지 않은 사고를 더는 겪기 힘들었다. 재발하는 암, 편도선과 식도에 집을 지은 염증, 다발성경화증, 디스크가 찢어 놓는 하루가 달력을 다 채웠다. 종교도 순리도 믿기 어려웠다. 식구도 간병인도 무서웠다. 보호자들의 반말, 존댓말, 손길, 눈빛 모두 서늘하기만 했다.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진 우울과 가난도 오래 상대할 수 없었다. 약간의 호의와 격려, 바람 빠진 각오가 꺾이면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었다. 갑자기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게 될 사람, 지난한 절차와 끝없는 비용에 넌더리를 낼 사람, 장례 후에 침울할 사람들을 상상하면 목이 탔다. 고맙게도 주마등에서는 이런 염려 없이 준비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숙식과 간병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가 외부 기관 수준 이상이었다. 지나친 무상 복지라는 얘기가 있었다. 운영이 안정화되고 인지도가 높아지면 고가의 체류비가 책정될 거란 추측이 따랐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피해도 받지 않을 이곳은 안락사 희망자들에게 점점 마지막 둥지로 보였다. 주마등 밖을 나가는 이가 적었지만 주말 이틀은 외출이 가능했고, 아직까지 그런 지원자는 없었지만 3개월이 지나도 임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대가는 터무니없이 간소했다.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눈을 감고 근육을 이완시키세요. 잡념은 잠시 잊고 누운 자세 그대로 충분히 쉬세요. 나는 작아집니다. 천천히,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수록 나는 없어집니다.
 
명상 지도 강사가 지원자들 손목에 아로마 오일을 뿌려주며 말했다. 조도를 낮춘 실내는 침침했다. 허이경은 눈을 뜨고 벽 한편을 쳐다봤다. 거기엔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의 시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모든 타인으로부터 혼자가 돼라.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자신의 존재로부터 은둔을 선택하라. 이 결정 이후에는 말할 수 없고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친구들이여! 작별이네. 나는 죽었네. 옷가지들도 천국으로 가져가겠네. 불구덩이에서 장작처럼 타며 형벌의 고통을 받는 대신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겠네.
 
1207년생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은 자신의 시가 임종 연구소에 쓰일 줄 알았을까. 고른 구절은 이곳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더 석연치 않았다. 허이경은 번질거리는 손목을 코에 갖다 댔다. 은근히 독한 쑥향이었다. 눈이 잘 감기지 않았다. 주마등에 온 후로 불면도 더 심해졌다. 이곳 특유의 고즈넉하고 패배적인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는 미지근한 실패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지하철 1호선에 앉아 있는 기분이, 러시아 소설 한복판에 들어온 심정이 되곤 했다. 청소년수련관 상담실, 도서관 행정실, 복지센터 민원실, 한식 뷔페, 마트. 이 끈끈한 기분은 일터가 바뀌어도 곧장 찾아들던 평정심과 비슷했다. 일정하게 이어지는 선. 체념이란 하강하는 선이 아니라 높낮이가 없는 선일 수도 있다. 흔하고 평평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일직선. 사람들을 조용히 돌아버리게 하는 건 그 완만한 선이 영원해 보이기 때문 아닐까.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도에서 시작해 도로 끝나는 음계,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까꿍 놀이. 안도와 쾌감을 주는 반복이란, 끝없이 둥근 순환이란 어느 순간 왜 광기로 이어질까. 갑자기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허이경은 급히 그곳을 나왔다.
   
―언니, 명상도 해? 가지가지 한다.
  
다른 지원자들의 말처럼 무례한 장에스더였다.



4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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