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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강성은
2020년 06월 30일



공동주택


냄새가 나요. 설명할 순 없지만 안 씻어서 나는 냄새예요. 냄새가 배수구를 통해서도 올라오고 환풍기를 통해서도 올라와요. 베란다에만 나가도 냄새가 나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빈 집이래요. 그런데 가끔은 음식 냄새가 올라와요. 청국장 냄새도 나고 카레 냄새도 나고 삼겹살 굽는 냄새도 나요. 저는 8개월 전에 이사 왔는데 아래층은 벌써 일년째 비어 있대요. 제가 냄새에 시달린다고 하면 다들 제가 이상하다고 해요. 냄새는 바람을 타고 오기도 해 가까운 집에서 나는 게 아닐 수도 있대요. 남편도 냄새는 나는데 우리 집 냄새 같다고 해서 더이상 말 안 해요. 그 사람은 된장찌개와 순두부찌개 냄새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몸에서 냄새 나는 것도 몰라요. 나보고 보통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하다고만 해요. 전 살면서 이렇게 또렷하게 냄새를 느낀 건 처음이에요. 삶이 망가지는 기분이에요.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아무 말도 안 해요.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휴지로 닦고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런 얘기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까. 
  
  
아침마다 아래층 피아노 소리에 잠에서 깨요. 아침 8시부터 피아노를 친다니까요. 아이라면 학교에 갈 시간이고 직장인이라면 출근할 시간인데, 그 시간에 피아노를 치는 걸 보면 백수가 분명해요. 8시부터 시작해서 몇시간이나 치니까요. 아침부터 잠을 설치는 게 힘들어서 아랫집 문에 써 붙여놨어요. 피아노를 치려면 오후에 치든지 방음장치를 해주세요. 소음 피해가 너무 큽니다. 요렇게요. 
  
그런데 계속 치는 거예요. 다들 출근하고 집에 없는지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지. 어느 날은 못 참고 내려가 문을 두드렸어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소리를 질렀죠. 
  
피아노 소리가 멈추더니 문을 연 사람은 자그마한 할머니였어요. 틀니를 빼놓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듣겠더라고요. 자세히 들어보니 빌어먹을 피아노가 없다는 거예요. 들어와서 확인해보라고 하더군요. 들어가봤더니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고 할머니 혼자 사는지 오래된 가구들만 몇개 보이는 단출한 집이었어요. 둘러봐도 피아노가 보이지 않더군요. 이상한 일이죠. 피아노 소리는 그 집 문을 두드린 후부터 멎었는데 말이에요. 미안하다고 다른 집인가보다 하고 사과했어요. 할머니는 뭐라고 하는데 발음이 새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나왔어요. 그날 오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구요. 
  
다음 날 아침 또 피아노 소리에 잠이 깼어요. 아무리 봐도 아래층이 분명해요. 그 집 현관 앞에 가면 더 잘 들리거든요. 할머니가 피아노를 숨겨둔 게 틀림없어요. 
  
남자는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차라리 피아노 소리면 나을 것 같아요. 클래식이잖아요. 여기는 일년 내내 캐럴을 들어요. 이젠 지긋지긋해요. 캐럴 좀 틀어놓지 말라고 했더니 무슨 상관이냬요? 얼마나 우울한지 아세요? 말도 못하게 축축 처져요. 
  
밤 늦게까지 듣는 거예요? 
  
아침부터 틀어놔요. 
  
아침엔 괜찮지 않아요? 
  
당신도 일년 내내 아침마다 똑같은 음악 들어보라구요. 그것도 슬픈 캐럴송을. 미쳐요. 
  
무슨 곡이죠? 
  
캐럴은 다 똑같아요. 곡명은 중요하지 않다구요. 
  
  
놀라운 얘기 해드릴까요. 전에 살던 아파트 옆집에서는 바퀴벌레를 배양하는 연구원이 살았답니다. 그가 바퀴벌레를 키운다는 걸 이사 나갈 때까지 몰랐어요. 이삿짐이 뭔 상자가 절반이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바퀴벌레집이라는 거예요. 바퀴벌레 퇴치약을 연구하고 있대요. 세상에 집에서 그런 걸 키우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나타나도 몰랐어요. 바퀴약 뿌리고 붙이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그 후로부턴 옆집에서 무슨 짓을 해도 놀랍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사 가고 난 후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은 개를 키우더라고요. 
  
개를 키우는 사람은 많잖아요.  
  
개를 키우는 사람은 많지만 개를 주인님으로 모시는 사람은 없잖아요. 옆집 사람은 자기가 키우는 개의 종이에요. 진짜로 우리 개님이라고 한다니까요. 하루는 복도에서 자고 있길래 깜짝 놀라서 뭐하시냐고 물었더니 개님에게 쫓겨났대요. 개님이 잠들면 집에 들어갈 거라고 하더군요. 왜 그렇게 사는지. 물론 제게 딱히 피해주지는 않죠. 그런데 불안해서 미치겠어요. 옆집에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자다가 무슨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요. 그 집 개는 멀쩡해 보이는데 개주인이 미친 거 같아요.  
  
오 저는 이해해요. 우리 아파트에도 개를 스무마리 넘게 키우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개주인이 안 보여요. 개 소리만 들려요. 그 사람 혹시 개가 됐나 싶기도 하고.  
  
개들이 안됐어요. 
  
  
제 고통의 원인은 조금 다른 문제예요. 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이 맘에 들지 않아요. 왜 거울이 그곳에 있는 걸까요? 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이 있어야 할까요. 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내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걸까요? 게다가 밀폐된 공간이잖아요. 특히 한밤중 엘리베이터를 타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닌데. 눈을 마주치면 나인 것처럼 빤히 나를 보는 게 너무 싫어요. 그래서 출입문 쪽을 보고 있으면 내 뒤통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져요. 뒤통수에 피가 쏠리고 숨을 못 쉬겠어요. 처음엔 엘리베이터에 광고전단지를 잔뜩 붙여놨어요. 몰래 거울도 깼어요. 그런데 내가 한 짓이라는 걸 들켜버려서 이젠 계단으로 다녀요. 7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니 운동도 되고 좋아요. 피곤한 몸으로 퇴근할 때나 장 봐서 무거운 거 들고 오를 땐 좀 힘들지만 엘리베이터 타긴 더 싫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계단을 오르다보면 저도 모르게 계속 올라가요. 딴생각에 빠져서. 사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으면 꼭 사람들이 딴생각에 빠져 있다고 해요. 생각이 공간이라면 아마 아무도 없는 계단 같은 곳인가봐요. 혼자서 계속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고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있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게 좋아요. 28층까지 올라가서야 더 올라갈 계단이 없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러면 오늘도 여기까지 와버렸네, 생각하고 다시 내려와요. 우리 아파트가 100층이었으면 100층까지 올라갔겠죠. 이게 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때문이에요.  
   
  
우리 집엔 새가 날아와요. 너무 많은 새들이 날아와요. 매년, 매 계절, 어떨 땐 매일. 처음엔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옆집인가 했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소리가 들려서 살펴봤더니 베란다 유리창에 금이 가 있는 거예요. 뭔가 부딪혔다는 걸 알았죠. 새인가 싶어 아래로 내려가봤는데 바닥에 떨어진 새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잊을 만하면 한번씩 새가 유리창에 부딪혔어요.  
  
한번은 금방 비가 쏟아질 것처럼 실내가 어두워져서 베란다 유리창을 닫는데 멀리서부터 새떼가 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먹구름인가 했어요. 먹구름이 저렇게 낮게 떠 있네 생각하는 순간 새들이 눈앞에 다가와서 유리창에 부딪혀 아래로 모래알처럼 우수수 떨어졌어요. 문고리를 쥐고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해가 나고 날씨가 환해졌어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1층으로 내려가봤어요. 하지만 떨어진 새는 한마리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 아파트엔 새들이 유리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대요. 다들 어떻게 견디나 했는데 주민들이 대수롭잖게 말해요. 멍청한 새가 가끔씩 유리에 부딪혀 죽는다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멍청한 새가 멍청한 짓을 한 것뿐이라고. 
  
베란다 유리창이 튼튼한지 여기저기 금이 간 채로 몇년을 버티고 있어요. 언젠가는 와장창 깨져버릴 것 같아요. 그런데 새로 유리를 갈아 끼워도 얼마 못 가 또 금이 가겠죠. 작은 새 한마리도 온몸으로 돌진하면 흔적을 남기니까. 왜 새들이 우리 집 베란다로 돌진하는 걸까요. 우리 집이 새들의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걸까요. 그 새들이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 집에는 버려야 하는 책이 많아요. 전 주인 앞으로 배송된 책이죠. 많을 땐 하루에 열권이 넘어요. 일주일이면 사오십권 정도 되고요. 한달이면 이백권이 넘어요. 전 주인은 죽었어요. 그는 독신자였고 가족도 없어요. 
  
팔 수는 없나요? 
  
그것도 일이죠. 대부분은 팔리지 않는 잡지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이에요. 버리려고 분류하고 헌책방에 가져가는 게 더 골치 아파요. 쌓아둘 데도 없고, 쌓아두면 버리는 데 더 힘이 드니까 이삼일에 한번씩은 꼭 가지고 내려가서 버려야 해요. 책이 얼마나 무거운 물건인지 여기 이사 오기 전엔 몰랐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 집에 살고 있어요? 
  
들어본 얘기 중에 가장 끔찍하네요.
  
모두들 경악한 얼굴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나요? 
  
처음엔 보내오는 곳에 일일이 전화를 했어요. 그럼 알겠다고 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또 오기 시작해요. 
  
뭐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책이 많이 와요? 
  
작가였대요. 내가 이름을 알 만큼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는데. 
  
종이가 아깝네요. 
  
나무가 불쌍하네요. 
  
가끔은 죽은 작가와 한집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여전히 그의 앞으로 매일 책들이 도착하니까. 난 그 집에 살며 그의 책을 정리하고 관리해주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남자는 울고 싶을 때마다 살짝 웃는 버릇이 있었다. 
  
첫번째 모임이 끝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이웃의 불행과 나의 불행을 견주어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너무 깊이 빠지지는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누구나 혼자였다. 관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남자는 알았다. 오늘은 책이 한권도 도착하지 않았군. 이상한 일이네. 문을 닫고 복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책이라곤 한권도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문득 죽은 남자를 떠올렸다. 문 앞에 매일 쌓인 책들이 있어 그는 덜 외로웠을까.  



5회에 계속됩니다.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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