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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4회)

박문영
2020년 07월 02일



―사람 놀라게 하지 마. 염탐하는 게 자랑이야?
  
―와, 난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되게 자기중심적이네.
  
―그럼 지나가.
  
―그래도 반말 써준 사람은 처음이니까 하나 알려줄게. 여기 교습 중엔 그나마 글쓰기반이 제일 나아. 저 명상 강사, 자격증도 없어.
  
연구소엔 각종 취미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역구가 운영하는 보통의 문화원 강좌와 커리큘럼이 비슷했다. 요가와 명상, 그림, 글쓰기, 초급 기타, 합창, 공예 등의 수업이 다목적실이란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졌다. 책걸상의 배치가 자주 바뀌었다. 
  
―자기 고유의 시선과 해석이 기억을 강화시켜줄 거예요. 감정을 되도록 솔직하게 쓰셔야 해요. 그래야 소중한 걸 포착할 수 있어요.
  
―아유, 내 생각은 별 볼일도 없는데요. 변변찮아.
  
―이거 골만 아프네. 선생님, 이럴 거면 저 공예반 가요. 가서 손녀 얼굴이나 빚게. 
  
―관둬. 하나도 안 닮았을 텐데. 
  
첫 수업 때는 지원자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교실 공기가 산만했다. 강사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각자의 우주는 작은 말로 이뤄져 있다고 가르쳤다. 글쓰기 반에서는 일기나 수필을 시작으로 유서까지 쓸 수 있었다. 유서의 내용은 회를 거듭할수록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건 남겨진 사람에게 공표할 목적이 짙은 일반 유서와 달리 자신만을 위한 기록, 그러니까 주마등으로 삼을 일화를 발굴하기 위한 서술에 가까워졌다. 
  
―오늘 거 읽어줄게. 그날 아침에 풍기 갔다가 저녁에 대전 도착했다. 전화가 계속 왔는데 양손에 짐이라 지하철 보내고 받았더니 고객이 계약 해지하고 싶다고 했다. 약콩효소, 행주, 까마중 잼, 영화티켓, 커피쿠폰. 다 받아놓고 보험금 몇달치도 내가 대신 내줬는데 또 딴소리다. 작은 딸내미가 무랑 새송이랑 표고를 넣어 밥을 지어놨다. 달래 간장에 마른 김에 싸먹으랬다. 표고 줄기를 더 불려야 안 질긴데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발마사지를 해준대서 놀랐다. 간지러워서 더 세게 때리라 했다. 내가 코를 골며 잤다고 했다. 
  
―이거 네가 쓴 게 아니잖아.
  
―염재선, 이 사람은 임팩트 넘쳐. 딱 한줄. 아들 내외랑 통화했다.
  
―그만 읽어. 그거 자리에 도로 갖다 놔.
  
허이경은 노트를 빼앗으려고 했다. 장에스더는 몸을 피하며 말했다.
  
―웃기지 않아? 가본 적도 없는 주제에 화성에서 죽고 싶다는 사람, 모래 결정 속에서 죽고 싶다는 현미경 렌즈 제작자도 있어. 외워버린 이야기도 말해줄까. 
  
―내놔. 당장.
  
―어떤 남자는 꿈에서 자기 성기가 사라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행복했대. 교도소에서 애기를 낳은 여자는 운동장에서 아이가 달려와서 안길 때 애를 끌어안고 죽고 싶다더라. 감동이지? 마라톤 대회에 나갔던 여자도 있어. 그 여자가 옛날 애인한테 그 동네를 지난다고 했대. 마라톤 코스니까 혹시 나와 있으면 얼굴 볼 수 있을 거라고. 근데 그 사람, 진짜 집 테라스에 나와 있었대. 여자가 자기 알아보기 쉬우라고,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구도랑 똑같이 수국 화분 옆에서 케틀 벨을 들고! 그 여자는 애인을 10초쯤 봤대. 그리고 또 달렸대. 이 사람, 그 순간으로 다시 가서 죽고 싶다고 썼다? 
  
허이경이 장에스더의 노트를 가로챘다. 
  
―꼴사나운 애네. 너는 얼마나 대단하게 죽게?
  
허이경은 말을 뱉자마자 그가 십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배 꼬인 심성을 부풀리고 하한선 아래를 질릴 때까지 드러내는 나이였다. 이래도 좋아할 거야? 이래도 상대할래? 소리 없이 성인들을 시험한다. 인내심, 관대함, 아량.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소용없다. 한번 응하면 엇비슷한 목록의 평가가 내내 이어질 것이다. 허이경은 장에스더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만 이고 오는 아버지, 도망갔거나 방관하는 어머니. 지겹지만 강력한 원인이었다. 양육자가 아니더라도, 가정 밖에서라도 이런 역을 충실히 맡을 인물들은 널리고 널렸다. 장에스더의 뇌엔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엉망으로 흐를 수 있다. 지원자들이 꺼려하는 이 아이는 조현병이나 의존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을지도 몰랐다. 보호받아야 할 기간에 겪은 건 가난과 폭력이었을 확률이 컸다. 이곳에 너무 일찍 들어왔다는 게 그런 이력을 증명했다. 허이경은 말려 올라간 그의 소매를 쳐다봤다. 팔뚝에 실금이 가득했다. 그도 아는 창피하고 친숙한 흉터였다.
  
―미안해. 말이 너무 심했어. 
  
장에스더가 대꾸 없이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허이경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센서 등이 연이어 켜졌다. 어둑했던 복도가 환해졌다. 다목적실 앞에 선 그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거 제자리에 두고 올래?
  
허이경이 장에스더에게 노트를 건넸다. 문을 열고 나온 그가 허이경을 따라 복도에 앉았다. 
  
―다리 알 배긴 것 같아. 살 빼서 잘 달릴 줄 알았는데. 
  
―뭐 하러 뺐어?
  
장에스더가 턱에 난 여드름을 오래 만지다 물었다.
  
―언니는 왜 죽지 말란 말을 안 해?
  
허이경은 그의 가는 머리카락과 부르튼 입술을 몰래 쳐다봤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건 이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함부로 샅샅이 보는 건 자신이었고, 그 각도와 화소를 티 나지 않게 조율할 수도 있었다. 
  
―결정이 바뀔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일단 네가 고민해서 내린 선택이니까.
  
―다 말렸어. 혀 차고 화내고. 근데 죽지 말라고만 하고, 왜 죽으려고 하는지는 안 물어.
  
둘의 보라색 유니폼이 더 칙칙해졌다. 해가 진 지 오래였다. 실내 등도 꺼져 있었다. 장에스더는 양손으로 무릎 하나를 끌어안았다.
  
―언니는 그런 거 없어? 난 둘째 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같지 않아. 여길 두번째 발가락 자리로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어. 이상하게 셋째 같아. 다른 발가락은 순서가 맞는데 두번째 발가락은 평생 없는 것 같아. 
  
―평생?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허이경은 그가 곧 마음속 해묵은 짐을 풀어놓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의존과 집착의 계기는 이렇게 사소하다. 상대를 좀먹는 피폐한 관계도 가벼운 호감에서 출발한다. 다른 곳에서라면 달아났겠지만 여기라면 상관없지 않나. 노력하지 않기 위해 온 곳이니 극복할 것도 없다. 될 대로 되겠지. 더는 힘내라는 말을 듣지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에스더가 말을 이었다. 
  
―팸 언니들을 따라 업소에 갔어. 안 가면 오빠가 때리니까 말로 할 때 가야지. 술 마시면서 얘기만 들어주면 된다고. 믿지도 않았어. 다들 성병 예방약을 먹고 있으면서, 성기에 옮은 부스럼 치료나 하고 있으면서 말만 번지르르. 터진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격려를 하더라. 그래서 업소 사장이 방으로 들어가라는 말에 놀라지도 않았어. 삼십대였나. 양복에 넥타이에 멀쩡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술을 따르고 있더라고. 날 보더니 볼 가까이 입술을 내밀다가 한숨을 쉬어. 막 갑갑하다는 표정. 한참 있다가 가슴을 보여달래. 그래서 웃옷을 벗었어. 남자가 가만히 있더니 나가라네. 네? 그냥 나가요? 고개를 내려다봤지. 가슴 밑에, 살에 눌려 생긴 갈색 땀띠가 있었어. 오돌토돌했어. 모공도 넓고. 누가 잠깐 자는 것도 싫어할 몸뚱어리. 2년 전 고도비만이었을 때야. 그날 옷을 다시 입으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누가 욕심조차 안 내. 어린데도 거들떠보질 않아. 다 거지 같았어. 
  
장에스더가 무릎에서 손을 내렸다.
  
―나도 둘째 발가락 같은 거야. 태어났는데 태어난 것 같지가 않아. 이 자리가 아니야. 난 여기 없어. 살고 있는데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만 들어. 
  
―에스더, 원하면 누구와도 잘 수 있어. 근데 그놈이랑 안 잔 걸 다행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몸은 누구랑 잠깐 자라고 있는 게 아니야.
  
장에스더가 인중을 긁으며 웃었다.
  
―언니는 왜 여기까지 왔어?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어. 마트에서 집에 오는 길에. 15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이튿날부터 장에스더와 허이경은 같은 방을 썼다. 종종 있는 일이라 운영팀이 불허할 이유는 없었다. 손등의 한포진을 터뜨리고 있던 장에스더의 룸메이트는 부탁을 듣자마자 짐을 꾸렸다. 얼굴빛이 누리끼리한 간병인이 침구와 욕창방지 매트를 들어냈다. 허이경은 그가 떨어트린 기저귀 박스와 스도쿠 책자들을 주워 건넸다. 



5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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