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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5회)

박문영
2020년 07월 09일



―오늘만 같이 있을 거야. 미안해.
  
―와, 안녕. 네가 태현이니? 
  
이렇게 안 귀여운 아이는 처음이다. 천미조는 정오의 아들을 보고 맥없이 웃었다. 입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자라날지, 어떤 인간이 될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인상이었다. 피부와 관절은 연해보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무리하게 뒤틀며 나온 생물이다. 아이는 더디고 지루하게 성장한다. 척추, 혈관, 기도, 망막, 뇌 전부 허약하다. 정오는 이 혈육을 기르며 늙어갈 것이다. 그가 아내와 재혼할 확률은 없어 보였다. 몇번의 별거와 몇번의 재결합 후에 벌어져버린 틈이었다. 아이와 출근한 정오의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부기가 심했다. 여느 기혼자들의 기억처럼 그도 결혼 전에 더 평온했을지 궁금했다. 천미조는 정오의 등판을 쳐다봤다. 아이를 보조침대에 앉힌 그가 말했다.
  
―미조씨, 데이터를 보다보면 사람이 책 같지 않아? 어쩌면 다들 소설로 살다 시로 죽는 게 아닐까.
  
―뭐? 참신해서 소리 지를 뻔했어. 늦게 와서 왜 이래.
  
천미조는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는 정오의 얼굴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코털을 발견했지만 모른 체했다. 정오는 어제 죽은 지원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누군가를 끈기 있게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아들을 만난 여자는 그의 팔뚝을 오랫동안 어루만졌고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정오는 천미조에게 그 장면을 보며 울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천미조는 양육자들이 품는 애착과 집착은 한끗 차이이며, 정오가 받았다는 감동의 상당 부분은 그의 이기심과 가학성 때문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토록 절실한 기다림이란 고통이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모성애 안의 맹목성을, 그 전에 강요된 모성을 좀 살피라고 조언할 수도 있다. 천미조가 의자를 완전히 돌리고 말했다.
  
―누군가 정독해주길 바라지만 끝내 안 펼쳐지는 책이 많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네. 그렇게 보면 소설도 시도 아니지. 아무도 안 읽는 희곡 아냐? 근데 알잖아. 기억들은 책보다 재미없다는 걸. 행복하다고 꼽은 장면이 죄다 지루해. 다들 제대로 된 섹스를 안 해봐서 그런가? 뭐, 아프기만 했겠지. 
  
정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과감한 농담을 꺼렸다. 자리에 아이가 없었더라도 인상을 썼을 것이다. 
  
―질색할 줄 알았어. 
  
천미조는 옥상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정치 얘길 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택하기엔 너무 평이하고 적적한 풍경이었다. 주마등까지 와서 자기 방의 요를 깔고 누운 사람도 있었다. 자유가 번거롭다는 듯 고작 두평짜리 공간에서 잠드는 것으로 삶을 마쳤다.
  
―근데 어떤 지원자는 다시 깨워서 묻고 싶다니까.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었어요? 진짜 이게 다예요?
  
대다수의 지원자는 자신의 존재 가치와 효능감이 가장 높았던 시기를 기억했다. 연구소 밖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자극적인 회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임종을 맞는 이들의 뇌엔 주로 옥시토신이 돌았다. 유대와 안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었다. 장엄한 음악, 광활한 풍경은 금세 걷혔다. 드러나는 기억들은 보잘 것 없었다. 사소하고 잘았다. 구간 폭도 굉장히 짧았다. 그들은 최근보다 이삼십대 전후의 일화를 짚어냈다. 애정과 관심 한가운데 있던 때였다. 남들이 내보이는 선의의 동기나 한계를 상상하지 못하고 상상하지도 않던 시간이었다. 천미조는 아이의 머리통을 가볍게 쓰다듬고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침에 임종을 맞은 48세 태국 여성 지원자의 영상이었다. 
  
―언우마씨네. 
  
아이에게 요거트를 떠먹이던 정오가 그를 알아봤다. 유니폼에 이름이 붙어 있기도 했지만 몇 안 되는 외국인들의 이름은 직원과 지원자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거 흐른다. 애기 턱 좀 닦아줘.
  
정오가 아이 얼굴에 묻은 요거트를 손등으로 닦았다. 고개를 젖힌 아이가 남은 요거트를 바닥에 쏟았다. 정오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천미조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봤다.
  
202번 16인승 마을버스는 노을 속을 헤치며 달리는 중이었다. 승객은 언우마를 빼고 7명이었다. 짙은 핏빛 석양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붉은 실내는 좁다란 연극 무대 같았다.
  
―에유, 짐도 많은데 서서 가면 다리 아프고 편찮어유. 이리 와유. 자리 있슈.
  
한 여자가 언우마를 향해 말했다. 
  
―이잉, 이이이, 이이잉.
  
눈동자가 혼탁한 남자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그는 손발을 두드리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짐이 엄청나게 무거워 보인다는 동작이 어떤 언어보다 확연했다. 언우마는 승객들이 가리키는 뒷자리로 들어섰다. 때 이른 겨울용 파카를 입은 소년이 옆에 앉아 있었다. 먼지와 얼룩으로 뿌연 파카였다.
  
―저짝에 소나무 잘랐네.
  
―긍게, 시원하네. 코너 돌 때마다 안 보였잖어. 갑자기 차 튀어나오면 그냥 골로 가는 겨. 위험하다고 몇년을 말했는데 시청 사람들이 일 잘했네.
  
―내가 있잖여. 배추 밭 얼매나 힘들게 팔았는지 말했어?
  
―이이, 말했슈.
  
―젊은 놈이 밭뙈기 쬐깐하다고 무시를 하는 겨. 똥값을 불러. 
 
―못된 놈이네. 
  
―그러게, 아주 못되게 구는 놈이네.
  
―시세도 모르는지 알고 흘려본 겨. 따지니까 그때야 제값을 불러야.
  
―이이, 욕봤슈.
  
밭을 판 노인은 사람들의 호응이 따라붙자 몸을 아예 뒤로 틀었다. 웅변을 하듯 목소리가 커졌다. 언우마 옆의 소년이 몸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툭툭 꺾었다. 버스가 농가 앞 정류장에 섰다. 소년은 문이 열리자마자 버스 앞을 가로질러 달렸다. 넘어질 듯 위태로운 뜀박질이었다. 운동화가 벗겨질 듯했다. 승객들은 달리는 소년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일제히 왼쪽으로 돌렸다. 
  
―왜 저러는 겨. 저러다 자빠지겄네. 
  
―뭐여. 집에 꿀단지 숨겨놨는가.
  
버스 안 승객들이 웃기 시작했다. 소년 맞은편 멀리 뭔가 희끗한 게 있었다. 흰 개였다.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고 있었다. 승객들이 내다보는 창 전면에는 왼쪽으로 뛰는 소년, 긴 목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오른쪽으로 몸을 뒤트는 개가 있었다. 가로 폭이 긴 창문들은 스크린 같았다. 소년과 개가 만났을 때 승객 두셋이 탄식을 했다. 둘은 주저앉은 자세로 서로를 정신없이 안았다. 소년의 옷과 흰 개의 털에는 금세 흙이 묻었다. 기사도 그 풍경을 지켜봤는지 차가 늦게 출발했다. 마을버스는 다시 덜컹였다. 
  
―아가씨는 여기서 일해유?
  
―네, 식당 해요. 남편이 농협 삼거리에서 백세보신탕 팔아요.
  
―그류. 젊은데 애쓰네.
  
―상차림만. 저는 계산하고 상만 내요. 힘들게 안 시켜요.
  
언우마는 좌석 손잡이를 천천히 붙잡았다. 손톱마다 색색의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팔뚝은 팔찌와 문신으로 화려했다. 그는 손거울을 꺼내 똬리 모양으로 틀어 올린 자신의 뒷머리를 바라봤다. 채비를 마친 그가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이이, 이잉잉, 
  
승객들이 언우마에게 인사했다. 하차한 그는 봉투를 내려놓고 손을 크게 흔들었다. 버스가 떠나자 그가 다시 짐을 들었다. 양손엔 마트 로고가 찍힌 비닐이 들려 있었다. 생활용품으로 터질 듯한 봉투였다. 몇발짝 걸어 나가자 커다란 벚나무 둥치가 나왔다. 그는 장판을 씌운 평상에 봉투를 내려놓고 손목을 털었다. 허리도 몇번 돌렸다. 평상 아래 고들빼기가 자라난 자리에는 새가 지저분하게 쪼아 먹은 솔방울이 굴러와 있었다. 봉투에서 가벼운 물건들이 툭 떨어졌다. 맨 위에 있던 두리안 커스터드 케이크와 비누 상자였다. 마트 진열대를 몇번이나 돌다 바구니에 넣은 물건이었다. 태국어가 적힌 주황색 비누 상자엔 조그만 망고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언우마는 포장을 벗겨 비닐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향을 들이마셨다. 평상에 걸터앉은 그는 눈을 감았다. 옆의 나무 수피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둡고 반질반질한 껍질 위로 수십개의 정맥이 돋아났다. 노인의 손이었다. 둥치가 순하게 흔들렸다. 그는 나무 몸통에서 걸어 나온 여자를 안았다.
  
―마미.
  
암호는 두 글자였다. 이날을 꼽았구나. 여기가 제일 좋았구나. 태국을 떠난 지 오래인 지원자였다. 천미조는 그가 배치한 장면을, 그의 일상에서 가장 따스했을 한때를 지켜봤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긴 정오는 복도 끝에서 그림을 보는 허이경을 발견했다. 더 나은 죽음을 맞기 위해 이곳에 온 허이경은 그런 지원자치고 묵묵한 편이었다. 트레이닝도 시도하지 않았다. 정오를 올려다본 아이는 그의 시선이 향하는 쪽으로 달려갔다. 머뭇거리던 정오가 발을 뗐다. 아이가 워봇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내려 애쓰는 동안 둘은 짧게 인사했다. 시시한 말이 오갔다. 정오는 허이경의 얼굴을 마주한 게 신기했다. 지원자 중에서 또래를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부작용을 물으며 명소장을 난처하게 했던 이 지원자는 요새 장에스더와 어울려 다닌다고 했다. 이곳 생활이 그에게 가벼운지, 무거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여긴 마크 로스코 모작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정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밝고 무난하고 조용히 명상하기도 좋고. 
  
―노년의 마크 로스코는 어두운 색만 썼어요. 큰 화폭을 컴컴하게 칠했대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건 아닌 듯해 정오는 마음이 놓였다.
  
―이경씨는 다른 화가 좋아하시나봐요.
  
―이 할아버지도 좋아하는데, 추상화만 보기엔 지루해서요.
  
짐작보다 활기가 도는 사람이었다. 정오는 코를 긁으며 물었다.
  
―음, 영화나 드라마. 간이 체험 프로그램 같은 건 어때요. 인기 많은 것도 있는데. 
  
―해봤는데 별로. 하품 나왔어요.
  
―와, 그거 저랑 천미조 씨가 같이 만든 건데요.
  
―몇개는 괜찮았어요. 청도랑 맨체스터는 가보고 싶기도 했고. 그나마 재밌는 곳은 아마 천미조 씨가 설계한 곳일 것 같은데. 맞죠?
  
―그렇게 붐비는 데가 좋은 분이 여긴 어떻게 와 있어요? 워봇은 안 지루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결국 발 없이 내딛는 것. 그게 제 일이니까요. 
  
―으, 그런 격언을 외우고 다녀요? 
  
―옛날 미국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 나온 고대시예요. 누가 쓴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알게 되면 죽기 전에 알려주세요.
  
아이스크림 모양 스티커를 떼어낸 허이경은 아이에게 그걸 건네고 복도로 걸어 나갔다. 한참 뒤 정오는 티셔츠 속에 조심스레 손을 넣었다. 허리춤에서 땀이 배어났다. 



6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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