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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렸다

강성은
2020년 07월 14일



전화벨이 울렸다
  
  
  
또 시체가 나왔다는군. 
  
윤소장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전화했어요? 
  
정순경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물었다. 
  
이장이 떠나면서 마을 어귀 저수지에 떠 있는 시체를 봤다네.
  
이장님 가족까지 모두 떠났으니 마을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이제 시체가 나타났다고 신고하는 전화도 오지 않겠죠. 
  
윤소장은 말이 없었다. 
  
확인하러 가야 할까요? 
  
어차피 늦었는데 내일 가도 상관없겠지. 
  
  
마을에 시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삼주 전쯤이었다. 김씨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가보니 재 너머 김씨의 고추밭 고랑에 한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죽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리만큼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노인이었다. 근방에 살던 고령의 노인들은 대부분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누구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시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주민들에게 수소문해봤지만 모두들 처음 보는 노인이라고 했다. 윤소장과 정순경은 현장 사진을 찍고 시신을 수습했다. K시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했지만 전염병 때문에 K시는 봉쇄되어 있었다. 시신은 일단 이장의 농산물 저온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박씨의 뒷마당 장독 안에서 태아처럼 웅크린 모습의 또다른 노인이 발견되었다. 서너 계절 동안 비워져 있던 장독 뚜껑을 열자 금방 들어가 잠든 것처럼 미소를 띤 노인이 웅크리고 있었다고 했다. 사흘 뒤에는 최씨의 비닐하우스 싱싱한 토마토 줄기 사이에서 하얀 부활절 달걀처럼 작고 반질반질한 노인의 얼굴이 발견되었다. 그 후로도 며칠에 한번씩 한구의 시체가 어김없이 발견되었다. 계곡에서, 아무도 찾지 않은 지 오래된 성당 고해실에서, 폐교 음악실에서, 교회 헌금함에서, 돼지우리 안에서. 동사무소 옥상 위에서,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났다. 모두 처음 보는 노인들이었다. 
  
이장의 농산물 저온창고에 시체 일곱구가 들어가자 더이상 자리가 없었다. 조씨도 저온창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절대 시체를 넣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윤소장은 계속 이렇게 나오면 처벌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도리가 없었다. 여덟번째 시체부터 조씨의 창고에 넣기 시작했다. 조씨의 가족이 가장 먼저 마을을 떠났다. 조씨는 윤소장에게 욕을 퍼부으며 떠나갔지만 다른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밤새 마을을 떠났다. 자고 일어나 보면 빈집이 생겨났다. 
  
이제 우리만 남은 것 같군. 
  
민씨의 축사에 소 세마리가 남아 있어요. 
  
소를 두고 가면 어떡해.  
  
하루에 한번씩 들러 사료를 주겠다더니 이틀째 소식이 없길래 오늘 제가 가서 사료를 주고 왔어요. 어차피 박씨네 닭장에 남은 닭 여섯마리도 제가 사료를 주기로 했거든요. 윤씨 아주머니네 콩밭이랑 구씨 아저씨네 텃밭에 물도 줘야 되고. 
  
개와 고양이는 다 데리고 갔지?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마을을 돌며 다시 확인해봐야겠어. 
  
마을이 이렇게 고요해지리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이렇게 조용한 마을은 처음이군. 
  
우리만 남았네요.
  
시체들도 있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어떻게 이런 일이. 
  
내일이면 또 어디선가 발견되겠죠. 
  
전화는 오지 않을 거야. 이제 신고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없을 것 같군. 
  
우리가 여기 남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파출소 안에는 윤소장과 정순경의 한숨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죽은 노인들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워 보였다. 살인 사건이라고 하기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자다가 숨을 거둔 자연사에 가까워 보였다. 도시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누군가 옮겨놓은 건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시체들은 죽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죠? 왜 노인들 시체만 나오는 걸까요?
  
글쎄,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분명히 요양원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장례업체일 수도 있지. 
  
네. 아무튼 노인들과 관련된 모종의 불법적인 일이 있었던 게 확실해요. 
  
죽은 사람들이 노인들인 걸 보면 여기서 살해당한 게 아니라 이미 죽어서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것 같아요. 억울하게 죽은 얼굴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나도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던걸. 
  
하지만 죽은 사람은 혼자서 여길 올 수 없으니 누군가 데려왔겠죠. 
  
그게 누군지 찾아야 할 텐데.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잠깐 어떻게 된 거 아닐까요? 표지판 방향이 잘못 돌아갔다거나. 아니면 표지판이 바람에 날아갔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천국이 다 차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둘 곳이 마땅찮았다거나.
  
분명히 지옥은 아니에요.  
  
하느님이 데리고 왔나?
  
그런데 왜 우리 마을일까요?  
  
여기가 천국 같은 곳이라서?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 뭐 볼 게 있다고요.  
  
어차피 산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죽은 사람들만 남았으니 천국과 별 차이 없을걸.
  
밖에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네요. 
  
며칠 후에 태풍이 온다더니 벌써인가. 
  
   
그때 누가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 셋이었다. 
  
아이들을 잃어버렸어요. 아이들 좀 찾아주세요. 
  
여자들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고 목소리는 떨렸다. 
  
아이들을 어디서 잃어버리셨죠? 
  
숲에서요. 
  
아니 숲 아래 개울에서요. 
  
아니 개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서.  
  
아니, 어쩌다. 
  
우리 유치원에서 자연체험학습을 왔어요. 숲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숲길을 걷다가 개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걷다보니 아이 하나가 안 보여서 그 아이를 찾으려고 우리 둘이서 왔던 길을 돌아가봤지만 아이는 없었어요. 
  
다른 한분은요? 
  
박선생님은 나머지 애들과 그 자리에 있었죠. 
  
그런데요? 
  
결국 못 찾아서 다시 돌아와보니 박선생님도 아이들도 없는 거예요. 
  
저는 개울가에서 애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숲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려서 저도모르게 숲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잃어버린 유영이 목소리 같아서.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새소리였어요. 황급히 나왔을 땐 아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김선생님과 문선생님만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발견했어요.  
  
아이들은 없고 아이들의 신발만 잔뜩 발견했어요. 
  
숲이나 개울가, 나무 둥치에, 야생동물 표지판 위에, 나뭇가지에, 새 둥지 속에, 벤치 위에 흩어져 있었어요. 
  
여자들은 배낭에서 커다란 쇼핑백에서 잠바 주머니에서 작은 신발들을 꺼냈다. 어깨에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몇명이죠? 
  
열다섯명이요. 
  
혹시 아이들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오진 않았나요? 
  
윤소장과 정순경은 창고 속 노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발견된 시체가 있는데 혹시 보실래요?
  
노인들이에요. 죽은 노인들. 
  
네? 우리가 찾는 건 노인이 아니라 아이라고요. 
  
윤소장과 정순경은 여자들을 이장의 농산물 저온창고로 데려갔다. 창고를 열자 흰 광목천으로 감싼 노인들이 차례로 누워 있었다. 한 여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모르는 노인들뿐인데. 
  
한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저히 못 보겠네요. 
  
한 여자는 밖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예 창고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노인들 모두 맨발이네요. 
  
정순경은 뭔가 발견한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노인들의 얼굴은 왜 이렇게 비슷하게 생겼죠?
  
윤소장 역시 나란히 누운 노인들의 얼굴이 구분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제가 아이들 얼굴도 못 알아볼까봐요. 
  
노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돌려 보던 여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아직 더 있어요. 
  
윤소장과 정순경은 여자들을 조씨의 저온창고에도 데려갔지만 거기도 여자들이 찾는 아이들은 없었다. 여자들은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죽은 노인들이 왜 이렇게 많죠?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윤소장과 정순경이 여자들과 함께 마을을 돌며 빈집들까지 들어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일단 파출소에 가서 K시의 본부에 신고하고 명령을 기다리자는 윤소장의 말에 여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여기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해요. 빨리 찾아야 해요.  
  
여자들은 울면서 손전등을 들고 숲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빠르게 올라갔다. 윤소장과 정순경이 말리려고 따라가봤지만 여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출소에 돌아와 문을 열자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윤소장이 전화를 받더니 몇마디를 주고받고 끊었다.  
  
버스를 잃어버렸다는군. 
  
어쩌다가요? 
  
잠깐 내려서 숲에 들어갔다 오니 없어졌다는데. 
  
화장실에라도 다녀온 모양이죠. 
  
누가 버스를 훔쳐가지?
  
버스를 두고 숲으로 들어간 사람이 더 이상한데요?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의자를 잃어버렸다는군. 
  
어디서요?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 
  
아 그 의자들요? 그걸 누가 훔쳐가죠? 
  
글쎄 아무 쓸모없는 의자들인데. 
  
그걸 훔쳐가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걸요. 
  
  
마을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전화벨이 계속 울리네요. 
  
사람들이 모두 떠난 게 아닌가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밤은 정말 지독하게 이상해.  
  
소장님 이거 혹시 꿈일까요? 아까부터 계속 꿈꾸는 기분이에요. 
  
누구 꿈? 
  
제 꿈이겠죠? 
  
나 뺨 한대만 세게 때려봐. 
  
에이 제가 어떻게. 
  
둘은 서로를 빤히 보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많이 수척해졌군, 자네. 
  
소장님은 그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셨어요.  
  
우리 혹시 전염된 걸까? 
  
아님 죽은 걸까요? 
  
  
바람 소리와 구분되지 않는 
  
전화벨이 울렸다. 
  
받을까요. 말까요. 
 


7회에 계속됩니다.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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