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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멋진 그룹사운드

이자켓
2020년 07월 15일



 
오 멋진 그룹사운드


 
나는 음악을 사랑했다. 매사에 반항적이고 질문을 던지던 내게 음악이 가진 에너지는 곧 해방이었다. 음악을 듣는 시간 외의 삶은 엉망이었다. 나름 하던 공부에는 흥미를 잃어버렸고 학원에선 늦게까지 깡통 차기를 하다가 돌아왔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했다. 각자 원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토요일 반나절 정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중학교에는 밴드부 대신에 그룹사운드가 있었다. 그룹사운드는 무서운 선배들이 주름잡고 있던 동아리여서 일학년 때는 입부할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학년이 되고 부서마다 담당 선생님이 생기면서 무서웠던 선배들의 그룹사운드는 해체되었다. 펑크 록에 빠져 있던 나는 낙원상가에서 허밍버드 색상의 일렉 기타를 샀다. 그리고 그룹사운드에 들어갔다. 
  
선배들이 없는 동아리에서 신입 부원들은 길을 잃었다. 음악 선생님은 뜨개질 동아리도 담당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음악실에 방치되었다. 선생님은 이따금 문을 살짝 열고 대강 학생들의 인원을 체크한 뒤 가버렸다. 한 손에는 뜨개질 더미가 들려 있었다. 나와 친했던 친구는 베이스를 치는 비버 군과 오래된 통기타를 가져온 어리숙 군이었다. 우리는 주로 사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버 군의 경우에는 교회에서 밴드를 하며 단련된 베이시스트였고, 어리숙 군은 나와 마찬가지로 열정만 있는 초보자였다. 비버 군은 잘 웃는 편이었다. 내가 말과 장난을 시작하기만 해도 앞니를 보이며 크게 웃었다. 어리숙 군은 내성적이어서 말을 듣는 쪽이었다. 말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나 혼자였다. 생각해보니 우리와 같이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던 친구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두꺼운 색소폰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멋진수염 군이다. 멋진수염 군은 별명 그대로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수염을 갖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로 판단되었다는 것 정도. 그 또한 어리숙 군과 마찬가지로 말이 없었다. 아니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내향적인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멋진수염 군에게는 비밀이 있는 듯했고,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비밀로 묻어두려고 하는 타입처럼 보였다. 어찌 되었든 아침부터 점심까지 침묵만 할 수는 없어서 나는 매주 재밌는 이야기를 생각해갔다. 실없는 농담이 대부분이었지만 비버 군은 잘 웃어주었다. 어리숙 군도 때때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평화로운 나날이기도 했다. 생각 없이 악기를 들고 앉아 잡담만 해도 시간은 잘 갔으니까. 게다가 우리는 밴드라고 하기에 구성원이 부족했다. 드럼도 메인 멜로디를 연주할 기타 연주자도 없었으니까. 
  
삼학년이 되고 새로운 부원들이 들어왔다. 나는 얼떨결에 부장이 되었다. 부장인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구석자리에 앉아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서히 큰 물살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그랬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눈빛만 주고받던 신입 부원들은 삼주가 지나고 연주를 시작했다. 당연했다. 우리는 그룹사운드였고 음악을 하기 위해 모였으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불씨가 있었다. 평온하게 토요일을 보내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들은 불타올라야만 했다. 신입 부원들의 밴드, ‘버닝 새러데이’는 명확한 밴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리드 기타와 세컨드 기타, 베이스 그리고 드럼까지. 특히 드럼을 치는 부원은 예술 고등학교 지망생이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동안 음악실의 토요일은 달라졌다. 처음에는 엉성하던 연주가 연습을 통해 점차 유연해졌고, 그들의 리듬과 박자 속에서 우리는 점점 구석에 몰렸다.
  
음악 선생님도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전보다 자주 음악실에 와서 부원들의 연주를 구경했다. 우리 오합지졸 모임도 그때마다 연주를 연습하는 척했다. 비버 군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비버 군이 리듬을 만들면 우리는 단순한 스트로크로 연습을 했다. 멋진수염 군은 여전히 과묵했다. 우리는 언젠가 검은 색소폰 케이스에는 총이나 담배가 보루로 들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그룹사운드를 구경하러 왔다. 음악 선생님은 어정쩡하게 서서 우리에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그동안 연습한 곡을 연주할 거예요. 혼자여도 좋고 모여서 해도 좋아요. 다만 꼭 연주해야 합니다.” 
  
버닝 새러데이의 연주부터 시작되었다. 그린데이의 곡이었다. 실수는 종종 있었지만, 그들은 확실히 한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떡하지. 망했다. 순식간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음악실에 있는 모두가 그해 들어 처음으로 우리가 뭉쳐 있는 구석을 바라봤다. 버닝 새러데이의의 냉소 어린 시선도 섞여 있었다. 비버 군은 작게 속삭였다. 너희는 가장 단조로운 코드를 쳐, 내가 최대한 화려하게 해볼게. 나와 어리숙 군은 비장하게 끄덕였다. 비버 군이 연주를 시작하고 나와 어리숙 군은 어정쩡한 박자에 들어가 기타를 쳤다. 심지어 나와 어리숙 군은 다른 코드를 연주했다. 음들이 뒤엉키면서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
  
나는 아직도 연주가 끝난 뒤 이어진 짧은 침묵을 잊지 못한다. 엉망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에 멋진수염 군이 케이스를 열었다. 빛나는 색소폰을 꺼내서 숨을 불어넣었다. 웅장한 저음이 음악실을 맴돌았다. 멋진수염 군은 때로는 음을 뭉개기도 하면서 연주를 이어갔다. 숙련되고 거침없는 연주였다. 그가 연주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귀인가 싶을 정도로 귓구멍 속에서 소리가 요동쳤다. 멋진수염 군이 색소폰을 의자 위에 내려놓았을 때, 박수가 쏟아졌다. 교감 선생님과 땀을 흘리던 음악 선생님도 손뼉을 크게 쳤다. 멋쩍게 웃어 보인 멋진수염 군은 조심스럽게 색소폰을 케이스에 넣고 닫았다. 
  
그날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부원들 대부분이 멋진수염 군에게 모여들었다. 여러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멋진수염 군은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멋진수염 군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기고 대신 대답하기 시작했다. 색소폰을 어디서 배웠는지, 색소폰의 가격, 좋아하는 음악 같은 것을 지어내서 답했다. 멋진수염 군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와중에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동조해주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부원들이 모인 쪽으로 일어났다. 이제 우린 가볼게. 비버 군과 어리숙 군이 고맙게도 음악실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학교 중앙에 위치한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멋진수염 군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넷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뿔뿔이 흩어졌다. 후문은 내리막길로 이어졌는데 나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그곳을 뛰어 내려왔다. 멋진 바람이 불었다. 
 
 


이자켓
2019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분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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