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1

주마등 임종 연구소(6회)

박문영
2020년 07월 16일



식당에서 나온 지원자들이 봤던 영화를 또 보기 위해 상영실로 향했다. 몇몇은 인솔자를 따라 활동실에 들어갔다. 시설 안내 교육과 간략한 영상 체험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건전하고 단조로운 코스는 공동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크루즈, 잠수함, 열기구에 들어가 내다보는 세상은 이전보다 따스하고 친절했다. 넓은 거리엔 관광객이 붐볐지만 정신은 깨끗했다.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어깨를 세게 밀치고 가는 일도, 가방을 도둑맞는 일도 없었다. 열쇠고리를 사라고 귓가에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현지 상인들이 음식 값을 두배로 받으며 너희 말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낯선 식료품에서도 익숙한 맛이 났다. 기억 속 가장 좋은 외투와 모자를 걸친 이들은 골목골목을 웃으며 지났다. 죽기 전까지는 암담하고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필요한 연습과정을 밟을 때는 시간이 세차게 흘렀다. 활동실에 자리를 잡은 다섯명은 볼로냐에서 파리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올랐다. 그들은 침대칸에 앉아 너른 벌판, 점점의 불빛, 청회색 창고들을 눈에 담았다. 국경을 뚫고 나간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잔잔한 밤기차였다. 이들은 덜컹거리는 차체와 불규칙적인 소음을 좋아했다. 얼룩 묻은 시트와 곰팡이 냄새에 깊이 안심했다. 아무 방해물 없이 쾌적하게 설계된 초기 코스에 수정을 가한 버전이었다. 견딜 만한 변수를 넣자 찾는 이들이 점차 늘었다. 타본 적 없는 좌석에서 가보지 않은 나라들을 거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사소한 불편을 그리워했다. 
  
지원자를 추모하려는 방문객 중엔 가족보다 친구가 월등히 많았다. 고인이 운영하던 블로그나 유튜브를 구독하던 이들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가끔씩 먼 친척이 시신을 확인했다.
  
―전형숙 씨 7월 16일 낮 2시 43분에 영면하셨습니다. 마지막 기억은 보호자 분께 보여드려도 된다고 서명하셨는데 보호자님도 동의하시나요. 괜찮으시면 확인하시겠어요? 
  
전형숙은 남편과 함께 코다리 냉면과 만두를 먹었다. 식당을 나선 그들은 살구꽃이 핀 개천 길 위에 멈췄다. 맑은 날이었다. 청둥오리 두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털을 골랐다. 어느새 동행하던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엔 같은 동네 이웃이었던 보호자가 서 있었다. 
  
―너무 예쁘다. 어쩌면 이렇게 예쁘니. 소담스럽게도 피었네.
  
전형숙은 그와 함께 낮은 가지에 움튼 꽃망울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화면을 본 여자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 길 저랑 자주 나갔어요. 저 머플러도 형숙이가 사줬어요.
   
잔털과 씨방이 화면 가까이 들어왔다. 
  
―아이고, 예쁘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곡물 소리와 함께 호랑지빠귀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그는 휠체어를 더 밀고 나아가지 않은 채 그곳에서 홀로 눈을 감았다. 
  
몇몇이 죽고 몇몇이 새로 들어왔다. 지원자 다수가 작고 아늑한 죽음을 맞이했다. 보편적인 임종 장면엔 친구와 연인과 가족이 등장했다. 원하는 시공간에서 사랑했던 이들을 만난 지원자들은 짧은 안부를 나눈 뒤 주저하지 않고 암호를 댄 후 이곳과의 접속을 끊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라는 말이 제일 자주 나왔다.
  
본인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무난한 시작점에서 출발한 서사들은 기이한 장소로 이동하다가 독특한 결말을 맞았다. 폭우 속에 맨발로 선 사람, 상가 시멘트 바닥에 앉아 족발을 뜯는 사람, 설원에서 거인을 만난 사람,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 지방을 떼어낸 뒤 평평해진 몸을 감상하는 사람, 열차 선로를 걷는 사람, 링 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사람, 굽이치는 강물을 하염없이 보는 사람, 국도변에서 멜론을 씹는 사람, 전시장에 서서 춤추는 발이 나오는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 땀을 흘리며 철판 요리를 하는 사람, 밤에 절벽 둘레를 거니는 사람, 어린 자신을 만난 사람. 일부 지원자들은 상담에서 한번도 밝히지 않은 이야기 속에 놓이곤 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여자는 국립극단의 연극 공연장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고 딸이 대학에 합격했던 날이 제일 행복했다는 남자는 한낮에 자신의 파밭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임종을 맞았다. 
  
―주말여행은 피했어요. 여건이 어려울 땐 일요일, 월요일 이틀로 일정을 짰죠. 
  
―그 도시의 평범한 얼굴을 보고 싶어서인가요.
  
―맞아요. 어디나, 누구나 비슷비슷하다는 판단을 할 때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그런 여행을 질리게 했어요. 그러니 저는 아마 제 서재 앞에 서 있게 될 것 같네요.
  
폐암 말기의 노어 교수가 도착한 곳은 서재가 아니었다. 남자의 회상은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그가 도달한 곳은 적막한 강의실이었다. 의자에는 그가 35년간 좋아했던 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그곳에 멈췄다.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 
  
―행복을 기억하는 일은 어렵죠. 왜냐. 짧은 순간이니까요. 하지만 의식이란 ‘셀 수 없이 많은 창고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거긴 ‘광활한 방들이 겹겹이 차 있는 곳’이에요. 충분히 열어볼 가치가 있어요. 다만 신중히 말이죠.
  
명소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자의적으로 인용했다. 개소일을 기념하며 개최한 강연이었다. 강연이든 교육이든 피상적인 내용의 행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상담, 면담, 테스트, 트레이닝, 시뮬레이션. 비슷한 내용을 굳이 다른 명칭으로 분할한 일정도 밟아야 했다. 건물 안에만 머무는 지원자들에겐 햇볕을 쐬어야 한다는 권고도 들어왔다. 면역력을 높이는 규칙적인 생활이 기억을 활성화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잊을 만하면 단체 행사야. 염병, 합법적으로 죽겠다고 진짜 애를 쓴다. 
  
―쉿, 우리가 죽으러 온 걸 까먹었나봐. 
  
대강당에 들어서던 지원자들이 중얼거렸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는 얼마든지 구현 가능합니다. 이제는 고통 없는 죽음 이상을 바랄 때가 됐어요. 자학, 자해, 자살. 전부 어리석고 끔찍한 짓이죠. 우리는 세상과 기쁘게 작별할 수 있어야 해요. 여러분은 그런 비전을 품은 선구자들이십니다. 질문 있으신 분?
  
맨 앞줄의 지원자가 손을 들었다. 주마등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상담 때도 여쭙긴 했는데, 검사 기록은 당연히 노출되지 않는 거죠? 
  
명소장이 미소 지었다. 개인정보가 공공재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지원자도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몇번의 추적이면 금세 드러난다. 동선, 취향, 생활 방식, 사고의 흐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야기. 보호가 될 거란 믿음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지원자들은 형식적으로 질문했다. 성의 없는 답변도 안도를 줬기 때문이다.
  
―그럼요. 휴대폰 데이터, 인터넷 활동과 기록, 카드 내역, CCTV가 훨씬 시끄러울걸요. 상담 내용은 선생님과 연구원만 공유하고요. 처음과 마지막 화면도 기한이 지나면 폐기합니다. 게다가 저희는 선택된 기억 구간만 설계하죠. 예, 밝은 영역. 인생에서 제일 기쁜 추억이요. 선생님은 그 속에서 원하는 대로 계실 수 있어요. 
  
―저기, 원하는 대로면 얼마만큼요? 제한시간이 없어요?
  
―좋은 질문이네요. 마지막 시공간을 찾으실 때까지 머무셔야죠. 오래 계셔도 괜찮아요, 선생님. 하지만 너무 긴 체험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억이 쌓이면 의식과 무의식이 조금씩 얽힐 수 있으니까요. 임종 때 겪으실 장면들이 튼튼할 수 있도록 미리 연습을 하시는 게 좋아요. 
  
서로를 힐긋거리던 지원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양반 뭐래는 거야? 아무튼 빨리 끝내는 게 좋다는 거지? 
  
―오래 자리 차지하면 바쁜 선생님들이 좋아하겠어? 뭘 얼마나 고르게?
  
―계속 들여다보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소리야?
  
강당 2층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던 천미조가 이마를 짚고 말했다.
  
―아주 지가 다 만들지?
  
처음 스캔한 로우(raw) 데이터가 얼마나 조잡하고 지저분한지 대부분의 지원자는 알지 못했다. 상체를 일으킨 천미조가 말했다.
  
―어떻게 자기 머릿속이 평화로울 거라 짐작하지? 골라냈다고 안심하나?
  
텀블러의 차를 한모금 삼킨 정오가 답했다.
  
―원래 신생아 한번도 못 본 사람들이 아기가 예쁠 거라고 착각하잖아.
  
―그렇게 초라한 생물도 드문데.
  
정오의 답이 없었다. 천미조는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의 기분을 긁었을까봐 고개를 돌렸다. 정오는 강당 뒷줄에 앉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천미조는 그의 시선을 쫒았다. 상담을 포함한 프로그램 과정을 일체 미뤄대는 지원자였다. 말은 워봇과만 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강당에 나와 장에스더 옆에서 웃고 있었다. 충분히 눈 밖에 나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장에스더와 허이경은 여전히 생리대가 필요한 지원자였다. 나는 여길 늦게 왔다. 욕심을 부렸다. 너무 오래 살았다. 지나치게 젊은 둘은 다른 이들에게 이런 자책을 품게 했다. 그들이 겪는 우울증은 뇌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잠잠하고 고요해 눈에 띄지 않는 증상은 동정받기 어려웠다. 좀 조심해야 할 텐데. 천미조는 허이경의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언니, 내가 오래 살아보니까 사기꾼들이 쓰는 말은 정해져 있더라. 왜냐, 다만, 얼마든지. 골수부터 사기꾼인 놈들은 어떻게 알아보게? 비전, 이 단어는 백 퍼센트야. 저 사람 저거 다 쓰네. 
  
―그걸 다 듣고 있었어? 
  
―의식을 열어 가상현실에 들어간다? 근데 거기서 누굴 만날 것 같아? 그냥 또 자기 자신이야. 수없이 많은 나를 보는 거라고. 다른 얼굴, 다른 모습도 죄다 변주된 것뿐이야. 죽을 때까지 자기한테 파묻히고 싶어? 스스로가 지겨우니까 다 때려치우려고 여기 온 거 아니냐고. 
  
허이경은 마트료시카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반짝이고 가볍고 텅 빈 인형들. 그건 임종을 기다리면서 그날의 체험을 연습하는 지원자들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나 뜻깊은 죽음, 진정한 작별을 위해서라는 트레이닝은 그가 보기에 덧없었다. 악의로 만든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다만 그 원리는 뭐든 견디면 나아질 거란 세상의 격려와 똑같았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고통이란 무엇을 붙잡으려고 할 때 생겨났다. 
  
―난 이제부터 휴양지 사진만 본다. 경치만 외울 거다. 사람이 자기 자신한테 너무 집중하면 미치는 거야. 언니, 배지호 알지?
  
―아. 한두번 봤어. 말수 적은 사람이었는데. 요새 안 보이네.
  
―그 사람 잘못된 거 몰라? 돌아버렸대. 죽으러 왔다가 망했어.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병동에 계속 있잖아. 고주파 치료용 바지에 오줌까지 쌌대. 가족들 연락도 안 된다던데. 여기 직원들만 그런 얘기 안 해.
  
강연을 마무리 짓던 명소장이 운영팀 직원 한명에게 턱짓을 했다. 뒷자리에서 내내 떠드는 두 여자가 못마땅했다. 장에스더는 천상 문제가 많은 아이라 쳐도, 성인인 허이경이 저렇게 나오는 건 곤란했다. 분별없는 여자였다. 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섰다. 둘은 주의를 받은 후에도 어깨를 맞대고 웃었다. 명소장은 실눈을 뜨고 그쪽을 봤다.



7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