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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7회)

박문영
2020년 07월 23일



스캔한 자료는 고단위 압축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중복되는 패턴 정보가 방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분류된 공간은 얼추 비슷했다. 그래프 오른쪽 상단은 긍정적인 기억을 뜻하는 밝은 적색 계열, 왼쪽 하단은 부정적인 기억을 뜻하는 어두운 청색 계열이었다.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청색 계열 지표가 드넓었다. 정오는 두 색상으로 나뉘었지만, 사실상 한가지 색채라고 봐도 무방할 화면에서 천천히 눈을 뗐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살한 화가 마크 로스코를 생각했다. 그의 「오렌지, 레드, 옐로우」를 떠올렸다. 그건 어떻게 해서라도 두고 보고 싶은 회화였을까. 완전히 압도될 만큼 다정한 빛이었을까. 아마 그랬겠지. 201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690만 달러에 팔린 그림이었다. 정오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의 기억이 그렇게 밝은 색으로만 도출된다면 그는 정신질환자일 확률이 컸다. 자신으로 꽉 찬 그가 행복했을지 몰라도 그의 주변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코는 색채나 형태에 관심이 없으며 비극, 파멸, 절정, 관능, 운명, 아이러니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흥미가 있다고 밝힌 바 있었다. 정오는 그가 이 단출한 화면들을 보면 어떤 심경이 될지 궁금했다. 
 
―노년의 마크 로스코는 어두운 색만 썼어요. 큰 화폭을 컴컴하게 칠했대요.
  
그래프와 색상변환도의 밝은 면 중에서 채도가 가장 높은 부분을 확대해 그 연령과 시기를 살피면 대체로 지원자 스스로 밝힌 기억과 일치했다. 하지만 허이경의 초기 기억은 분류가 어려웠다. 그의 데이터는 붉은 점을 계속 확대해도 거무튀튀하기만 했다. 녹취본과 영상물 모두 짧았다.
 
―문 밖에 서서 집안을 바라보고 싶어요. 들어가진 않고요. 남편이 거실에 나와 있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기념일도 생일도 아닌 날에 거기 있으면 돼요. 그 모습을 멀리서만 보면 될 것 같아요.
 
아파트 복도에 선 허이경은 불 켜진 실내를 가만히 바라봤다. 창에서 두걸음 정도 물러난 자리였다. TV 앞의 남편은 태평해 보였다. 간혹 큰 웃음도 터뜨렸다. 정오는 허이경이 살던 집과 그가 떠올린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어떠세요?
 
―해상도가 더 낮았으면 좋겠어요. 
 
―허이경 님, 지금 화면도 불투명한데요. 너무 거칠고 희미해요.
 
―선명한 걸 안 좋아해요.
 
천미조가 다가오자 정오의 어깨가 움찔했다. 
 
―안 그래도 확인하려고 했는데 모아레가 왜 이렇게 심해? 허이경 씨 면담 일정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 가서 직접 물어봐.
 
천미조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저녁식사 시간 후 건물 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문 왼쪽에 날개를 퍼덕이는 새가 있었다. 지원자들은 그 주변을 두르는 원을 만들었다. 허이경이 새의 노란 다리를 살폈다. 골절은 아니었다. 새는 자리를 비척비척 돌다 송전탑 쪽으로 낮게 날아갔다. 
 
―황조롱이에요. 유리창에 살짝 부딪혔나봐요. 
 
―바보 아니야? 왜 박아?
 
―매 과라서 속도가 빠르거든요. 산이 비치면, 진짜 산인 줄 알고 그대로 돌진해요. 저 친구는 다행히 도중에 멈칫한 것 같아요. 놀란 거지 다치진 않았어요.
 
―이경씨 수의사였어요?
 
―아니요. 그냥. 
 
허이경은 곤충도감, 조류 사전, 야생화 백과 뭉치를 떠올렸다. 버리고 온 짐이었다. 그 속의 무수했던 이름이 이제는 한줌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 각각의 특질, 색과 형태와 소리를 전처럼 섬세하게 구별해내긴 어려울 것 같았다. 루페로 들여다보던 팥배나무 열매, 여우콩, 오이풀의 생김새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숙소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허이경은 건물 입구 의자에 걸터앉았다. 마지막 직업이 낯설기만 했다. 이제 자신에겐 부분으로 전체를 파악하던 악습 하나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야. 사진 지나가는 순간에 맞춰야 한다니까? 1초도 길어. 바로바로 이름을 대야 합격이야.
 
남편이 과장하지 말라며 웃었다. 허이경은 짧았던 숲 해설사 이력을 떠올렸다. 발가락이 짓무르도록 걸었던 산길이 생각났다. 사고는 일을 시작한지 반년도 안 돼 벌어졌다. 남편을 친 상대는 음주운전 중이었고 그 역시 병원으로 이송되는 길에 죽었다. 고함을 들어줘야 할 사람이 없었다. 발인 전날, 빈소에 딸린 방에 누워 있던 허이경은 병원을 나와 철교까지 걸었다. 검은 강은 생명력이 넘쳤다. 소용돌이 물결이 돌풍을 만들어냈다. 소리를 지르러 나간 그는 난간 아래 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카락이 볼과 이마를 세게 때렸다. 상복이 퍽퍽, 구겨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장례를 마치면 빈 집에 들어가야 했다. 
 
―계속 걸어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은 걷고 있는데도 걸으라고 했다. 숨이 차지 않는데도 등을 밀어주었다. 돌계단에 잠깐 멈춰 있으면 누군가 꼭 근심 어린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느 낮은 또렷이 그릴 수 있었다. 선두에 선 동료들이 걸음을 멈추고 모여 있었다. 
 
―굴나방이 거주지로 삼은 나뭇잎이네요.
 
해설사 경력이 가장 오래된 여자가 잎 표면의 어지럽고 흰 궤적을 가리켰다. 애벌레가 잎을 파먹으며 움직인 길이라고 했다. 성충이 되면 잎을 뚫고 나온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뭇잎 몇개가 희끗희끗한 지도로 가득했다.
 
―마치 아름다운 그림 같지 않나요.
 
허이경은 그의 감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누더기가 된 잎사귀, 그 안에서 먹고 쉬고 똥을 싸며 나아간 애벌레. 둘의 관계는 어떻게 봐도 파행적으로 여겨졌다. 그는 몸이 누군가의 집이 된 이파리를 참담한 기분으로 지켜봤다. 나무에게 잎 따위는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어쩔 수 없었다. 한쪽은 몸이 뜯겨나가고 한쪽은 숨이 막힌다. 결국 양쪽 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까운 이들이야말로 미로 속에서 눈을 감고 서로를 훼손하지 않았나. 허이경은 남은 물을 모조리 마셨다. 그도 이런 감응, 이런 식의 잣대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든 걸 굴절시켜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산다. 지구 입장에서 자신 역시 미생물을 싣고 있는 하나의 기생체다. 허이경은 자유, 주체, 독립 같은 소리가 우스웠다. 의지나 개인이란 단어도 헛헛했다. 위장 아니면 망각이 인간의 생존 방식 아니었나. 빛과 산소를 어디서 구걸하는지 완전히 잊은 게 아닌가. 공생, 계약, 의존, 애착, 사랑. 인간은 섞일 수 없는 것들을 뭉치고, 가까스로 겹쳐진 것들을 분리했다.
 
―보세요. 암수가 철을 따라 연을 맺듯, 자연의 이치는 이렇게나 경이로워요. 
 
허이경은 행렬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순한 비유가 끔찍했고, 끔찍한 건 늘 단순했다. 인간은 자연을 안일하게 해석했다. 생태교란종, 멸종위기종, 씨암탉, 종마, 종자. 이따금 진저리가 났다. 고유한 존재를 앞선 종 단위의 지칭은 그걸 알아듣지 않는 개체에게 쓸모가 없었다. 알아듣는다면 모욕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위기에 빠진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도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언급해야 그 위협을 상상할 수 있었고 원인의 축으로 인간을 비난하면 가뿐하게 대답했다. 역시 인간이 죽어야 해. 인류가 멸종해야지. 어디서부터 어떤 이들이 먼저 사라질지 궁금해 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면 그걸 보고 우는 자신을 어딘가에 꼭 전시했다. 마음 편해진다는 숲길은 사실 전장에 가깝고 녹색에서 찾으려는 자비나 온정도 착각에 불과했다. 허이경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높고 멀었다. 인간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대기였다. 그는 물이 필요한 곳에 불을, 불이 필요한 곳에 물을 내릴 것이다. 허이경은 미물이 된 심정을 주기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숲 해설사도 괜찮은 직업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해설을 하지 않을수록, 판단을 덧대지 않을수록 더 괜찮아질지 몰랐다. 그러나 일을 이어갈 수 없었다. 매일 8km를 걸어도, 술을 마셔도, 여행을 가도, 낯선 이와 누워도 잠이 안 왔다. 집중력이 흩어지자 드문드문 찾아오던 친구들과 안부 전화도 끊겼다. 주마등에 오는 일은 혼자 결정할 수 있었다. 그와 마지막까지 안부를 나눈 이웃 유은영에게도 말하지 않고 선택한 일이었다.
 
―다른 곳에 가보면 어때요. 
 
허이경이 고개를 들었다. 앞에 정오가 있었다. 둘은 힘없이 웃었다. 
 
―맨체스터도 청도도 가봤잖아요. 하와이 같은 휴양지는 안 끌려요.
 
―더 멀리요. 
 
정오가 건물 아래 운동장을 가리켰다. 둘은 경사가 완만한 시멘트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의자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요? 가만 보면 여기 최고령자인 것 같아요.
 
―저는 에스더가 언니 같은데요.
 
―이경씨는 원하는 이야기가 없어요? 
 
―어떻게 죽을 거냐고요? 남편을 구경하는 게 이상했어요?
 
정오가 허이경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난 그냥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망가진 여자야.
 
발을 내딛다 말고 자리에 멈춰선 정오가 허이경의 옷깃을 잡았다.
 
―놀랐어요? 
 
정오는 허이경이 소리 내 웃는 걸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클레멘타인이 했던 대사예요. 뭐, 생각해봐야죠.
 
―왜 자꾸 옛날 드라마, 옛날 영화만 봐요?
 
―다음 장면을 아니까. 다들 그래서 보겠죠. 
 
트랙을 일곱바퀴쯤 돌았을 때 정오가 입을 열었다.
 
―아예 몰랐던 건 슬프지 않은데, 왜 알고 나서부터는 슬퍼질까요. 
 
허이경은 앞을 보며 답했다.
 
―모르는 것까지 상상할 순 없잖아요. 그것까지 슬퍼하면 감당이 안 되니까요. 
 
―그건 자기방어 기제일까요, 이기심일까요.
 
―나눌 수 없지 않나요.
 
둘은 말없이 트랙을 더 돌았다. 연구소 단지는 어느덧 컴컴해졌다. 
 
―잡고 싶으면 잡아요. 안 좋아할 테니까 걱정 말고.
 
허이경이 손을 내밀었다. 정오는 천천히 그 손을 잡았다. 



8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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