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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교가 잠기는 날에는

강성은
2020년 07월 28일



잠수교가 잠기는 날에는
  
  
  
보리씨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었다. 깜짝 놀라 보리씨의 얼굴을 가까이서 살폈는데 옅은 숨소리가 들렸다. 
 
잠든 건가? 진짜로 잠든 건가? 
 
화장실에 다녀온 시간은 불과 오분 남짓이었는데 그사이 저렇게 곯아떨어지다니. 기면증이라도 있는 건가?
 
당황스러운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넓은 까페 안의 많은 사람들은 각자 떠드느라 이쪽 테이블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보리씨는 얘기는 나누는 중에도 몇번이나 하품을 했다.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잘 수 있다니. 나는 그가 깰 때까지 깨우지 않기로 했다.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우는 것도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소설을 꺼내 오늘 아침 전철에서 읽던 페이지를 펼쳤다. 
 
 
무슨 책 읽으세요? 
 
보리씨가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깼어요? 
 
네? 
 
잠든 것 아니었어요? 
 
아닌데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까페서 어떻게 자요? 
 
그러게요. 
 
보리씨는 분명히 잠든 게 맞는데 이상한 일이네. 나는 그저 갸우뚱하다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일은 후에도 몇번 더 일어났다. 자료를 읽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보리씨는 탁자에 엎드려 있거나 밥을 먹다가도 수저를 들고 눈을 감은 채로 몸을 휘청거리곤 했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나는 보리씨가 잠든 줄 알았다. 보리씨가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보리씨와 나는 한달 정도만 함께 일하면 되니까. 그리고 보리씨는 잠에서 깨면 놀랄 만큼 빠르게 언제 잠들었냐는 듯 다음 말을 이어가곤 했다. 보리씨와 나는 출판사에서 받은 녹취 알바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까페에서 보리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표정으로 보리씨가 달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제 알았어요. 미래씨 목소리를 들으면 잠이 오는 거예요. 어제 퇴근하면서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와서 알았어요. 이런 노래 알아요?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로 시작하는 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사예요.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잠이 오면 나는 잠을 자.’
 
그런 노래도 있어요? 처음 들어봐요. 
 
나는 보리씨가 읊어주는 가사에 웃음을 터트렸다. 
 
제목이 뭔데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네? 
 
진짜예요. 나중에 들어봐요. 
 
그런데 잠수교가 어디 있는 거죠? 
 
반포대교. 
 
아. 지나가본 적은 있는데 우리 집에선 너무 먼 곳이네요. 
 
저도. 
 
장마철이 되면 뉴스에 나오는 건 알아요. 잠수교 앞에서 우산을 든 기자가 현재 한강 수위가 얼마고 잠수교가 곧 잠길 거라고 얘기하잖아요.  
 
맞아요. 어젯밤에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데 가사가 진짜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그 노래 마지막 가사가 ‘사랑을 하면 나는 사탕이 먹고 싶어’거든요.
 
그게 뭐예요. 
 
나는 보리씨의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웃었다.  
 
저 원래 아무데서나 잠드는 사람 아니에요. 
 
보리씨는 좀 억울한 표정이었다. 
 
미래씨의 목소리가 저에겐 수면제인 거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론 아니에요. 전화하다가도 잠드니까. 과학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 주파수나 초음파 비슷한,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어제 밤새 제가 내린 결론이에요. 
 
그러니까 제 목소리가 수면제라구요.
 
네 맞아요.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리씨가 저를 만나기 전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 거죠? 
 
네. 잠이 오는 건 미래씨 때문이에요. 
 
보리씨, 잠이 온다는 말 재미있지 않아요? 내가 자고 싶다고 맘대로 자는 게 아니고 잠이 나한테 와야 잘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네요. 잠이 올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사투리래요. 경상도 사투리.  
 
진짜요? 몰랐어요. 
 
서울 사람들은 졸린다고 하잖아요. 
 
그럼 오늘은 잠이 미래씨한테 갔나봐요. 
 
네? 
 
미래씨 오늘 계속 하품하는 거 알아요? 
 
음. 사실은 어제 잠을 못 잤어요. 
 
왜?
 
거미줄 때문에요. 보리씨, 거미줄은 언제 생길까요? 
 
거미줄? 거미가 만들고 싶을 때? 왜요? 
 
집에 거미줄이 있어요. 
 
거미줄은 집집마다 있는 걸요. 평소엔 몰라도 이사 가려고 짐을 옮기다보면 꼭 어딘가에는 거미줄이 있더라고요. 
 
지난달에 세수를 하다가 욕실 창문 옆 천장에 거미줄이 걸려 있는 걸 봤어요. 거미는 없었고요. 청소솔을 들어서 거미줄을 걷어낸 뒤 잊고 있었죠. 며칠 후에 씻다가 문득 생각나서 보니까 여전히 모서리에 거미줄이 걸려 있는 거예요. 거미줄이 있으니 어딘가에 거미가 있겠구나, 내가 이 집에 거미와 같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거미 없애는 방법을 검색해봤더니 거미는 카페인과 계피를 싫어한대요. 그래서 집안 곳곳에 커피와 계피를 뿌리면 사라진다고. 어떤 사람이 ‘그 집은 거미가 살기 좋은 형태의 집일 겁니다. 함께 사세요’라고 써놓은 글도 봤어요. 
 
거미가 살기 좋은 형태의 집이라니. 그게 뭐예요. 
 
내 집이 아니라 거미집이고 내가 얹혀산다는 뜻이 아닐까요? 
 
보리씨가 까르르 웃었다. 오늘따라 생생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커피와 계피를 뿌려놓고 매일 거미줄이 보일 때마다 청소솔로 마구 휘저어 망가뜨렸는데도 다음 날이 되면 거미줄이 생겨났어요. 처음엔 욕실 그다음엔 냉장고 옆 모서리, 그다음엔 눈을 뜨니 침대 위 천장에. 
 
거미는? 거미는 없구요? 
 
네.  
 
보리씨는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장면을 포착하려고 어젯밤에 잠을 안 잤어요. 아무래도 밤새 내가 자는 사이에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봤어요? 
 
아니요. 책도 읽다가 영화도 보다가 한시간에 한번씩 집안을 둘러봤어요. 집안 곳곳을 환히 밝혀놓고 기다렸는데도 거미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긴 막대걸레로 천장과 벽 구석구석을 휘저었어요. 거미가 있다는 걸 아니까, 잠들면 금세 거미줄을 친다는 걸 아니까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돼서 벽 모서리를 얼마나 쳐댔는지 몰라요. 그랬더니 인터폰으로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마구 오더라구요. 새벽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저런. 
 
아무래도 거미는 내가 잠을 잘 때만 나타나서 거미줄을 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오늘 아침엔 거미줄 있었어요? 
 
아니요. 오늘 아침엔 거미줄이 없었어요. 
 
이상하네. 
 
혹시 자는 동안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내가 걸렸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희미한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기분도 들고. 
 
미래씨가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예요. 
 
나는 계속 하품을 했다. 그리고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자 보리씨가 말했다. 
 
일어났어요? 
 
제가 지금 잠이 든 건가요? 여기서? 
 
네. 
 
보리씨는 웃었다. 조금 멍하게 있다가 나는 탁자 위의 커피를 마셨다. 
 
이상한 일이 많네요. 
 
지금 밖에 비 와요. 
 
오늘부터 장마라고 하던데. 
 
잠수교가 잠길까요? 
 
비가 많이 내리면 잠기겠죠. 한강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수면 아래 불어난 물이 무섭게 바닥을 쓸어가겠죠. 
 
창밖에 우산을 쓴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이후 보리씨와 내가 함께 하던 일은 끝이 났다. 업무가 종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만나지도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창밖을 보며 이제 잠수교가 잠겼겠구나 한다. 보리씨의 잠은 안녕할까. 보리씨가 엿본, 보리씨가 가져간 나의 잠은. 


9회에 계속됩니다.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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