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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 슈퍼

이수명
2020년 07월 29일



 
칠성 슈퍼


 
우리 동네에는 칠성 슈퍼가 있다. 정확히는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옆 아파트 단지 쪽에 있는 슈퍼다. 더 정확히는 그 아파트의 옆에 문득 주택가가 시작되고 주택가 쪽에 붙어 있는 슈퍼다. 내가 처음 이 동네로 왔을 때, 밤에 산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칠성 슈퍼를 보았다. 지나갔다. 뭐야, 이름이 너무 이름 같잖아. 칠성 슈퍼, 무언가 잘 알 수 없는 감정이 시작되거나 이미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더운 여름날에는 왜 산책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하지? 하면서 했다. 특히 밤에 하는데, 더워서 빨리 걸을 수도 없고 걸을수록 땀이 나는데 무작정 나가곤 했다. 나가면 일단 여러 방향이 있다. 집이 언덕 위에 있어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 내려가는 길로 가면 다시 오른쪽과 왼쪽이 있고, 왼쪽 길은 다시 올라가는 길로 이어져 있다. 오른쪽 길은 시내로 통하는 길이고 내려가지 않고 평평한 길이다. 집을 나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고 한참을 올라가야 그 경사만큼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때 다 내려가지 않고 중간쯤 가서 왼쪽으로 틀어 가다보면 예의 그 칠성 슈퍼가 있다. 
   
칠성 슈퍼 앞에는 붉은색 둥근 플라스틱 테이블이 있고, 플라스틱 의자들이 몇개씩 겹쳐져 놓여 있다. 슈퍼는 작고 애써 단아하고, 선반마다 비슷한 과자 봉지들이 언제나 똑같은 포즈로 늘어서 있다. 그 앞 의자에 간혹 한두 사람 앉아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대개 의자는 비어 있다. 나는 늘 별생각 없이 그 앞을 지나가곤 하였다. 그냥 아, 칠성 슈퍼구나 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안으로 들어선 적이 있다. 그리고 물었다. 언제까지 열어놓으시나요, 한바퀴 돌고 오다 들를까 하여. 그런데 안주인이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대답은 않고 부스스 물었다. 술 들라우? 
  
늦은 시간, 창백한 형광등, 방향을 알 수 없는 습한 냄새, 휑한 실내와 대답 대신 던져진 억양 없는 말, 나는 충격을 받은 듯 밀려나듯 뒷걸음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멀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다시 올라가고 내려갔다. 
   
늘 걷곤 했다. 아무 일 없어도 걸었다. 어떤 일이 닥치면 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걸었다. 걷다보면 더 알 수 없어지기만 했다.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싫고 견딜 수 없으면 무작정 되는 대로 걸었다.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사물, 상황, 표정, 어떤 것은 집요하게 따라왔다. 누군가의 말이 따라오면 걸었다. 말은 대표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이 던져지면 세계는 깨졌다. 깨진 세계 속을 걸었다. 말이 따라오지 않을 때까지 걸었다. 시간이 걸렸다. 늘 시간이 지나야 했다.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시간이 이겼다. 그래서 남은 것은 오직 이것, ‘한참을 걸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로 낮보다는 밤에 걸었다. 낮에 걷는 것과 달리 밤에 걸으면 감각이 쉽게 둔해졌다. 얼마를 걸었는지, 누가 걷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걷는지, 누가 나를 밀고 가는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걷고 있는가, 걸어가는 이 덩어리는 무엇인가. 
  
이 밤
이 밤
다 같이 밤을 뒤집어쓰고 있는 중입니다.
서로 무엇에도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밤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밤에 속해 밤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물 안에서 어떤 사람은 밖에서
밤입니다.
  
나는 밤에 걷는 사람이고 밤에 걷는 사람을 보고 밤에 걷는 사람들에 섞여 있다. 밤은 아직 끝날 것 같지 않다. 나무와 나무 앞에 잔뜩 쌓여 있는 거대한 쓰레기 봉지들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또 쉽게 끝날 것도 같다. 다음 골목엔 이런 것들이 벌써 다 없을 것 같다.   
   
어디야?
응 밖이야
들어가는 길이야?
아니 아직
뭐 하는 중인데?
길을 건너려고 해, 작은 길을 건너고 또 4차선 도로를 건너려고 서 있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올래?
아니 괜찮아
  
두번 길을 건너고 칠성 슈퍼로부터 한참 멀어졌다. 이쪽은 동네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작은 상가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안이 비치는 투명한 유리 너머 사람들이 모여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두세 그룹씩 모여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있다. 손에 들린 술잔, 무어라 열심히 말하는 제스처, 끄덕이는 머리들, 그렇구나, 사람들은 늦은 저녁이면 술을 마시는구나. 집으로 가기 전에 걸음을 멈추고 술집 안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는 거다. 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맥주 거품에 하루의 비밀을 희석시켜 쏟아내고 마시고 종결시킨다. 처리한다. 웃으며 지껄이며 부딪치며, 테이블이 젖고, 붉은 재킷이 의자 밑으로 떨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루를 처리한다. 
  
나는 밖에 잠시 멈추어 서서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솜씨를, 그 친근하고 안정적이게, 능숙하게 하루를 처리하는 기술을 별세계인 양 지켜보았다. 칠성 슈퍼 앞의 플라스틱 테이블이 떠올랐다. 술 들라우? 하던 말도.   
 
 


이수명
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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