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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임종 연구소(8회)

박문영
2020년 07월 30일



―트레이닝 횟수를 줄일 필요가 있어요. 시뮬레이션이 능숙해지면 오류가 생깁니다.
  
―중간 체험 영상들도 확인해야 해요. 
  
―그걸 전부 볼 순 없어요.
  
따로 분류해야 할 데이터는 종종 나타났다. 지원자들 중 일부는 폭력 속에서 임종을 맞았다. 애인을 찾아간다는 여자는 그를 만나자 쉬지 않고 주먹질을 했다. 남자는 피떡이 되어가는 동안 미동도 하지 못했다. 석유통을 들고 산에 오르는 여자도 있었다. 그는 타오르는 숲 앞에서 눈을 감았다. 출국 기록이 없는 여자는 호주 바닷가에서 관광객들을 지프차로 들이받았다. 남편의 정수리로 엄청난 양의 촛농을 떨어뜨린 이도 있었다. 그는 눈앞의 뿌연 기둥을 골똘히 구경하며 숨을 거뒀다. 
  
―암묵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의식 아래 숨겨두고 들추지 않았던 이야기가 이렇게 튀어 나오고 그건 아무도 막지 못해요. 모호하고 기이한 서사는 계속 나올 거예요. 문제는 나쁜 결말들이죠. 이루지 못한 욕망이나 없었던 일을 기억하는 지원자들이 있어요. 비참한 방식으로요.
  
―기억이야 원래 변동이 심하죠. 온전히 유지되지 않고 정확하지도 않아요. 책, 영화, 드라마, 다큐, 뉴스. 논픽션과 픽션이 머릿속에서 마구잡이로 섞이기도 하고요.
  
―사랑했던 사람들 전부를 한 침대에 불러내거나 아내 말고 다른 여자 곁에 있는 사람을 언급하는 게 아니에요. 그따위 가벼운 부작용이 아니라고요. 이런 걸 고통 없는 임종이라고 할 수 없어요.
  
―고통이 아닌 거죠. 지원자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때에 이룬 꿈이에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요. 
  
―이 지경으로 훼손된 기억인데요. 이건 게임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이곳에서 진짜 죽는다고요.
  
―아름다움의 형상은 개인마다 달라요. 그건 각자의 방식으로 쫒는 거죠. 우린 그걸 금지할 수 없고요.  
  
―이 사람들이 대체 뭘 회복했나요. 순전히 착란 속에서 죽은 것 아닌가요.
  
―병을 유지하고 나아지지 않을 권리도 있어요. 이런 작별도 일종의 회복이고 화해예요.
  
계속되는 논의에도 연구원들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보안에 보안을 가한 자료는 깊숙이 처박혔다. 질문을 더 잇지 않기로 한 직원들은 결근 없이 근무했다. 질문을 퍼붓기 위해 출근하는 직원은 천미조뿐이었다. 정오는 천미조의 눈에 그가 어떻게 보일지 얼마간 신경이 쓰였다. 말없이 자리만 지키는 꼴이 한심해보일 듯했다. 같은 업무를 소화해도 지원자들에게 더 칭찬받는 건 늘 자신이었다. 여성 지원자들은 연구소를 늦게 온 학교처럼 바라볼 때가 있었고 그와 마주치면 눈치를 보는 학생 같이 굴기도 했다. 정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일에 필요 이상의 의욕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한달에 두번씩 헤어진 아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아들을 만나러 온 아내와 다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집이 조용해지면 어느 결에 허이경이 떠올랐다. 
  
식당엔 주로 연주곡이 흘렀지만 점심식사 시간엔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도 나왔다. 성별과 연령은 음색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중저음의 보컬은 안정적이었다. 저작권이 소멸된 시가 가사로 쓰였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선율이 창안으로 쏟아지는 여름 햇빛과 뒤섞였다. 
  
―언니, 이 노래 뭔 소리야.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하다는 뜻이야.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참 나, 그걸 누가 모른다고 밥 먹을 때도 알려줘? 예의가 없다. 
  
오늘 식단은 귀리죽, 얼갈이 된장국, 들기름에 구운 두부, 참나물 무침, 감자조림, 청포묵 버무리였다. 주로 염도 없이 질척이는 반찬들이 나왔다. 젓가락 아래 손을 받친 장에스더가 에이 씨,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묵이 손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손으로 받으려고 했는데, 진짜로 떨어지니까 놀랐지?
  
―그럼 안 놀라? 아, 기름 다 묻었어. 
  
―봐봐. 죽으려고 해도, 진짜로 죽을 때는 놀랄걸.
  
―뭐래. 재수 없게.
  
정오와 천미조가 그들 곁에 앉았다. 인사를 건넨 건 천미조였다.
  
―두분이 여기서 제일 친한 것 같네요. 
  
장에스더가 허이경을 쳐다봤다. 말을 나눌지, 말지 알려달라는 눈빛이었다.
  
―트레이닝은 조만간 시작할 거예요.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시지 않아도 돼요.
  
천미조가 손을 저으며 답했다. 
  
―아뇨, 이경씨. 의무는 아니에요. 지정된 횟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시설은 자유롭게 쓰시면 돼요. 저희는 그냥 같이 밥 먹고 싶어서 온 거예요. 
  
―식사 마치면 산책도 할까요.
  
정오가 허이경을 보며 물었다. 다리를 떨던 장에스더가 허이경의 팔짱을 꼈다. 
  
―어디 좋은 데 가요?
  
건물 입구 의자에 앉은 여자들 중 한명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세 여자는 오랜 친구들 같았다. 
  
―바람 쐬러요. 근데 다들 안 더우세요?
  
―그늘이라 괜찮아. 난 말라비틀어져서 땀도 안 나요.
  
사진을 쥐고 있던 여자가 답했다. 그의 자녀들은 중년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손에 붙들린 건 둘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근린공원 운동기구 앞에 선 딸과 아들이 손날로 하트를 만들던 순간이었다. 멀리 도로가에는 흐릿한 오토바이와 이팝나무 몇그루가 보였다. 아이들 얼굴엔 한점의 티도 없었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터질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트레이닝마다 이때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집중했다. 그들의 학비, 전세보증금, 스터디카페 창업비, 주식 투자비, 곰탕집 프랜차이즈 인수비, 카드빚이 더해지는 동안 여자는 어딘가에 앉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은 성년을 통과하면서부터 이상하게 뭘 받아갈수록 냉랭해졌다. 계획을 말할 때, 제안 받은 사업에 대해 설명할 때 목소리는 불안했고 전화로 뭘 부탁할 때 주변은 너무 시끄러웠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더 데면데면해진 지금의 자식들은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자는 품안에 붙어 떨어지지 않던 7살, 5살의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연구소를 둘러싼 공터 부지는 삭막했지만 산책로는 제법 포근해 보였다. 체육관 지붕 위로 샛별이 잠깐 머물러 있었다. 넷은 여자들이 준 캐러멜을 혀로 천천히 굴렸다. 
  
―메뉴가 맨날 왜 그래. 미식거려. 떡볶이 같은 건 안 나와?
  
―에스더씨만 좋아하는 음식은 아무래도 어렵죠. 그런 건 트레이닝 해보면 되잖아요. 아니면 주말에 외출해서 드세요.
  
장에스더는 천미조의 권유를 무시하고 말했다.  
  
―치킨 맛도 안 떠올라. 트레이닝 때 씹어도 아무 맛이 안 나던데?
  
―오래된 기억이었나봐요. 메뉴는 운영팀에 한번 문의해볼게요.
  
―어차피 배양육으로 만들 거면서. 
  
―더 바삭바삭하게 해달라고 하면 되죠.
  
―조리사가 참 좋아하겠다. 짜증 나. 
  
천미조와 장에스더 뒤로 정오와 허이경이 걸었다. 둘의 팔은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닿았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엔 대강당에서 리셉션이 열렸다. 매달이라 봤자 지원자 개인에겐 단 세번의 행사였고 화합의 밤,이라는 식상한 제목도 붙었다. 잠이 부족한 간병인들은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신경과 면역 체계에 더 많은 문제가 생긴 지원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외의 이들은 보라색 유니폼 대신 사복을 입고 모였다. 다들 이날만큼은 보라색 계열이 아닌 옷을 골라 입곤 했다. 테이블엔 핑거 푸드와 샴페인이 놓였고 시대를 풍미한 유행가 수십곡이 흘러나왔다. 누구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춤을 출 수 있었다. 시설을 각자 이용하던 지원자들도 이 밤엔 서로에게 훨씬 관대해졌다. 민트색 원피스를 입은 천미조는 의자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미조씨, 저희랑 놀아요.
  
지원자 한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지만 그는 두 사람을 지켜보느라 자리에서 늦게 일어났다.
  
정오가 내내 웃고 있었다. 그는 허이경이 몸을 비틀 때마다 손뼉을 쳤다. 둘은 강당 구석자리를 돌며 초라한 춤을 췄다. 그들과 부딪힌 지원자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넘어진 사람은 바닥을 두드리며 폭소했다. 정오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신 걸 후회하지 않았다. 허이경이 그의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창문 아래, 와인과 맥주를 섞어 마신 이들이 둘러앉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자 허이경이 정오의 옷깃을 끌고 사람들 쪽을 향해 걸었다. 얼굴이 불콰해진 이들이 많았다. 
  
―오, 두명 합류. 이제 새로운 게임이 필요하겠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제일 우울한 기억을 말해보기로 해요.
  
―지금 이 순간인데요. 와, 이런 거 진짜 싫어. 술기운에 진실 말하기. 그냥 자기 말 욕심껏 쏟아내는 시간이잖아. 술 마시면 자의식이 고양돼서, 그게 기뻐서 흥분하는 것뿐이라고. 다 호르몬의 농간이라 이거예요.
  
―와, 유식한 분. 근데 패션 감각 꽝인 사람은 안 껴줄 거예요. 자긴 말도 옷도 고지식하니까 탈락.
  
지원자들이 서로의 몸에 기대며 웃었다. 누군가 가벼운 일화를 꺼내는 것을 시작으로 한명, 두명 말을 잇기 시작했다. 늘어난 티셔츠에 보풀이 잔뜩 붙은 카디건을 걸친 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옷이 담요로 보일 만큼 깡마른 여자였다. 여름철 습기를 머금은 옷에서는 나쁜 냄새가 났다.
  
―저는 시력 수술을 하고 후회했어요. 참을 수 없는 게 많았지만 뜻밖의 장면 때문에 구역질이 났거든요. 시야가 선명해지니까 사람이 뭘 먹는 모습이 싫었어요. 쉬지 않고 몇시간씩 입 속에 음식물을 넣는 꼴이 눈물 나게 흉한 거예요. 우물거리는 입술, 울퉁불퉁한 볼, 튀는 침, 길고 붉은 혓바닥, 턱과 입가의 흔적. 끝없는 허기가 무서웠어요. 역했습니다. 인간이 반복하는 짓거리는 많지만 몸에 뭘 넣고 씹는 건 못 봐줄 추태였어요. 왜 멈추질 않죠? 도대체 왜 만족을 안 하죠? 막을 수 없는 병, 기후 변화, 망조들 전부 우리가 도중에 단념하지 않고 아무 데고 들쑤시다 벌어진 사태예요. 공간을 있는 대로 차지하고 질서를 흩트리다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를 만난 겁니다. 
  
천미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피해망상, 섭식장애라는 여덟 글자를 썼다. 자기가 먹고 있는 건 왜 신경을 안 쓰지. 불안을 과식하는 여자였다. 게다가 인간 군집에서 자신만을 골라내 밖으로 빼놓고 있었다.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떨었다. 옆 사람이 흘러내리는 카디건을 정돈해주면서 어깨를 감쌌다. 자기 순서가 되자 허이경이 물었다. 
  
―진짜 말해도 돼요? 



9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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