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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를 횡단하기(3부)

가시화
2020년 09월 23일



‘가시화 프로젝트’는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 게재 거부를 계기로,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시인 가운데 일부가 모여 결성하였습니다. 
〔문학3〕은 가시화 프로젝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전반적인 논의의 방향은 가시화 프로젝트가 던진 의제를 중심으로 하였고, 
〔문학3〕이 덧붙여 물었습니다. 
 
이번 키워드3 역시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가시화 프로젝트의 좌담을 읽고 생겨나는 생각과 고민 등이 있으시다면,
munhak3@munhak3.com으로 원고지 30매 내외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한분을 선정해 연재의 마지막 키워드3의 지면과 동일 지면의 고료에 준하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댓글 중 한분께는 문학3 신간과 책 선물을 드립니다. 
활발한 토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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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0년 7월 11일
진행: 황인찬
패널: 김동균 이원석 이유운 차도하 차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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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가시화-(매체를 횡단하기)-대화

 
황인찬: 1부에서 『신춘문예 당선 시집』이 어떤 한 출판사에서만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고, 책이라는 형태에 한정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말하자면 다른 형태의 매체, 다른 형태의 발표 방식, 혹은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많이 고민하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차도하 시인께서는 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계시지요? 관련한 얘기를 여쭈어보고 싶네요.
  
차도하: 당선 시집 청탁을 거절했기 때문에 당선작 외에 응모했던 시 네편이 공개가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다른 계간지를 통해 제 시를 발표하기에는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비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럼 저는 신인으로 나와 막 조명 받을 때 작품 발표를 하기 어려운 거예요. 일단 사람들에게 바로 당선작들을 공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이걸 무료로 공개하면 선례처럼 남아 다른 분들께 부담을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일이 생길까봐 여러 고민을 하다가 메일링 서비스를 선택하게 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새로운 형태의 매체에 도전을 하고 싶었던 것이냐, 메일링 서비스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작정이냐 같은 질문들을 받게 됐어요. 물론 부정적인 의도로 던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할 거냐에 집중이 되더라고요. 기존 궤도에서 벗어나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아니었거든요. 저희가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이곳의 자정을 바라고 있고 그게 힘들지만,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기존 궤도는 망해야 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제가 SNS에 ‘종이 문예지 망했어야 한다’ 이런 글을 올리긴 했었지만요.(일동 웃음)
  
황인찬: 네. 차도하 시인께서 메일링 서비스를 택한 건 일단 당선 시집을 거부했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줄었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신인이라고 하는 위치에서 작품을 보여줄 기회나 지면이 주어져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서 가능해지니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찾은 것이고, 나를 알릴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이원석: 당선 시집이나 고료 문제 모두 위계가 작동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위계라는 건 권력의 비대칭에서 나올 테니 권력의 분산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들이 좀더 다양해지고 독립 매체도 활발해진다면 그것 자체가 권력의 분산이라는 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우리가 계속 선택받는 게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황해문화』는 원고 투고로 지면을 채운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방식도 있고 자유로운 웹페이지나 메일링 서비스 같은 방식들이 다 권력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황인찬: 투고 자체는 사실, 권력이 작동하기 용이하게 해주는 방식일 수도 있을 텐데요?
  
이원석: 매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어야죠. 기다리고만 있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매체에 내가 직접 투고하는 방식이요. 완전 투고제의 장점은 애초에 청탁서가 오지 않아 검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작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등단의 여부를 따지지 않는 투고제 방식은 등단제도의 문제점까지 극복해보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가지 방식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동균: 문예지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 지면에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지금까지 모두의 현장이었다고 생각하고, 또 앞으로도 공공의 장이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어요. 어느 문예지건 작품이나 작가를 선별할 수밖에 없는 구조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고, 문예지를 내는 출판사, 혹은 편집위원이 가진 문학적 감수성이나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작품을 선별해서 독자에게 소개하기 때문에 문학의 현장이 충만해졌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선별’에는 당연히 출판사와 편집위원의 안목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런 면에서는 다양한 채널의 등장이 권력이라는 것을 조금씩은 분산하고 있는 것도 맞아 보이고요.
   
황인찬: 말씀하신 대로 독립문예지가 늘어나고, 여러 플랫폼이 생겨나고, 소시집 등 시 출판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발표 경로의 다각화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요. 십년 전, 제가 갓 데뷔했던 시절과 지금은 지형도의 감각이 달라지긴 한 것 같고요.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신인의 입장에서는 이 변화가 체감되기는 어렵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발표 경로의 다각화 자체는 변화한 환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떠신가요? 권력의 분산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이러한 환경 변화가 권력의 분산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체감하고 계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체감하고 계시는지, 아니라면 이 다각화가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까닭이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차도하: 체감은 되지만 크지는 않다고 느껴요. 아무래도 웹에 공개하면 좀더 쉽게 작품을 열람할 수도, 내가 여기 발표했다고 홍보를 할 수 있어 좋기는 해요. 서점 어디에 꽂혀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문예지보다 낫다는 생각을 해요.
   
김동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진다는 건 시장의 규모가 더 커진다는 점에서도, 보다 많은(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 발전적인 거겠죠? 이제 독자는 단순히 공급받는 자로 머물지 않고, 과거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참여적으로 변했어요.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방송이 많아지는 사회 일면과도 비슷하죠.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고요. 메일링 서비스나 독립문예지, 웹진은 아마 당분간 활발히 발행될 것 같아요. 저는 『아는 사람』이라는 웹진에 자발적으로 시를 실었는데요, 이전에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람이 보았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문예지를 통한 피드백이 오는 것도 전혀 아니었고요.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웹진에서는 명확하게 조회 수가 표기되고, 또 댓글 기능도 있었으니까 그런 점은 나름대로 시원하더라고요. 한편 조회 수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량한 한 개인의 문제니까요.(웃음)
  
차도하: 아녜요, 신경 쓰일 거 같아요!(웃음)
  
김동균: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등단 해에 신춘문예 특집이란 기획으로 여러 군데에서 청탁이 오는데요, 이미 너무 많은 창작자가 있는 시단에서 신인들의 경쟁구도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컨대 “우리 문예지 신춘특집에 실리게 된 걸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건, ‘선택된 것’을 “축하”한다는 뜻이잖아요. 애매한 지점에서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해요. 몇몇 신인들을 선별하고 소개하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더 좋은 방향이 있을 것 같거든요. 신인특집이라는 기획이 홍보 삼아 한꺼번에 내세워지기보다는 월, 격월, 분기별로 나눠서 실어줄 수도 있을 텐데. 너무나 편리한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양한 지면에서 각기 다른 신인들이 기성 시인들과 동일한 지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더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우리 문예지가 뽑은 신인이 된 것, 축하드립니다’와 같은 뉘앙스는 사라져야 하고요.
   
이원석: 경쟁도 경쟁이지만, 문예지에서 신춘문예 특집이라고 지면을 마련했는데 어떤 당선자에게는 청탁이 안 가요. 그러면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청탁을 못 받았지? 선택의 기준은 뭐였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는 거예요. 여기에서도 어떤 권력이나 판단이 작용하는 걸까? 그럼 그 판단이 공정했을까? 혹은 몇명의 사람들이 판단했을까? 회의를 통해 판단했을까? 시인들의 무엇을 보고 판단했을까? 그런 부분들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신춘문예 특집이 어떤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을지 말이에요.
  
황인찬: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청탁 시스템 자체에 던지는 의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예지가 지향하는 문학성에 따라 청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문학성이라는 것이 단박에 규명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 청탁 시스템의 불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내용에서 청탁 시스템 자체가 신인들에게 던지는 부담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신인 특집이나 신춘문예 당선 시집 등의 기획에 응하지 않으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도 자체가 문제점이라는 지적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인 특집으로 대표되는 시스템 자체가 경쟁이나 욕망을 부추기도록 하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여요. 문학장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작동하고 있는 경쟁의 체제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문학장이 일종의 ‘아이돌 오디션’처럼 생각될 때도 있었어요. 저 또한 그 오디션의 경쟁자로 스스로를 여겼던 때도 있었고요.
  
한편 김동균 시인의 발언이 흥미롭게 들리기도 했는데요. 문예지에 작품을 싣는다고 과연 몇명이나 작품을 볼까 하는 말씀이요. 지방 문예지든, 소위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예지든, 잡지가 담론 공유의 주요한 매체였던 과거에 비해 한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본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다른 매체에 대한 욕망은 실질적인 독자들과 조금 더 가깝게 만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일링 서비스도 그렇고, 아까 이야기 나왔던 자유게시판 형태의 작품 투고 방식도 마찬가지겠지요. 접촉이 용이하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도 있고, 그래서 더 많이, ‘잘’ 읽힐 수도 있는. 또 이러한 방식은 이야기 나온 평가와 경쟁의 체제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저 역시 시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평가 당한다는 감각이 그저 반갑지만은 않았거든요. 단지 독자와 만나는 기쁨에서 끝나지는 않는, 문단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권위의 구조가 존재하니까요.
  
어느정도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 새로운 채널, 혹은 새로운 접촉 방식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 부분은 없을까요? ‘다른 채널’을 통해 만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더 말씀하셔도 좋고, 혹은 이러한 다른 채널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을 테고요.
  
이원석: 앞서 말씀드렸듯이, 발표할 수 있는 채널이 한정적이라면 분명히 권력이 생기니까요. 이 청탁을 거절하면 내가 발표할 지면이 없다는 것과 이 청탁을 거절해도 나는 다른 수단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다른 차원이에요. 그렇게 되면 이 출판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여기밖에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청탁을 거절하면 안 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죠.
   
이유운: 아무래도 기존 문예지는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벽이 있잖아요? 그래서 메일링 서비스나 독립문예지나 웹진 같은 매체들이 접근성 자체를 계속 낮추는 시도를 하는 거고요. 근데 이렇게 접근성을 낮춘 신생 채널들에 독자들이 늘어나야지만 권력의 분산도 좀더 효과적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뜩이나 이렇게 좁은 판에서 간극을 만들고 균열을 만들고 틈을 만들고, 이게 어디까지 유효할지에 대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결국 이 판 자체가 조금 더 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메일링 서비스나 웹진들이 그런 외연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런 채널들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일들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고요.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면 문예지는 살면서 한번도 안 본 친구들도 있어요.(웃음) 전자책 발간도 활발해졌는데 문예지는 전자책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이 없고 종이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도 문예지는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문학이 너무 실생활과 동떨어져서 사람들에게서 유리된 뭔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러니까 ‘문단 내 성폭력’ 같은 얘기를 해도 아무도 모르고, 청탁서 문제에도 근데 그건 예술이지 노동이 아니잖아, 이런 말도 듣고요……
  
차도하: 제가 최근에 경제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시장에서 발생하는 대다수 문제는 시장이 커지면 된다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웃음) 대안 플랫폼 얘기랑 연결을 시키면, 시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새로 나오는 걸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은 아니고, 시장 참여자의 수는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대안 플랫폼이라는 말을 썼는데, ‘대안’이라는 말로 기존 매체들을 보완하고 ‘대체’하기 위한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도 부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신생 채널들이 채널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그런 시선들을 받게 되는데 그게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차유오: 여전히 독립문예지나 웹진 같은 새로운 채널들도 기존 채널처럼 청탁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고, 투고는 부수적으로 한다고 알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청탁이 없으면 독자층이 생길 수 있을까 싶어요. 도서 시장만 봐도 베스트셀러에 편중되어 있으니까요. 문예지 같은 경우에는 읽는 사람들만 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자층이 한정적이고 시장 자체가 작다는 느낌이 들어요. 새로운 채널은 기존 채널보다 접근성이 낮아진 것은 맞지만, 여전히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이용하고 새로운 독자들이 많이 유입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문학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조금 더 쉽고 일상에 가까운 형식으로 채널이 변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차도하: 문학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작품을 읽고 곧바로 떠들 수 있는 공간이요. 특히 시의 경우, 근작에 대해 떠들 공간이 없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문학플랫폼 『던전』의 경우 리뷰 게시판이 개설되어 있어 그곳에서 게재작들에 관한 리뷰를 쓰고 의견을 나눌 수가 있는데요. 이 게시판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던전』에서 이벤트를 열기도 했는데, 참여율이 높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유운: 제가 문학 싸이월드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농담처럼 SNS에 쓴 적이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신생 웹진이 생기면 참여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읽고 ‘아 이거 좋았다’ 하고 끝이 아니라, 감상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등 문학작품을 쓰고 읽는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창작하고 싶고 그런 그룹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데 기존 채널들이 그런 욕구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신생 플랫폼의 장점은 독자들이 독자로만 머물지 않고 함께 뭔가 할 수 있다는 거고, 이런 걸 통해서 판 자체가 커질 수 있다고 봐요. 저도 지금 『시대의사랑』이라는 웹진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몇 명이 웹진을 보았다는 걸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댓글로 즉각적인 소통이 되니까. 저는 그래서 웹진이 제일 긍정적인 채널인 거 같아요.
  
이원석: 적극적인 독자 유입 같은 부분들도 있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학 시스템의 공정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기존 매체들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적하며 생겨나는 여러 신생 매체들이 어떻게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해요.
  
차도하: 신생 플랫폼이라고 다 공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신생이어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을 것이고요. 또 웹진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수익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해요. 『문장웹진』의 경우 공적인 차원에서 운영되니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이 만든 『시대의사랑』과 『아는사람』은 웹 자체에서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구조가 현재로선 아니에요. 『던전』의 경우 구독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수익을 극대화한 모델은 아닌 것 같고요. 다른 연재 플랫폼들과 비교해보면 작품들이 다음 회에 이어지는 식으로 연재되는 구조가 아니고, 회당 결제 시스템이 없고, 과금 유도도 그만큼 덜해요. ‘그럼 과금 유도가 되는 작품을 쓰면 되잖아?’라고 하기엔, 돈을 지불할 만한 요인이 개별 재화에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 결론적으론 수익구조를 어떻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탑승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웹의 경우 무료로 이용한다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연재 플랫폼들 대부분이 부분 유료 시스템이라서 소위 ‘무과금러’도 콘텐츠를 즐길 수가 있고요. 어떤 부분을 무료로 하고 어떤 부분을 유료로 할지, 제공하는 콘텐츠를 유료로 할지 혹은 광고 같이 다른 시스템을 이용할지 정해야겠죠. 『아는사람』의 경우 제공하는 콘텐츠나 웹 자체에서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아서 지금은 완전 무료 상태인데 (물론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용자가 그만큼 많은 듯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운영진들의 출혈이 커 보여서요.
 
『시대의사랑』의 경우 웹에서 선공개가 되고 웹을 통해 독자들이 참여하여 작품을 같이 만든 뒤, 단행본으로 제작하고 굿즈도 판매하고 있는 형태예요. 무료/유료 구분이 확실하고, 유료 콘텐츠가 무료 콘텐츠와 이어져 있어서 수익 구조가 어느정도는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이니 수익이 많이 발생하진 않았겠지만 앞으로 더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운영자인 유운님이 계셔서 하는 말은 아니고요.(웃음) 저는 실무자가 아니니까 현실과 다른 말을 했을 것도 같아서 유운님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싶어요.
  
이유운: 사실 『시대의사랑』은 단발적으로 운영하려 했어요. 경기문화재단의 ‘예술백신 프로젝트’ 공고를 보고 일회적으로 동인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신청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웹진을 시험 삼아 개설하고, 댓글로 작품을 잇는 등 여러 문학적 실험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도하님 말씀대로 『시대의사랑』은 웹진과 문예지가 각각 기획되고 유/무료 콘텐츠가 나누어져 있다는 점에서 다른 웹진과는 다른 측면이 있어요. 문예지와 리워드 굿즈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지만 어느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텀블벅 같은 펀딩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수익 창출보다는 제작비 충당에 불과해요. 지원 사업이 없으면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아요. 다른 문예지들도 그럴 것 같지만, 독립 매체는 기획자들이 스스로를 깎아가며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뭔가를 ‘만든다’기보다 ‘버틴다’라는 감각이 저를 압도할 때도 있어요. 
  
최근에 대학문예지 『스펙트럼』이 텀블벅 후원 리워드 중 ‘광고’를 기획했더라고요. 책에 한줄이나 한면, 원하는 광고를 실어주고 광고료를 리워드처럼 받는 형식인데요, 생일, 청탁, 고양이가 귀엽다,까지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받고 있더라고요. 『시대의사랑』도 ‘시즌 2’에서는 그런 식으로, 독자와 작가가 직접 자기 PR을 할 수 있는 방식의 광고를 기획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황인찬: 한편 문학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고민할 때, 대부분은 주로 ‘웹’을 중심으로 하는데 그러면 온라인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을 배제한 채로 독자를 상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세대, 비장애인, 웹 접근에 용이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독자와 만나는 경로를 구성하게 될 것이고요. 아무래도 소수지만 웹 경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 여전히 종이책을 통해 경험과 사유와 지적인 체험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종이책을 통해 문학작품을 접하는 일이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문화잖아요. 편중된, 편향된 방식으로 독자들을 상정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가 차별 없이, 소외됨 없이 문학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문학작품에 접근하는 경로의 다각화면에서 어떤 부분을 더 고민해야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가시화 프로젝트 팀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원석: 말씀하신 것처럼 웹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문화로 완전히 치우친다면 역시 소외되는 독자들이 생겨날 거에요. 더 먼 미래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웹 지면이나 전자책 같은 매체도 기존의 종이책과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해나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시대의 사랑』이 좋은 예일 것 같아요. 웹진으로도 운영하고 텀블벅을 통해 종이책인 독립 문예지 만들기도 병행하니까요.
   
김동균: 결국에는 하나의 지면에 하나의 웹진이 동시 운영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봐요. 종이 문예지 하나만으로도 이익을 내기 힘든 지금의 현실에서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웹진을 하나의 홍보 채널로 인식하면 지금 운영되고 있는 ‘문학3’이나 ‘주간문학동네’ 같은 채널이 더 생겨날 수도 있다고 보고요. 그렇게 웹에 게재되는 작품은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적절한 기간 동안 인큐베이팅되면서 홍보의 기능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봐요. 웹을 선호하는 독자와 지면을 선호하는 독자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었다고 느꼈어요. 
  
한편으로 아직까지 웹진은 작품 생산에 초점을 두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창작자 중심의 웹진에서는 게시된 작품이 쌓이는 동시에 빠르게 휘발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아직까지 웹진은 등단/비등단 구분 없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란히 동행한다는 면에서 유효한 기능을 하고 있으니, 나아가서는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거나 웹진과 문예지의 경계를 허물고 작품을 심도 있게 리뷰하는 일도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어요. 작품을 깊고 넓게 향유하는 일은 여전히 평론가나 등단자 중심인 것 같아서요. 혹은 작품 리뷰만을 다루는 잡지나 콘텐츠가 나와도 좋겠고요. 이 모든 게 문학장에 활력을 주는 기획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비대면 시대에도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황인찬: 지금까지 새로운 채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요. 투명성의 확보, 독자와의 보다 직접적인 접촉 등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기성 매체의 한계점에 대한 보완으로서의 측면에서 많이 이야기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채널’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그 채널이 새로운 것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말 기성 매체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점에서 달라질 수 있을까요?
  
차도하: 지금 ‘다른’ 채널이라고 표현하고 있잖아요. 그럼 기존 채널, 예컨대 기성 문예지 등에 작품을 발표할 때와 신생 매체에 발표할 때에 창작자들의 마음가짐은 같은가 고민해봤었거든요. 주제랑은 약간 떨어져 있는 듯한데, 어떤 독립 매체의 기획자분이 그런 걸 느끼신 적이 있대요. 기성 작가가 글을 실을 때 기존 매체보다 수준이나 완성도가 낮은 글을 보내거나 의도적으로 실험을 하는 것 같다고요.
  
황인찬: 새로운 채널이나 다른 형태의 매체들에 대한 필요성, 갈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작가들이 매체들의 급을 나누는, 사실 그런 폐해들이 있지 않느냐는 말씀이시군요.
  
이유운: 생각해보니까 저는 등단하고 나서 거의 독립문예지에 작품을 실었는데, 저는 정말 실험적으로 작품을 쓸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제가 ‘청과녹’이라는 예술협업 프로젝트 팀에서 시각예술작품과 문학의 융합을 통해 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작품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있기도 해서요. 그렇게 형태적으로도 다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약 없이 쓰고 실을 수 있게 되니까 좋았어요. 근데 만약에 소위 말하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청탁서가 왔을 때 같은 작품을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발표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거기서 반려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요. 등단 후 앞서 말한 일련의 문제들로 저는 문단이 굉장히 위계적이고 억압적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저에게 기존 문예지들이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목소리를 기대하고 청탁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불신이죠. 이런 맥락에서 제가 독립문예지에 애정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정말 실험적 시도가 가능한 곳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우리가  제도권 안에 있는 메이저 문예지에서 어떤 충격이나 간극을 줄 수는 없었겠네? 싶기도 하고요. ‘대안’ ‘독립’ 같은 말도 어디서 독립되어 있는지, 무엇에 대한 대안인지, 그럼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지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독립문예지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이원석: 근데 지금 얘기되는 마음가짐 같은 부분은 실제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판단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대안 매체들의 긍정적인 작용이라 한다면 청탁서 같은 부분이에요. 독립 매체의 청탁서를 보면 원고료도 지급 기한도 명시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문제의식을 느끼고 만들었는데 기존 매체들처럼 똑같이 답습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개선이 계속되면 기존에 있는 매체들도 변화를 인지하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겠죠. 그런 변화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차도하: 문예지 소개하는 멘트만 봐도 사실 알 수 있어요. 『TOYBOX』 같은 경우 애초에 실험을 강조하고 있고요. 기존 문예지는 출판사 이름을 걸고 나오다보니 예측되는 경향성이 있어요. 각 출판사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자음과모음』은 혁신호를 발간하면서부터 객원 에디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매호 다른 게스트가 기획을 꾸리고 있는데요, 저는 이 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만약에 정말 문학판이 커져야 하고 뭔가가 더 나와야 하고 그 필요성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면, 그런 시도를 기성 매체에서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인찬: 사실은 모든 문예지가 다 객원 에디터 제도를 운용하면 이상하겠죠. 제가 이해한 바로는 기존 문예지들에 작품을 발표하면 여러가지 기준이 작동하는데, 이를테면 나에게 청탁을 줄 사람들이 보는 지면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문학적인 역량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골라야지 같은 것 말이죠. 근데 대안 매체 혹은 독립 매체는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예요. (저의 신인 시절을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넓힐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고 아니면 안 해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지면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기존 문예지들이 갖는 경직성이라고 할 만한 것들 자체도 조금 더 풀렸으면 좋겠다. 독립문예지들이 그런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 거 같아요.
  
김동균: 덧붙이자면 한 작가가 이 잡지와 저 잡지에 발표할 때 서로 다른 경향,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지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창작자 자신의 문학적인 자장 안에서 어느정도 일관되게 정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다양한 잡지나 채널 들이 생김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감수성이 더 풍부해지고, 아름다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급이 되거나 위계로 나누기보다는 모두가 더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황인찬: 네, 더이상의 자기비판과 반성을 뒤로 하고(일동 웃음) 이야기를 이 정도로 정리해보려는데요, 가시화 프로젝트 팀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문학을 시작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문학을 둘러싼 여러 잘못들과 마주하며 분노하실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이 상황이 저 역시 참으로 답답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하는 지금 이 시점에 여쭙고 싶은데요. 문학을 시작하면서 여러 기쁨의 순간들을 마주하셨을 수도 있을 테고, 아직 기쁜 일이 없었다면 기쁨을 기대하고 계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런 부분들이 한편으로는 이 가시화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차도하: 문학에서 제가 얻는 기쁨이라 하면, 제가 무언가를 눈치 챘을 때 그게 고통이 아니라 쾌감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좋습니다. 누군가의 행간에서 짚어낼 수 있는 감정이나 사건이요. 현실에서는 그런 걸 눈치 채면 괜히 신경 쓰이고 고통스럽지만 문학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풀릴까? 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문학에서 기대하는 기쁨이란, 제가 행간에 무언가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능력이,  독자로 하여금 행간을 더 깊이 즐기게 하는 기쁨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기쁩니다.
   
차유오: 저는 문학의 기쁨이란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을 채워주는 것일 수도 있겠고, 마음을 채워주는 것일 수도 있겠죠. 일상에서 공허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문학을 접하면 무언가 채워진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그 느낌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고요. 최근에 책을 읽었을 때 제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 누군가의 멋진 문장으로 쓰여 있는 걸 봤는데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좋았거든요.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채워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김동균: 너무 중요하고 깊은 질문이라서 작가들이 매번 다르게 말하는 답변일 수도 있겠네요.(웃음) 요즘에 느끼는 문학의 기쁨이란, 결국에는 사랑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작품을 쓸 때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대상에 대한 내밀한 사랑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유달리 아프고 건조하고, 무거운 작품이라도 사랑은 모든 걸 기입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백지 같단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천천히 작품에서 움직여보고 바라보기도 하면서 쓰는 것 같아요. 자기 작품을 쓸 때도 주변의 작품을 둘러볼 때도 결국에는 각자가 지닌 명료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어요. 문학은 아주 많은 사람이 그린 아주 많은 사랑의 표정 같고, 저는 그걸 차분하고 근사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아요. 별안간 기쁘거나 슬프게, 담담하거나 비장하게 다가오는 얼굴을 마주치면서 지나가는 게 즐겁습니다.
  
이유운: 전 정말 많이 쓰고 많이 읽고 싶어요. 더이상 어떤 죄책감이나 부채 의식으로 쓰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방식을 쓰고 싶어요. 저는 언제나 제가 문학을 하는 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픔에도 불구하고 명랑하고 곧은 마음을 나누고 싶어요.
   
이원석: 저는 제 안에 있는 고통들이 형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뻐요. 예전에는 그런 고통들이 마치 동굴에서 외치는 것처럼 안에서 아주 좁게 반향하며 응축됐다면 이제는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형식을 갖게 된 거죠. 물론 그 목소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오지만요.
  
황인찬: 끝으로는 가시화 프로젝트가 앞으로 기획하고 있는 일 혹은 개인적인 계획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차유오: 부조리한 일들을 겪었을 때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또 정보를 모를 때와 알 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원고료가 미기재된 청탁서를 받았을 때 옆에 누군가 없었다면 저는 그게 문제가 되는 상황인 줄도 몰랐을 거예요. 알았다고 해도 선뜻 연락할 수 없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이렇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르죠. 부조리한 일들 앞에서 많은 사람이 연대하고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환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가시화 프로젝트는 그런 활동을 함께할 생각이에요.
   
차도하: 조금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학을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카드뉴스를 제작하기로 했고요. 문단 부조리뿐 아니라 시를 발표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넣고, 글을 쓰는 데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만한 내용, 피해를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들, 설문조사 등을 지속적으로 공유할 예정입니다.
  
이원석: 그리고 낭독회 같은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실은 3월쯤에 하려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어요. 저희에게 처음 관심이 집중됐을 때 시작해서 더 알리려고 했는데, 미뤄진 김에 내년까지 내다보고 2021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나오는 연말쯤에 해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겪어온 일들, 가졌던 문제의식, 신인으로 나왔을 때 부딪혔던 문제 같은 것들을 하나씩 얘기하면서 잠재적인 문인들의 눈에 띌 수 있는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동균: 저희가 계획했던 일을 잘 전달해서 제가 더 보탤 말이 없네요. 다만 저희의 목소리나 행동이 특별하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저 많은 창작자와 독자 옆에서 도란도란 함께 나눌 수 있는, 필요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가시화 프로젝트는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즐겁게 흘러왔어요. 우리가 지금보다 더 가볍고 건강하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운: 다들 가시화 프로젝트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셨으니 저는 저의 계획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시대의사랑』이라는 웹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웹진의 일차적인 목표는 문학 쓰기 경험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거예요. 업로드된 작품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작가와 소통하면서 작품을 쓰고 함께 완성시키는 방식으로요. 이번 ‘시즌 1’에서는 작가들이 결말이나 절정 부분을 빈칸으로 비워둔 작품을 업데이트하고 그것을 독자들이 댓글로 완성할 수 있도록 했어요.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문학 경험을 확장하고 공유하고, 결국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황인찬: 가시화 프로젝트가 기획하는 이 ‘가시화’의 여정은 문학장 내의 불투명한 일들이 모두 투명해지도록, 그리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여러 관행들이 모두 첨예하게 문제를 드러내도록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좌담 자체가 담론적 실천의 시작이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긴 시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이어질 가시화 프로젝트의 활동을 응원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이 좌담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또한 그러한 고민을 해주시기를 기대하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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