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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2회)

장류진
2020년 11월 10일
  



무난이들 2017년 3월 13일
 
  
일년 중에 하루, 그런 날이 있다. 겉보기엔 평소와 딱히 다를 바가 없는데도 사무실에 흐르는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는 날. 각자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어쩐지 붕 떠 있는 날.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에 미묘한 긴장이 느껴지는 날. 별다른 소란이 있는 게 아닌데도, 오히려 평소보다 조용한데도, 모두에게서 내적인 웅성거림이 느껴지는 날. 속이 시끄러운 날.

출근하자마자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부팅시키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했다. 곧장 이메일에 접속해 인사팀 메일을 확인했고 본문의 링크를 클릭해 들어갔다.

아…… 또야? 한숨부터 나왔다.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양 손날을 이마에 대고 기댔다.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잠시 감고 있다가 다시 떴고 한참을 그렇게 책상 위 먼지만 응시하고 있다가 맥없이 마른세수를 한 뒤, B03 그룹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전 무난이요.
 
그러자 은상 언니와 지송이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무난.
 
─나도 무난……

바야흐로 평가 시즌이었다. 작년 한해 동안 한 일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 시간. 평가 등급은 총 다섯등급이었는데, 최상위 등급이 O, 그다음 순서대로 I, M, B, 그리고 마지막 N, 이렇게 나뉘었다. 최상위와 최하위를 제외하고는 상대평가여서 누군가는 반드시 M이나 B를 받아야 하는 구조였다. 각 등급의 알파벳은 이런 뜻이었다.
 
Outstanding (특출한)
Incredible (뛰어난)
Meet requirement (요구 충족)
Below requirement (요구 이하)
Need supplement (보충 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바꿔 불렀다. 아무래도 이쪽이 훨씬 직관적이었다.

O 오짐
I 인정
M 무난
B 별로
N 나가

올해로써 은상 언니, 나, 지송이 모두 입사 이래 네번 연속 ‘무난’ 등급을 받게 된 것이다. 첫해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그다음 해, 그다음 다음 해에도 ‘무난’이 나오자 점점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고, 우리 셋 다 ‘이번엔 정말 고생했다, 기여를 했다’라고 생각해서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던 이번 해조차 같은 평가를 받고 나니 어차피 무난하다는 말 들을 거, 왜 그렇게까지 고생하며 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운이 쭉 빠져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나는 얼마 전 팀 송년회 때 ‘올해의 야근왕’ 부문에서 MVP를 받고 싸구려 와인 한병을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말로는 ‘잘했다’, ‘고생했다’, ‘너 없으면 어쩔 뻔했니?’ 하면서 정작 평가는 ‘무난’이라니. 이쯤 되자 ‘인정’은 대체 누가 받는 것인지, 인정받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부터는 대리 진급 시기까지 ‘인정’이 한개도 없으면 진급 대상에서 누락된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진급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그러니까 내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 등급에 따라 연봉 인상률이 결정된다는 사실이었다.

4년 전, 길고 긴 채용 과정 끝에 합격 소식을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이 업계가 임금이 높은 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왔음에도, 분명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첫 연봉계약서의 숫자는 날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예상했던 금액을 한참이나 밑도는 박봉이었다. 어쩐지 단출한 느낌마저 드는 그 숫자들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명색이 마론인데, 정말 이렇게까지 적다고?

우리나라 사람 중에 마론제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였다. 업계 톱으로 꼽히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전국 어느 슈퍼마켓에 가도 팔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올 타임 베스트셀러인 ‘초코밤’과 ‘초코아이스밤’을 보유하고 있어 초코바와 막대 아이스크림 쪽은 시장점유율이 상당했다. 제품이 히트상품일 뿐 회사 자체가 딱히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망받는 기업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작지만 번듯한 사옥도 있고 경기도 외곽에는 공장도 있는 회사였다. 그래서 월급이 이 정도로 짜디짤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그걸 알고 나자 뒤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마론보다 작은 회사들은 대체 얼마를 주는 거야?

물론, 사인을 안 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의 첫 평가 날은 쉴 새 없이 깜빡이던 휴대폰의 알림창과 진동음으로 기억된다. 은상 언니가 그룹 채팅방에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기 때문이었다.

─M등급 인상률 2%.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 그래도 코딱지만큼 주면서 여기서 2%라고? 
 
은상 언니는 경영학과 출신에, 구매팀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숫자에 밝고 또 예민했다.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언니의 메시지가 또다시 도착했다.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야. 그런데 인상률이 2%면?
 
내가 답장했다.
 
─거의 동결이네.
 
─동결이지.
 
언니가 이어서 말했다.
 
─근데 보통 체감물가는 더 높잖아. 한은발 올해 체감물가상승률이 2.6%래. 한마디로 사실상,
 
─깎인 거네.
 
─깎였다고 봐야지.
 
조용히 있던 지송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들 이야기 들으니 힘 빠져서 야근 못하겠어. 오늘은 집에 갈래……
 
그리고 덧붙였다.
 
─어차피 ‘인정’은 공채 아니면 잘 안 준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은상 언니가 ‘강은상, 김지송(3)’이라고만 적혀 있던 그룹 채팅방의 이름을 ‘B03’으로 바꾼 것이. B03은 ‘비 공채 출신 3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신입사원 대여섯명 남짓을 뽑기 위해 가을부터 시작되어 연말에 끝나는 대졸 공채 프로세스를 진행해왔는데 동시에 회사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고 물갈이도 잘 안 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몇년도 사번인지, 누구랑 동기인지를 인사처럼 물어보곤 했다. 잘은 모르지만 같은 기수끼리의 모임이나 채팅방도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채가 아닌 경로로 입사한 소수의 신입들은 알게 모르게 ‘근본 없는 애’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준에 따르면 우리 셋 다 ‘근본’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은상 언니의 경우, 갓 2년 차에 한 자동차 부품회사 구매팀에서 우리 회사 구매팀으로 옮겨왔다. 2년 차의 이직은 업계를 막론하고 드문 케이스였다. 완전히 신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경력직이라고 보기에도 좀 부족한 구석이 있었다.

나보다 한살 어린 지송이의 경우, 회계팀 사람들이 3년 전 갑자기 줄퇴사를 하는 바람에 수시 채용으로 급하게 뽑혀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역시 우리 회사에서 결코 흔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 졸업 후에 이 회사의 빙과팀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6개월 했는데 그때 있던 팀장이 나를 좋게 봐줘서 일반 인턴으로 전환되어 1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없던 프로세스라고 했다. 대단한 특혜를 주는 것처럼 이야기해서 나도 대단히 감사하는 척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제과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던 건 아니어서 아르바이트 근무 중에도, 일반 인턴 근무 중에도, 계속 다른 회사의 채용공고가 뜨면 원서를 넣고 있었다. 마론제과에서의 인턴 경력이 다른 기업에 지원할 때 한줄 경력이 되길 바라며 다녔던 거였다. 업계를 막론하고 마론보다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는 죄다 원서를 썼다.

하지만 지원했던 회사 중 아무 곳에서도, 단 한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서류에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뭐라고 말하지? 휴가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던 건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회사─여기 갈 바에야 마론에 붙어 있는 게 낫나? 그래도 일단 이력서나 넣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홍보 에이전시─에서마저 서류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인턴으로 써주고 있는 이 회사, 마론제과가 알고 보면 내가 다닐 수 있는 가장 좋은 회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때마침 마론의 인사팀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프로세스에 도전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인턴 종료를 한달 앞두고 있었다. 이 기간이 끝나면 다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취준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론제과가 내 손에 유일하게 쥐여진 마지막 희망이자 기회였다. 나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한 과제를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동반한 실무 면접, 인사팀 면접, 임원 면접을 차례로 보고 겨우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날 뽑았던 빙과팀장이 대기업 식품 계열사의 고위직으로 스카우트되면서 회사를 떠나는 바람에 갑자기 내가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버린 거였다. 입사가 취소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사이 인사팀은 마침 티오가 있던 스낵팀으로 날 배치했는데 스낵팀장은 자기가 뽑지도 않은 애가 자기네 티오를 떡하니 차지하고 들어앉은 게 기분 나빴는지 처음부터 나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첫 만남에 이렇게 말했으니까.

“자기가 빙과팀장이 꽂은 애야? 아, 농담이야 농담. 기분 나쁜 거 아니지?”

어쨌든 나도 이 회사에서 전례 없는 프로세스를 통해 입사한 셈이었고, 그래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다해씨가 지영씨랑 동기인가? 아니야? 그럼 누구랑 동기야? 아…… 그래? 예전 팀장님 덕에 운이 좋았다. 요즘 애들 취직이 그렇게 어렵다면서. 다해씨 친구들은 어때? 취직들은 다 했대? 친구들이 다해씨 되게 부러워하겠다, 그치?”

경영지원실 구매팀의 은상 언니와 회계팀의 지송이, 그리고 브랜드실 스낵팀의 나.

각자 다른 팀에 서로 다른 경로로 입사하는 것이었지만 그 시기가 비슷해서 인사팀에서는 우리 셋을 같은 날에 입사시키고, 작은 회의실에서 한시간짜리 약식 오리엔테이션을 같이 받게 했다. 우리 셋은 이때 처음 만났다. 나이도 연차도 약간씩 달랐지만 많이 다르지는 않았던 우리는 서로를 한날한시에 입사한 ‘동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잘 맞았고 금세 친해졌다. 인턴으로 근무하던 1년 동안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은 그게 누구든 불편한 사람으로만 여겼다. 무릇 ‘회사 사람’이란, 내게 일을 시키거나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상 언니와 지송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부서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었고 서로를 평가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은상 언니와 지송이를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느꼈다. 오히려 ‘원래 친구들’보다 훨씬 할 이야기도 많고 잘 통하는 면이 있었고 가끔 그런 사실을 곱씹어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내게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회사 일’이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웃기는 일도, 화나는 일도, 통쾌한 일도, 기가 막힌 일도. 은상 언니, 지송이와 그런 일들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주요인물과 선행 사건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설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생활에 확실히 도움되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는 매일 B03 그룹 채팅방에서 각자의 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히 서로가 없었다면 모르고 지냈을 회사의 뉴스와 동정과 가십들─그러니까 공채들이 독점하고 있는 사내 동향, 인맥, 정보들─로부터 조금은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평가 발표날인 오늘도 은상 언니가 새로운 소식을 물어왔다.

─작년 함박사 상여금이 5억이었대. 올해는 대체 얼마를 받으려나.
 
─5억? 확실해?
 
─내가 확실하지 않은 거 얘기하는 거 봤어?
 
지송이가 놀라며 물었다.
 
─정말?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어?
 
─기업공시정보에 다 나와.

함박사는 전사에서 유일하게 직급이나 직책이 아닌 학위로, 그러니까 ‘박사님’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작년 초 무슨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입사한 사람인데 기존에는 없던 직책이었다. 연구개발실의 조직도에 뜬금없이 빅데이터TF라는 가지가 하나 생겨났고 그 아래에는 함박사와 그의 비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리를 부러 만들어주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조직이었다. 함박사는 사장의 대학 후배이자 이종사촌 동생이라고 했다.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고 퇴근하고 싶을 때 퇴근했다. 타자를 치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타닥타닥 소리가 크게 났다.

─대체 그 아저씨가 작년에 뭘 했는데? 초코바랑 츄잉껌 개수 세알린 것밖에 더 있어?
 
지송이가 대답했다.
 
─또 뭐 보고서 하나 만들긴 했었어. 우리 초코밤 중량 20% 줄이고 포장 바꾸면 매출 늘어날 거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은상 언니가 말했다.
 
─그런 보고서는 박사 없이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사장의 인맥 경영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한참 사장 욕, 함박사 욕, 회사 욕을 하던 은상 언니가 갑자기 주의를 환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채팅창을 혹시 누군가 엿보면 큰일이니 대화 내역 전체를 삭제하라는 거였다. 지송이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건데?
 
언니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채팅창 오른쪽 위에 보면 메뉴 버튼이 있잖아.
 
─응.
 
─거기에서 대화방 설정 메뉴를 눌러 들어가면 대화 내역 지우는 버튼이 있어.
 
─찾았어. 대화 내역 내보내기! 이걸로 다 내보내면 되는 거지?
 
내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있던 사이, 은상 언니가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정신 차려. 너 대화 내역 내보내면 우리 셋, 손잡고 퇴사해야 해.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은상 언니가 제안했다.

─안 되겠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무난이들 얼굴 보고 얘기해야지. 다들 오늘 점심 괜찮아?

그때 알아차렸다. 우리 그룹 채팅방 이름이 ‘B03’에서 ‘B03_무난이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장류진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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