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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낭독회, 함부로 버리지 않는 즐거운 삶에 대하여

이소연
2020년 11월 19일
   



 

일곱번째|이소연

쓰레기 낭독회, 함부로 버리지 않는 즐거운 삶에 대하여
 

작년 여름, 켬 동인은 제주도에 갔다. 그냥 놀러 갔다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쓰레기에 대한 강한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늘 이런 식이다. 놀러 가서 일거리를 가지고 오다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ㄱ시인이 “이소연 시인은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환경문제도 그렇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놀면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왜 어려운 걸까? 내가 놀던 자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경우 쓰레기가 남아 있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캔, 병, 종이, 포장용 비닐, 은박지, 나무젓가락…… 정말 징글징글하다. 잘 놀고 나면 그냥 발자국 같은 것만 남았으면 좋겠는데, 꼭 쓰레기가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놀이를 하고 나면 고무줄을 돌돌돌 작게 말아서 집으로 가져갔다. 그 자리에 울려퍼지던 아이들 노랫말 몇개가 어른들 귓전에 남아 흥얼거림이 되곤 했지만, 쓰레기가 남는 일은 별로 없었다. 땅따먹기를 해도 구슬치기를 해도 술래잡기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놀던 자리에 쓰레기가 남기 시작한 것은 놀기 위해 돈을 쓰면서부터인 것 같다. 켬은 제주에 도착한 첫날부터 놀던 자리마다 쓰레기를 남겼다. 「겨울왕국」의 엘사 손끝에서 얼음이 태어나는 것과 맞먹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엄청나게 쓴 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사 먹었고 바다가 보이는 까페에서 커피를 주문한 정도였다. 다 먹지 못한 메인 요리와 밑반찬이 잔뜩 남는 건 기본이요, 잠시 앉았다 일어선 간이 테이블 위에는 젖은 입을 닦은 휴지가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노는 건 재미있으니까. 다음날 제주현대미술관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JMCCA 2019 국제생태미술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술관 안에는 각종 어구, 플라스틱 통, 스티로폼 등이 널려 있었다. 모두 다 제주바다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들이라니 끔찍했다. 현대적인 건물 안에 모아놓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어딘가 압도적인 데가 있었다. 내 자신의 치부를 본 듯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은 전시였다. 인간의 수치심은 바로 이런 데서 와야 하지 않을까?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야말로 우리가 변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언젠가 몇배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확 끼쳤다.

 


제주현대미술관 「JMCCA 2019 국제생태미술전」 전시 사진



우리 때문에 물고기들의 식탁에 쓰레기가 올라간다. "너희들의 식탁에 쓰레기가 올라온다면 짜증이 안 나겠니?" 정말 무례한 일이다. 물고기 입장이 되자 화가 난다. 나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환경을 망친다. 텀블러를 쓰겠다고 다짐하고도 매일 쉽게 잊고, 대신 일회용 컵을 쓰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재활용될 거야.’ 왜 스스로 재활용하지 않으면서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딘가에서 재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란 인간이 간사하기 그지없다. 나 같은 사람은 너무도 흔한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일로는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는다. 법으로 정해놓지 않으면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 나쁜 짓이란 무엇일까. 각자의 윤리가 서로 다를 때,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켬은 전시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비슷한 크기로 괴로워하다가 ‘쓰레기 낭독회’를 기획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더 나은 방향의 합의가 필요하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다. 어려운 일이다. 설득시키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애초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득당할 마음이 없다.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도 설득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설득하고 싶지, 설득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스스로 깨치고 싶어하는 동물이다.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느끼는 바가 다르더라도 느껴야 하고 때로는 불쾌하더라도 뭔가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바뀔 수 있다.

“우리 그냥 느끼게 해보자.” 

우리가 쓰고 싶은 시를 써서 그 시를 나누고, 신나게 놀면서도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낭독회를 해보자 마음먹었다. 아니, 쓰레기가 남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낭독회를 통해 쓰레기를 다시 보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쓰레기 낭독회’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제주에서 돌아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전영규 평론가와 ‘쓰레기 낭독회’에 대한 의견을 다시 한번 나누었다. ‘에코페미니즘’으로 낭독회의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데 영규의 힘이 컸다.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시를 쓰기로 했다. 우리의 미션은 다음과 같다. 

 1. 쓰레기 문제를 다룬 자유시 또는 에세이 1편
 2. ‘주워, 네 거잖아’라는 문장이 들어간 시 1편
 3. 공동창작시 1편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 청맥살롱에서 ‘쓰레기 낭독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매일같이 단톡방 회의를 진행했다. 우리는 입장료로 손바닥만한 쓰레기를 받기로 했다. 쓰레기가 돈이라면 함부로 버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다가, 쓰레기에 쓰레기 이상의 가치를 줘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어떤 쓰레기들이 모이게 될지 궁금해졌다. 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쓰레기가 아니었을 것들의 이야기 역시도.

 


'쓰레기 낭독회' 포스터



이렇게 된 이상 행사 포스터도 대충 만들 순 없었다. 우리는 포스터 촬영을 위해 집에 있는 쓰레기를 들고 모이기로 했다. 우리가 들고온 쓰레기들은 일정 간격을 두고 놓였을 때 전혀 쓰레기 같지 않았다. 쓰레기 아닌 모습의 쓰레기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유통기한 지난 오래된 알약들과 연고들 피스타치오 껍데기, 만년필을 잃어버린 잉크, 다 쓴 화장품 통, 끈 떨어진 퍼프, 연필깎이, 고장 난 이어폰, 다 쓴 립스틱, 짝을 잃은 귀걸이, 옷에서 떨어진 끈, 교구로 사용하고 남은 색종이 조각, 조개껍데기, 낡은 머리끈 등등 

포스터 사진을 찍기 위해 쓰레기를 해체하고 다시 배열하면서 생각했다. 가치전복적으로 쓰레기를 활용하고자 했지만 이 일은 어디까지 예술일 수 있을까. 그러고도 남은 쓰레기는 어쩌나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숱한 갈등과 고민 속에서도 낭독회 일정은 지체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집에서 가지고 온 멤버들의 쓰레기


낭독집



‘쓰레기 낭독회’ 소책자는 여분 없이 30권만 만들었다. 참여한 관객 모두 이 소책자를 소중히 간직할 거란 믿음으로, 쓰레기가 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소책자에는 공동창작시를 포함한 총12편의 시와 에세이가 실려 있다. 켬 동인이 쓴 공동창작시의 제목은 「우리가 버린 것들의 목록」이다. 우리가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들의 목록들을 정의한 문장들을 교차하여 한편의 시를 만들고 마지막 행에 그 목록을 나열한 형식이다.

행사 당일, 우리는 관객들이 입장하며 입장료로 지불한 쓰레기를 받아 종이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쓰레기에 관한 문장도 함께 받았다. 관객들이 쓰레기와 이별하며 적어준 문장으로 제2의 「우리가 버린 것들의 목록」이라는 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때 입장료로 받은 쓰레기들은 아직도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 의미를 획득한 물건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이미 입장료로 쓰레기를 받는 순간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닌 게 되었다. 적어도 켬에겐 그렇다. 우린 지금껏 너무 많은 물건에 욕심을 냈다. 그리고 너무 빠르게 그 의미를 놓쳤다. 새 신을 아껴 신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의미 있는 물건을 대대로 물려주는 삶을 잊었다. 의미를 잃고 낭비되는 물건들을 보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것이든 각자의 고유한 의미를 획득하길 바라게 되었다. 그 어느 것도 처음부터 쓰레기는 아니었다. 지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로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독자들의 문장으로 만든 공동 창작시



여기서 놓친 의미들이 지구 반대편에 쓰레기로 쌓여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그러니까 사랑 말고는 답이 없다. 사랑해야 의미가 생기니까.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깨끗하게 치워진 것이 아니다. 국경도 없이 흘러가 뒤섞인 해양쓰레기들이 끝도 없이 쌓이는 곳이 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켬은 작년에 이어 올해 가을에도 기후 문제를 다룬 낭독회 ‘지구가 멸망해도 우린 명랑할 거야’를 열었다. 이번에는 그 어떤 쓰레기도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낭독 책자도 만들지 않았고 포스터도 따로 출력하지 않았다. 현수막도 배너도 없이 오로지 우리들의 글과 목소리만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얼마간 쓰레기가 남았다. 우리는 힘차게 지구를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지구는 열을 더해 오염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귀찮아하는 기만적인 인간이 내 안에 숨죽이고 있다.

요즘은 김은지 시인과 환상의 콤비를 결성하여 도봉구 일대 책방을 놀러 다니고 있다. 놀러 다니면서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줄여보려고 노력 중이다. 쓰레기 없이 즐겁기를 실험하는 중이다. 김은지 시인이 활동하는 팀이 ‘분리수거’라서 하는 말인데, 분리수거팀과 켬 동인이 합체하면 완벽한 쓰레기 처리를 담당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앞으로도 지구에 불시착하는 외계인들이 놀라지 않게 청소를 잘 해야겠다.


◾ 켬은 이소연 주민현 이서하 시인과 전영규 평론가로 구성된 창작 동인이다. 
◾ 분리수거는 김은지 한연희 임지은 강혜빈 시인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다.
◾ 지구불시착은 태릉입구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그곳에선 글이 잘 써진다. 이 글도 그곳에서 쓰였다. 서점엔 쓰레기가 없다.


 



이소연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현재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중이다.

 



다음주에는 다이빙 그룹 '디프다(Diphda)'의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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