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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는 감정, 말하자면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

김연덕
2021년 01월 13일
 



 
행복하다는 감정, 말하자면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

 
사랑에 대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왜 항상 목조건물이나 산, 거실, 미니어처 얼음산 혹은 미니어처 얼음계곡 등의 공간과 모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목조건물, 산 등의 이미지에 유달리 애착을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목조건물의 경우 서양식이라기보다 외할머니댁이나 일본 영화 속 고택 같은, 동양식 마룻바닥과 비밀스러운 계단의 이미지를 자주 상상하며 쓰게 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부암동의 낡은 목조주택 역시, 요즘 쓰는 시들이 많은 부분 이미지로 기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이고 종로였지만 산 속에 숨어 있던 그 집은 아름답다기보다 거칠고 이상스런 비밀들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이를테면 정원에 내 키만한 잡초가 자랐다든가 그것을 어른들 중 누구도 관리하지 않았다든가 마룻바닥의 한 부분을 열면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상상과 두려움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그 공간은, 그렇기에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처럼 여겨진다.

마룻바닥에 뽀얗게 일어나던 먼지와 뜨겁게 내리쬐던 한낮의 해, 해를 다 막아내지 못하던 유리 현관문, 집에서 한눈에 내다볼 수 있던 풍광과 밖에서 들여다보이던 거실의 조용함, 가끔 집을 공사하러 오던 인부들, 묘하게 의욕이 없던 인부들의 태도,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목조주택을 공간으로 설정할 경우 내가 활용하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는데, 우선 계단을 만들면 층계가 생기고 창문을 만들면 안팎이 생기므로 쓸 수 있는 여러 정황들이 있었다. 나무 계단만의 삐걱거리는 질감과 나무 마룻바닥만의 반질거리는 느낌이 나를 이 구조 속에서 마음 편하게 해준다. 내 안의 자연, 집 바깥의 자연과도 연결시켜주고 말이다.

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뾰족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하지만) 이상하게 시를 쓸 때 산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을 하면 무언가 높은 곳에서 (감정과 사건의 소용돌이 혹은 꼭대기에서) 망설이고 무너지며 지워지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때의 얼굴은 어둡기도 하고 환하기도 하다. 아마 섞여 있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얼음을 좋아하는 것은 빛과 유리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얼음은, 빛이 투과하면 반짝이며 투명해지는 부분이 생기고, 그 빛이 지속되면 녹고, 추운 데 놓아두면 다시 언다. 이런 얼음의 속성이 마음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적고 보니 사실 목조주택, 산, 얼음 모두 취향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목조주택에 앉아 얼음산을 깎으며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이런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당위 없이도 다가오는 슬픔과 평화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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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한해의 끝에 쓴 시 「놀라지 않는 이 사랑의 삶」은 ‘어떻게 하면 지금 내 상태를 가장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행복의 불안 그러나 정말 나를 격렬히 괴롭히거나 성가시게 하지는 않는 아름다운 불안에 대해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간 나에게 저택과 산은 내 상실의 경험을 외치고 해부하거나 뭉치고 굴려 ‘버려버리는’ 식의 전초기지 같은 곳이었다.

이번 시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장소에서, 더군다나 인수받은 산장에서, ‘저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심스레 행복을 말해도 시가 될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녀의 마지막 저서이자, 그녀의 애인이었던 얀 안드레아와의 삶을 정리하는 에세이『이게 다예요』에서 행복의 마비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따금 나는 아주 오래도록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내겐 신원이 없다. 그게 날 두렵게 한다 우선은. 그러고 나서 그것은 행복의 움직임으로 스쳐지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멎는다. 행복하다는 감정, 말하자면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 내가 말하고 있는 곳에 얼마쯤 내가 없는 듯한 느낌.”*

「놀라지 않는 이 사랑의 삶」에는 외관과 시설에 문제가 없어 디자인이나 설비에 조금도 손대지 못하는 나, 그러나 공사 계획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닌 나, 그런 나를 닮아 갑작스런 침묵이 어렵고 어색해도 애써 일하지 않는 시공업자들,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더 이상 확장되거나 날아가지 못하고 나에게 갇혀 서서히 늙어가는 이야기, 노령의 사랑에 대한 시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거기서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을 겪고 있는 나 자신에 관한 시다. 나는 온전한 이 행복이 믿기지 않고, 때때로 무궁무진했을 내 모험들이 포기된 기분도 들지만, 사실은 이 사랑의 상태가 좋다. 
 
*
 
시공업자들은 반쯤 열린 문 사이에서 흩날리는 눈을 보며, 죽음 가운데서도 아직 생동하고 아직 죽어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체험했을 것이다. 자신들에게로 날아와 오래 갇혀 있던 이야기의 날개가,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이 잠시 다른 형태로 움직인 순간을, 그래서 행복하게 놀라는 삶을 마주했을 것이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고종석 옮김, 문학동네 2009. 
 
 


김연덕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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