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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 기록

희정
2021년 02월 01일
  



 

타인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내게 인터뷰하는 법을 묻는 사람이 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상대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표정부터 굳는다. 기록자로부터 질문을 받는 ‘그’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록자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사람, 주목받지 못한 삶을 발굴한다고 생각한다. 기록자가 찾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관심 두지 않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기록자가 만나는 이는 ‘이미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아버린’ 사람이다. 나를 만나러 오기 직전까지도 ‘그’는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질문 받는다. 내가 주로 기록하는 이는 ‘싸우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싸움 내내 같은 질문을 받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이 말을 가족이 하고, 동료가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한다.


세상은 말하려는 사람에게도 또 묻는다. “꼭 그 말을 해야 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침묵하거나 속에 담긴 것과는 다른 말을 꺼낸다. 그렇게 말문이 막힌 사람들을 두고 세상은 ‘소외된, 목소리가 없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명명한다. 그제야 기록자는 ‘그’를 만나러 간다. 가서 묻는다. 자신이 그에게 ‘첫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그렇기에 ‘질문하는 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도리어 ‘묻지 않을 것’을 권한다.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 이 말을 한다. “인터뷰는 질문하고 답하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가 말을 건네는 일이다.”1 


하지만 이조차 정정하고 싶다. 내게 기록이란 묻지 못한 질문, 하지 못한 말을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다. 기록을 하다보면 어찌할 수 없는 질문에 붙잡히는 일이 잦다. 질문하러 간 사람은 나인데, 마주 앉은 이가 내게 물어온다. 때론 존재 자체가 질문인 사람들이 있다. 그가 겪은 사건과 살아온 삶이 내게 묻는다. 아니다. 그 사람이 묻는 것이 아니다. 내뱉지 못한 질문, 답하지 못한 말에 스스로 붙잡힌다.

타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물음이 생기는 까닭을 모르진 않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기록하는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인터뷰 자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예의를 갖추는 것뿐이다. 그를 온전히 알지도, 믿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내 알량한 약속 하나, ‘당신 말을 경청하겠다’. 나를 믿고 여기까지 나와준 사람에 대한 예의로 애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말문이 막혔다.


 

믿어져요?

처음 내 말문을 막은 이는 혜경씨였다. 당시 나는 내가 그들과 다른 곳에 있는 사람임을 알지 못했다. 나를 내가 취재하는 사람들의 ‘편’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들 편이라 여겼다. 같은 편이니 같은 자리에 있다고 믿었다.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던 때였다. 처음으로 직업병 피해자를 만나러 갔다. 그전까진 세상을 떠난 이들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그날 ‘직업병 피해자’를 만나러 간다고 긴장했던가.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이 장면만은 또렷하다. 혜경씨가 내게 말을 건 순간이다.
 

한혜경.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뇌에 종양이 생겼다. 머리를 여는 수술로 종양은 제거했지만 뇌신경에 손상을 입었다. 그는 보고 말하고 생각하고 걷고 서고 움직이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축을 받으며 위태롭게 식당에 들어온 그는 내 옆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반도체 직업병에 관한 글을 쓸 작가라고 누군가 나를 소개했던가.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윈 얼굴이 바로 내 옆으로 왔기에 나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인사를 생략한 채 혜경씨는 말했다.
 

“믿어져요? 내가 장애인이 됐어요.”
 

내 앞에는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직업병 피해자를 만나러 왔는데, 내가 만나야 할 이는 장애인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정체성이었다. 어리석게도 그제야 깨달았다. 인터뷰를 백번 천번 한다고 해도 이 사람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을 바꾸고 기업의 탐욕을 멈추고 법을 개정하고 직업병을 인정받고자, 그리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그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고 생각했다. 같은 목표로 움직이니 우리는 같은 편이라 생각했다. ‘믿어져요?’라는 말 앞에 일순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나와는 전혀 다른 저 사람의 삶 어디에 나의 말이 접속할 수 있을까. 기록이 그의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이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었다. 신체에 손상을 입은 사람을, 인생에 중대한 사건을 겪은 이를, 아니 누구라도, 그러니까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떠올려야 했다. 눈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말하는 속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무엇을 묻고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하는지.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서 추측해내야 했다. 그래야 ‘대화’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정해야 했다. 당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헤집어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혜경씨의 물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은 그때도 알았다. 자신에게, 아니 가혹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운명에 묻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내게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답하지 못한 순간 그 질문은 내게 돌아왔다. 그후 일하다가 다치고 병든 사람들을 쫓아가 물었다. 당신들이 이런 일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이를 그렇게 만든 운명의 다른 이름이 ‘사회’라는 것을, 어떤 구조, 어떤 작동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직업병과 산업재해에 관한 두권의 기록집을 냈다. 쓰면서도 알았다. 원고지 이천매 넘게 적어내린 이 글들조차 혜경씨가 던진 물음의 답이 될 순 없다는 것을.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사진 한장을 본 후였다.
 

수년이 지나 혜경씨는 내게 ‘혜경 언니’가 되었다. 언니는 산재 인정 싸움을 십년 가까이 했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삼성 본관 앞 농성을 삼년 해서 결국 산재를 인정받았다. 지금도 삼성 이야기를 하면 주먹을 꼭 쥐고 몸을 부르르 떨지만, 직업병임이 밝혀졌다고 몸이 예전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 그는 달라져 있었다.
 

듣는 대로 적되 내 마음이 당기는 말을 적던 수년 전 그때, 나는 혜경 언니와 그 어머니(김시녀씨)의 대화에서 이것을 받아 적었다.

 

“엄마가 고생이 많아.”

“아니야. 엄마잖아.”

“나 나중에 또 병 걸리면 수술시키지 마. 진짜로 약속.”

“됐어, 이 지지배야.”2

 

집 팔고 적금 깨서 한 수술이다. 집에 돈 보태는 낙으로 일해온 사람이 자신의 병 때문에 더 큰 돈이 병원으로 가는 것을 본다. 잔혹하고 슬퍼서 책에 담았다. 하지만 그후로 혜경 언니는 몇차례 더 병원을 찾았다. 치료도 수술도 했다. 그날 모녀가 나눈 대화는 유효하지 않았다. 달라졌기 때문이다. 혜경 언니의 병은 어머니 김시녀씨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게 됐다. 그들 옆에 산재 인정 싸움을 함께하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비롯해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재활 치료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자, 혜경 언니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보다 몸 상태가 나아졌다. 하나 남모르게 아픈 곳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시간은 몸에 쌓이고 세월은 삶을 가로지른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그 사진을 볼 수 있었다. 혜경 언니 모습이 담긴 사진 한장이었다.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가 연 행사에서 ‘장애 차별 철폐’라 쓰인 몸자보를 입고 있었다. 얼마나 뜻이 있어 입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진을 보며 그가 처음 건넨 말을 생각했다. “믿어져요?” 혜경 언니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길목 한 귀퉁이에 나의 기록이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이의 달라진 몸 앞에서 나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럴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와 나눈 한두번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나를 거쳐 세상에 쏟아낸 몇마디 말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 움직이고 관계 맺어온 시간이 쌓인다. 내가 하지 못한 대답도, 내가 묻지 못한 질문도, 그날의 당혹과 애씀도, 그이를 거쳐간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이 쌓여 삶이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가 되고 답이 된다.
 

물론 혜경 언니는 언제든 다시 그때와 같은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자신의 몸이 믿어지냐고. 시간의 발목을 잡는 것이 사건이고, 손상이고, 상처다. 온전히 변하지 못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껏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언니에게 건넬 다른 농담을 알고 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가 나 예전에 만날 때 뭐라 그랬는지. ‘나는 뵈는 게 없는 년이야.’ 언니가 나한테 그랬다고요.”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그의 시야를 걱정하면서도 깔깔거릴 생각이다. 농담이 재미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고 도태하고 머물고 돌아가는, 그러면서 어제와는 묘하게 다른 오늘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그 길목 한 귀퉁이에 나의 기록이 놓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웃는다.
 

한때 잠깐, 때로 질기게 만나기도 하는 기록자와 기록 대상자가 서로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기록이 누군가의 인생에 그리 큰 의미가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내가 기록하는 이들을 잘 모른다. 달라짐을 말하지만, 실은 내가 기록한 어떤 이의 내면이 단단해지는지 무너져내리는지 쉬이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도 누군가에게 다가갈 뿐이다. 너와 내가 내일은 지금 이 자리에 머물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싸우고 버티고 살아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제각각의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기록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쉽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들이 싸우며 버텨온 시간을 생각하며 버텨낸다. 그들의 시간을 훔쳐보며 나 또한 아주 살짝 단단해진다. 지금도 기록하러 가서는 꺼내지 못한 말, 묻지 못한 질문을 가지고 되돌아온다. 하지만 더는 홀로 끙끙대지 않는다. 나 혼자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안다. 기록노동이라는 것을 놓지 않는 한, 내가 묻지 못한 말에 결국 자기 방식으로 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움직이고 나아가고 살아간다. 그걸 인정하고 지켜보게 됐다.
 

지금 내 앞에 앉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답을 줄 것이라 믿으며, 그를 당장 알지 못하고 이해하진 못해도 예의를 갖춘다. 무거운 인생을 이고 지고 끌고 와 내 앞에 풀어놓는 이에 대한 존중으로.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인터뷰는 묻는 일이 아니나, 그럼에도 묻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고. 오늘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1 희정 「기록하는 여자들 ‘우리의 노동을 말하다’」, 일다 2020.6.20.
2 희정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아카이브 2011.


 


 



남는 질문들

 

3 존재 자체가 질문인 사람들에게 묻지 못한 말, 하지 못한 말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 ‘기록자’라는 말이 인상 깊다.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묻지 않는 자세, 다시 말해 좋은 청자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기록 작업을 하다보면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인터뷰와 별개로, 그후의 ‘글쓰기’ 작업에서 특별히 조심하거나 경계하는 부분이 있을까?
 
희정 ‘묻지 않는 자세’에 대해 강조한 것은 기록자가 지녀야 할 고민이 ‘그가 말할 수 있는가’에 앞서 ‘내가 들을 수 있는지’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기록자는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청자(기록자)와 화자(기록 대상자)의 관성을 의심하고, 화자가 한 말의 행간마저 살피는 일이다. 글쓰기는 의심과 살핌을 오가는 과정이다. 그 경로를 따라가며 기록자 또한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찾는다.
 
3 “ 타인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 했다. ‘듣는 장’의 소중함이 공유, 확대되어간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혹은 다른 맥락이 있을지 궁금하다.
 
희정 세월호부터 페미니즘 리부트까지 최근 한국사회가 맞은 일련의 사건들과 변화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던 자신과 주변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욕망이 일고, 이것을 어느정도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SNS와 플랫폼이 기여한 바도 크다. 누구든 자신의 지면을 가질 수 있으니까. 자신의 언어가 생기고 언어가 놓일 공간이 마련될 때, 사람들은 어떤 삶들을 말로 설명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 세월호 등 일련의 참사와 비극이, 시스템에 순응해 ‘가만 있으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기록’이라는 행위를 추동했다고도 볼 수 있다.
 
3 기록 작업을 마친 뒤 그 내용을 두고 기록자와 기록 대상 사이에 토론이 오간 경험이 있을까. 기록 과정과 연결되어 있는 이들이 해당 기록물을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화하는지 궁금하고, 그들의 반응으로 인한 깨달음을 얻은 경험도 있는지 듣고 싶다. 또 그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기록자의 삶을 확장시킨다면, 이때 ‘확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희정 기록에 참여한 이들이 기록물에 관해 구체적이고 진지한 생각과 평가를 전하는 일은 드물다. 기록물 자체로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끔 반응이 온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오월의봄 2019)이라는 책이 나오고, 인터뷰에 참여한 이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이이자 독자로서 보내온 편지였다. 그는 성소수자, 시스젠더 남성이었는데, 책에 자신과 너무 다른 삶들이 있어 처음에는 낯설었다고 했다.
사회는 이들을 편의상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지만, 이들 사이에는 신체・계층・성별・연령 등 차이가 있고, 각기 다른 삶과 사회적 위계를 경험한다. 그는 책을 통해 다른 삶을 보았고, 책에 참여한 당사자라는 무게감으로 그 삶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저는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었고, 피억압자만도 아니었고, 억압자만도 아니었습니다. ‘아니고’의 반복이었습니다.” 그의 눈에 다른 동료, 다른 소수자들이 들어왔을 때, 그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가늠했고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편지는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전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알려주고,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끈을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과연 우리가 언어를 매개로 하여 반응하고 응답하며 변화할 수 있을 것임을 얼마나 믿었는지. 누군가를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역동의 존재라 믿는 것은 그를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반성을 뒤로하고, 그제야 나의 인터뷰이를 온전한 동료로, 연대자로, 함께 살아가는 이로 인정하게 되었다.

 


희정
기록노동자.
지은 책으로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기족』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 우리 함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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