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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구경꾼

김승일
2021년 02월 01일
   



 

보배드림, 루리웹, 오늘의유머, 워마드, 디시인사이드, 여성시대,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등등.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모종의 정치화를 마치고 각자의 배타적 공간에서 자기정체성을 강화하며,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진영 논리를 진영 논리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지는 지점을, 우리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의 모체였던 디시인사이드의 현재 상황에서 확실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대체로 외부의 유입을 극도로 꺼리긴 하지만, 디시인사이드 유저들의 속칭 ‘포밍’ 1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하다. 디시인사이드는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들에 대해 각각의 인격적인 특성을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낸 소수자 차별적, 인종주의적 멸칭을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디시인사이드 유저들이 이처럼 배타적으로 행동하면서 지키려고 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척하고, 파괴하는 행위만을 일삼는 과정에서, 디시인사이드는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더는 객관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부가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외부에 대한 혐오와 배척만을 일삼는 이유를 그저 오랜 세월 반복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왜곡된 환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가령 친문재인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의 관심사는 오직 특정 정치인에 대한 신뢰나 비판, 이를 통해 대통령을 지켜내겠다는 것뿐이다. 조국 전 장관을 수호하고, 추미애를 지지하며,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것이 그들의 모든 관심사다.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것은 인격, 인간에 대한 평가뿐이다. 반문재인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외부를 배척하고 척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똑같이 포착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진실로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내부에 외부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유저를 위시한, 일종의 정치적 체념 상태에 빠진 이들의 외부에 대한 배척은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부터 왔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팬심을 곧 정치적 정체성으로 가지는 이들의 외부 배척은 모종의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얼핏 보면 신뢰와 불신의 변증법 속에서 생산적인 대화가 발생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격 모독, 차별, 폭로, 조롱으로 이뤄진 이들의 언술이 사실상 정치, 도덕, 이념, 이성이 아니라 오로지 ‘정동’에 기인하여 발생하기 때문이다. 남성 구성원들이 대다수인(정치적 정체성을 가졌거나, 정치적 체념 상태에 빠진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자행되는 여성혐오는 남성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인식에서 성행한다. 이는 엄연히 약자, 소수자가 존재하는 실제 사회 구조를 외면하는 대표적인 감정적 반응이다. 이들에게 이성적 호소는 그것이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제 입맛, 자신의 감수성에 닿지 않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구조에 대한 비판이 부재한 상태에서, 그저 다수결 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도 되는 양,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것들을 ‘진정하지 않은’ 민주주의로 매도하며, 선출 권력의 지배를 갈망하는 자들의 정체성을 과연 정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만약 온라인 커뮤니티들에게 정치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극우주의일 것이다.
 

아도르노의 한 강연록에 따르면, 파시즘적인 프로파간다는 어떠한 담론 논리도 따르지 않고 정동들을 동원하는, 일종의 조직된 사고로부터의 도피다. 바로 이 정동에만 기인하는 요소 때문에 선동자를 향한 이성적 호소가 헛수고에 그치게 된다고 아도르노는 분석한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서는 제가 극우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려 하거나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런 질문이 잘못됐다고 보는데요, 그것이 너무 관조적이기 때문입니다. 극우주의를 처음부터 마치 자연재해처럼 바라보는, 마치 돌풍이나 기상재해인 양 예보를 하는 이런 사고방식에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차단해버리는 일종의 체념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현실과 맺는 나쁜 구경꾼 같은 관계가 들어 있습니다. 극우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계속될지에 대한 책임은 종국적으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2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정체성이 어째서 공허한지에 대해 실컷 떠들었고, 수많은 맥락 속에 위치하는 개인이 기껏해야 외부를 척결하겠다는 욕구를 바탕으로, 오직 감수성을 통해서만 작동하는 커뮤니티의 정치적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안다고 장땡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계시겠죠? 저는 지금 제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말하고 있나요? 그들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이 글을 읽을 수 있을까요? 읽는다고 해도 제 말이 씨알이나 먹힐까요? 저는 지금 제가 나쁜 구경꾼 같아서 너무 괴롭습니다. 너무 관조적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이런 얘기, 제가 아니라 여러분도 할 수 있는 얘기잖아요. 제가 마이클 샌달쯤 되어서, 이 세상에 팽배한 능력주의는 평등과 무관하고, 평등에 대한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신 개인의 서글픈 감정을 조금쯤 정지시켜달라고, 자신의 감정만 들여다보지 말고 사회구조를, 그토록 척결하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정치적 상상력을 먼저 경청하자고, 손을 잡자고, 그렇게 얘기를 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이런 식으로는 안 됐던 것 같고요, 앞으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너무 모호한 것 같아요. 감정에 호소하는 것 같고요.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디시인사이드를 언급하자면, 이들은 애초부터 자기들이 잉여라고 생각해왔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일이 얼마나 잡스러운 시간 낭비인지, 그게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인생에 손해라는 지적보다, 그러면 이제 우리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이끄는 것은 우리 모두여야 합니다. 이 글이 실리는 〔문학 3〕의 기획위원이며 필진들이 그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일단 우리가 우리들의 현재 위치뿐만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걸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충실한 독자들, 나아가 온라인의 수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배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배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지금까지 공연히 떠들었듯이, 배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장소인 것 같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른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위한 안전한 장소를 다시금 생성하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나쁜 구경꾼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 나쁜 구경꾼입니다. 다행인 것은,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 어떤 커뮤니티의 외부인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실제로 보배드림, 루리웹, 오늘의유머, 워마드, 디시인사이드, 여성시대, 일베를 이용하는 한 사람의 유저입니다. 저는 인터넷 중독자거든요.

 

1 어떤 행성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 행성 지구화)에서 온 말로, 특정 의견이나 이슈로 커뮤니티의 성격이 변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2 테오도어 아도르노 『신극우주의의 양상』, 이경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53~54면.


 
 



남는 질문들

 

3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늘날 감수성, 감성, 정동 등에 의해 지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잘 읽었다. 그런데 이런 감수성, 감성, 정동 등이 자율적, 자생적인 것이라기보다 늘 실제 특정 이데올로기나 논리와 함께 결합해서 작동하는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더 듣고 싶다

김승일 나는 이 글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데올로기 분석을 자제하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자신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식에 의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 싸움을 조장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이 실제 특정 이데올로기다.
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대신 판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삼의 장소에서 적확한 질문을 통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복무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3 이 글에서 언급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를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하다. 대상을 악마화, 절대적인 타자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숙고할 수 있을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까.
 
김승일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문학3〕 홈페이지도 넓은 의미에선 온라인 커뮤니티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글에서 언급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기존 커뮤니티 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3 이 글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또 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만 다뤄지고 있는데 SNS를 비롯한 다른 온라인 채널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김승일 정치인 팬덤이나 거대 정당을 지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었다. 이들은 한정된 알고리즘 속에서 보던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무엇이든 거침없이 조롱하고 대상화하는 동시에 자신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입장에 편중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유저들로부터 출발했다. 모든 것을 대상화한다고 해서 더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이거나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기회의 평등을 능력 만능주의로 해석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상식이나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SNS를 비롯한 다른 온라인 채널에서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채널의 유저들은 누군가의 부정이나 실수를 비난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대단히 많은 수의 유튜브 콘텐츠가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외치는 몇몇 사람들의 범죄 행위나 그릇된 인간성을 뽑는다. 그것 봐라,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이 댓글의 여론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볼 수 있나? 진영 논리에 분노하면서 정작 내가 어떤 진영 논리를 펴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면, 지금 당신의 위치는 어디인가?
 
 


 


김승일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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