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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을 상상하며

황인찬
2021년 02월 10일
       
 

  

19세기 시인 보들레르는 길에서 상복을 입은 사람의 얼굴을 스치듯 보고, 그를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한탄하며 「지나가는 여인에게」라는 시를 썼습니다. 일순의 마주침은 결코 반복될 수 없고, 그가 누구였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에게 느꼈던 사랑은 영원히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물 것이라는 내용의 시였지요. 현대적 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나타난 익명성이라는 특징을 예민하게 포착해낸 작품이었습니다. 이처럼 익명성이란 현대적 삶과 개인의 성립에 있어 매우 밀접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2021년의 우리는 타인의 이름뿐 아니라 얼굴 또한 모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벌어지는 실랑이가 종종 뉴스를 통해 전해오기도 하고, 길에서 얼굴을 드러낸 타인을 보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지나가게 되곤 합니다. 얼굴을 완전히 개방하는 일이 서로에 대한 위협이 된 셈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과거에 얼굴을 가린 사람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얼굴을 드러낸 사람에게서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상상했던 것과 얼굴이 다르네요.” 
 
지난해에는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시대에 왕왕 벌어지는 일입니다. 마스크를 쓴 채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민낯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그와 시간을 보내다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얼굴을 모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워지는 일이지요. ‘생면부지’라는 말을 줄곧 써왔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이 생면부지의 영역이 예전보다 넓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타인은 더욱 멀어진 셈입니다.
 
저는 팬데믹이 초래한 일들이, 우리가 21세기를 통과하며 느껴온 타인에 대한 감각이 징후적으로 물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몰이해, 소통의 어려움 등이 마스크라는 사물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줄곧 품어온 여러 어려움과 불안들이 팬데믹을 계기로 터져나오며 가시화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특정 집단을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일을 우리는 줄곧 목격해왔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존재로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상상했던 것과 얼굴이 다르네요.”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얼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할 힘이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설령 그렇게 떠올린 얼굴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실과 다르기에 가능해지는 희망과 전망이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19세기 보들레르의 시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워했다면, 21세기 우리의 문학은 가려진 타인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는 동안 2021년을 맞았습니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 맞는 새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생면부지의 얼굴을 상상함으로써 보다 단단하고 따뜻하게 지속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실로 그렇게 되리라고도,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아울러 〔문학3〕이 하나의 시즌을 마무리하고 잠시간의 정비 기간을 갖게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곧 다시 찾아올 다음 시즌의〔문학3〕은 문학과 삶이 더욱 치열하고 밀접하게 만나는 장이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문학지가 쉬어가는 동안에도 문학웹의 시 연재와 3×100 연재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정기구독자분들께는 다른 방법을 통해 다시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밝음과 가벼움을 잃지 않는 한해가 계속되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얼굴을 직접 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문학3 기획위원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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