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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교환] 탕의 영혼들

신예슬
2021년 04월 21일
문학지 2021년 1호(통권13호)에 수록된 손유미 시 「탕의 영혼들」이 장르교환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가 풀어내는 '탕'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감상해보세요.

* 각 곡의 제목을 누르시면 음악을 함께 들으실 수 있습니다. :)

 
탕의 영혼들
 
 
세신. 몸을 깨끗하게 씻는 일은 단순히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제의적 행위다. 지나간 시간을 비워내고 묵은 때를 한꺼풀 벗겨내기 위해 향한 곳은 바로 목욕탕. 어제와는 다른 새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모아 목욕탕에 입수한다. 쑥탕 열탕 해수탕 게르마늄탕을 신나게 오가다 문득 탕 속에서 몸을 잃어버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누군가는 탕 속에 영혼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따뜻한 온기에 홀려 온몸이 나른해지는 동안, 탕 속의 영혼들은 사라져가는 내 몸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얻으러 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무언가를 내어주거나 빼앗기는 일은 탕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어떤 탕에 대단한 효능이 있다는 것처럼 어떤 음악엔 비상한 힘이 있어 보인다. 물론 그게 진짜로 효험이 있는지 아닌지, 선한 기운인지 아닌지, 때와 비슷한 어떤 것을 없애줄지, 내가 음악을 가져다 듣는 건지 음악이 무언가를 말할 상대가 필요해 나를 부른 것인지, 이것을 듣는 대가로 시간 말고 또다른 무엇을 내놓아야 할지, 음악에 담긴 것이 순수한 선의인지, 혹은 경각심이 흐려진 사이에 몸을 빼앗으려는 악당의 계략인지 곰곰이 돌이켜보자.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힘에 이끌려 음악을 들어보고야 말겠다면, 누군가의 몸을 빼앗고 그 자리를 차지한 영혼들이 탕 속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쑥탕
 
식물의 생육과 번성을 장려하는 모트 가슨의 「플랜타시아」엔 자라나는 새싹의 첫번째 떡잎부터 식물애호인의 기쁨, 물을 가득 머금고 바쁘게 자라나는 식물의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산뜻한 음악은 식물가루와 액체가 뒤섞인 쑥탕보다는 사람 곁에서 햇볕 쬐며 지내는 화분들에게 더 잘 어울리지만, 녹색 친구들의 효능은 아무렴 비슷하겠다. 식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의 생산성도 증대해준다고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힘을 누릴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식물은 햇빛과 물을 먹고 자라 우리에게 모종의 힘을 안겨준다. 흙과 빛과 수분과 식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등가 교환이 있고, 인간과 식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힘의 교환이 있을 텐데, 인간과 음악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환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파릇한 음악이 귓가에서 자라나는 동안 우리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그건 뭘까? 

*
 
열탕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과 환상이 담긴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따르면, 우상을 숭배하지 않아 왕의 분노를 산 소년 셋과 다니엘은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킨 이들의 마음에 감동한 신은 그들을 화염으로부터 지켜내고 멀쩡히 그곳을 빠져나오게 한다. 찬란한 생명을 되찾은 그들은 신을 찬양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린다. 
 
슈토크하우젠의 「소년의 노래」는 이 기적의 순간을 음향화한다. 거대한 화마에 뒤덮였기 때문인지 말과 목소리들은 조각조각 흩어져 사방에서 들려오고, 분절된 성부 사이에는 전자음들이 파고든다. 불가마 속 소리들은 어쩐지 깊은 물속 소리를 닮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믿음을 증명한 네 사람은 생명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까지 얻었다. 그런데 이미 기원전에 종결된 이 사건이 어떤 믿음 아래에서 되살려진 것인지, 이것이 소리로 재생되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년의 노래」 속에서도 과연 다니엘서의 이야기처럼 네 사람이 온전한 신체로 걸어나왔을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해수탕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모래사장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파도, 바다 소금 냄새, 곳곳에 놓인 돌과 해초류, 수영금지 경계선. 망망대해를 지나쳐본 적도 해수면 아래로 깊게 들어가 본 적도 없는 탓에 바다에 대한 상상은 몸으로 직접 갈 수 있는 경계면에서 멈춘다. 땅에 사는 동물들이 바닷속 세상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물과 뭍을 오갈 수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만이 공기 중의 음속과 물속의 음속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도롱뇽, 살라만더(salamander)는 바로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전설 속 살라만더는 불을 호흡하는 신비로운 화속성 동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실제로 갓 태어난 도롱뇽은 물속에서만 살 수 있고 점점 자라나면서 땅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살라만다의 「Ocean puts a fake spell on me」 속 ‘나’는 해수면 아래에서 교차하는 여러 해양동물들의 언어-주파수들을 감지하다가도 바다 표면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음악의 장소는 해변과 바닷속을 오간다. 음악 속의 ‘나’도 결코 물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전설 속 살라만더의 곁을 지켰던 그 불꽃과 화염은 도대체 언제 그들을 떠난 것일까. 그들의 몸을 불꽃은커녕, 해수탕 정도의 고온조차 견디지 못하는 몸으로 바꾸어버린 것은 어떤 주문이었을까. 혹시 살라만더에게 불을 빼앗아간 것은 바다의 영혼들일까? 불꽃을 닮은 몸체만이 그 전설을 증거하는 마지막 형상일지도 모른다. 

*
 
게르마늄 온천
 
테레민은 전자기장을 교란해 소리를 내는 악기다. 발명가 레옹 테레민이 만든 이 악기에는 두개의 안테나가 수직 수평으로 놓여 있다. 수직축의 안테나는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수평축의 안테나는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 쓰인다. 보통의 악기를 연주할 때 손으로 어떤 키를 누르거나 표면적인 마찰을 일으켜야 하는 것과 달리, 테레민에서는 안테나 사이에 형성된 전자기장의 한 부분을 교란하기만 하면 소리를 얻을 수 있다. 큰 저항 없이 전자기장을 통과한 손이 소리를 조형하는 이 악기가 만약 누군가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면, 그곳은 아마 수많은 음악가들이 찾아가 복을 비는 성지가 되었을 것이다. 
 
1858년 프랑스 루르드, 땔감을 구하다 마사비엘 동굴까지 가게 된 소녀 베르나데트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부인을 만났다. 아름다운 성모처럼 생긴 그 부인을 보고 베르나데트는 자신도 모르게 묵주 기도를 올렸고, 이후 홀린 듯이 그 부인을 수차례 찾아간 뒤 내세의 행복을 약속받았다. 어느날 그 부인은 베르나데트에게 흙탕물을 가리키며 ‘이곳을 파헤쳐 나온 물을 마시고 목욕하라’고 이르렀다. 분부대로 행하자 갑자기 엄청난 양의 샘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후 그곳을 찾아가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사람들의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베르나데트의 영적 체험 일화는 그 샘물에 게르마늄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신비로운 이야기와 함께 국내에 도착했고…… 게르마늄 온천의 역사는 아마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기적의 샘물을 세상에 가져다준 열쇠는 베르나데트가 올린 찰나의 기도라고 할 수 있겠다. 
 
메시앙은 ‘기도’는 원래 또 다른 전자악기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를 위해 쓰인 곡이지만 테레민으로도 연주된다. 허공에 손짓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테레민 연주 장면을 보면 불가능한 꿈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두 손을 모으고, 뇌리에서 문장들을 되뇌며 신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는 기도라는 행위가 꼭 눈앞에서 곧장 열매를 맺는 것만 같다. 눈으로 보기에는 힘의 등가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듯도 하다. 그러나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음악가는 수없이 많은 손짓을 허공에 뿌려야 한다. 기도라는 잃을 것 없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기도의 결실을 정말로 얻기 위해 믿음, 그리고 무한한 시간을 바치듯이.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의 사물들』(작업실유령, 2019)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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