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1

복도에 대한 단상

설하한
2021년 05월 26일
                



 
복도에 대한 단상


 
길게 누워 있다. 그것은 찢어진다. 찢어지고 접합된다. 이어지는 곳이 많을수록 복도는 효율적이며, 낮과 밤의 분간이 힘들어진다.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다시 위에서 아래로.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시 반드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복도는 복도와 불화한다. 
 
복도는 우리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착각을 혹은 우리에게 목적지가 있다는 착각을 돕는다.
 
비상구임을 알리는 램프가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복도에 빛을 새겨 넣는다. 그것이 복도의 눈이다. 불 꺼진 복도는 자신의 눈으로 인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빛을 따라 복도를 나서 당도하는 곳은 복도의 연장일 뿐이다. 복도는 바깥을 향하지 않는다. 복도는 바깥을 보지 않는다. 복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원근법같은 착시일 뿐이다. 
 
복도에 놓인 거울은 복도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거울은 복도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방이다. 우리는 거울로 된 방에 출입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는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울 너머는 방이 된다.
 
복도의 바깥으로 나가는 일. 비상구의 빛을 따라가기 출입문을 열고 나가기. 그러나 그런 일들로 복도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벽에 뛰어들기 천장에 앉아 쉬기 바닥에 낚시찌를 드리우기 이런 방법으로 아마 복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복도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선 광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탈출은 아주 잠시일 뿐이다. 
 
복도의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 다른 하나는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다. 창문을 통해 복도에 들어온 빛은 복도에 갇힌 벌레들과 비슷한 끝을 맞는다. 창문으로 복도에 들어온 빛은 바닥에 누운 채로 벌레들과 함께 말라 죽는다. 빛이 벌레들과 다른 점은 시신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문을 통해 복도에 들어온 빛은 생물과는 다르다. 문으로 들어온 빛은 우리를 바깥에 매혹시킨다. 그 빛은 빛을 지켜보는 이들의 뒤쪽으로 지나쳐선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 그것은 붙잡을 수 없다.
 
복도는 분배되는 장소다. 그러므로 복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장소이며, 정치적 장치이다. 복도는 평등보단 위계를 세우고 나누는 것에 더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도는 도시적인데, 이는 복도의 집단적인 성격과 관련 있다.
 
복도는 변온동물이라는 점에서 파충류에 가깝지만, 파충류는 수유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도는 파충류가 아니다. 동물 중 가장 복도와 가까운 동물은 쥐떼인 것으로 보인다.
 
복도에는 복도를 떠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판기에게 복도는 복도가 아니며, 복도의 정주자들은 자판기와 함께 낡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자판기와는 다르게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배치된다. 복도는 특정한 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위생적으로 유지된다.
 
복도의 날씨는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두가지 날씨만이 가능하다. 화창한 날씨의 복도는 복도가 아니라 전시장에 가까운 것이다.  
 
복도는 리듬이다. 그러나 리듬은 복도가 아니다. 리듬은 복도이기도 복도가 아니기도 하다. 그렇지만 복도는 음악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복도는 메트로놈이나 태엽 오르골에 가까운 것이다.
 
복도와 동굴과 흡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의 성격은 다르다. 동굴은 휴식의 공간이며, 피난처이다. 복도는 불안의 공간이며 혼란의 공간이다. 그리고 복도는 내부에 있는 인간들을 상처 입힌다. 이는 복도에 정주하는 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복도의 혼란과 불안 그리고 상처 입힘은 미궁과도 닮았다. 그러나 복도가 주는 그것들은 미궁과 달리 치유 과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복도의 유령들에 대해서 쓰려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계속 잊었다. 떠올리더라도 유령에 대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나무의 수관은 복도의 한 형식이다. 동물의 소화계통에 속하는 장기들 식도와 위장, 소장, 대장 등도 복도의 한 형식이다. 복도는 복도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복도는 무엇인가에 복무한다.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복도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복무하는 복도. 정치성이 소거된 복도. 자신 외에는 관계가 소거된 복도(어쩌면 이런 종류의 상상은 선배들이 만들어낸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꿈을 우리는 계속 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복도는 실제 세계에 배치되는 순간 자신에게만 복무하길 멈추고 다시 무엇인가에 복무할 것이다. 
 
복도의 복무는 생기론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의 복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자꾸만 믿게 된다. 정말로 우리를 바깥으로 데려다줄지 모르는 비상구가 있는 복도. 내가 지금껏 말해왔던 복도와 정반대의 모습을 가진 복도. 
 
이 믿음은 내가 가진 슬픔의 영역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안다.
 
복도에 거짓말처럼 또 문이 열리고 
빛에 이끌리는 벌레 같은 
내 믿음들 그리고 희고 어두운
 
고통들.

 


설하한
2019년 한경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