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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다이브(1회)

이현석
2021년 06월 03일
   



삐라따*
 


 
  검정색 민소매 티 양옆으로 드러난 태경의 팔뚝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물기가 닿는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쏟아지는 비에 시야가 흐려졌다. 태경이 헬멧의 바람막이를 올린 채 속도를 늦추면서 핸들을 꺾었다. 오후만 되면 스콜이 내리는 발리의 우기를 감안해도 이른 시각이었다. 태경은 문을 닫은 길가의 노점으로 다가가 처마 밑에 바이크를 세웠다. 땅에 발을 딛자 플립플랩을 신은 맨발에 끈적끈적한 것이 밟혔다. 아래를 보니 검댕 같은 구정물이 상어 문양 타투를 새긴 왼쪽 종아리에 튀어 있었다.
 
  까맣게 탄 피부 위로 색이 바란 타투가 이곳에서 보낸 삼년여의 시간을 새삼스레 일러주고 있었다. 처마 밖으로 왼다리를 내밀어 구정물을 씻어낸 태경이 물기를 털어내고는 가게 문턱으로 갔다. 거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바이크 좌측면 랙에 거치해둔 서핑보드를 바라봤다. 원래 타던 보드가 반파되었던 그 사고 이후, 서핑캠프 사장인 종민이 태경의 일년 근속을 기념하여 주문제작해준 것이었다. 20미터가 넘는 높이의 파도를 타면서 세계기록을 깬 브라질의 여성 서퍼 마야 가베이라의 시그니처 모델을 카피한 5.2피트짜리 하얀색 숏보드로, 이렇게 퍼질러 앉아 저 보드를 바라보기만 해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매일 해도 매일 새로운 스포츠였다. 조금 탄다 싶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자연의 뱃속으로 삼켜져 고배를 맛봐야 했고, 자신의 한계를 갱신해나가고 있다는 확신에도 끝내 익숙해지지 못하리라는 감각이 평행하여 질주했다. 희망과 절망 사이의 끊임없는 밀당은 이 스포츠에 한번 빠져들면 외통수로 골몰할 수밖에 없는 수십가지의 이유 중에서도 태경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스물여덟살이 되던 해인 2017년, 태경은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행하기 위해 발리로 왔다. 처음에는 ‘퇴사 후 여행’이라는 청춘의 진부한 경로였을지 모르나 이후의 삶은 진부함과 거리가 멀었다. 생초보로 짱구시 교외의 민스서프에 온 태경은 이 스포츠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사지가 달렸던 고대의 고래가 바다로 들어가 다시는 뭍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현지인 인스트럭터가 밀어주는 보드 위에서 처음으로 물살을 갈라본 태경은 다시는 그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장 강습, 영상 리뷰, 지상 훈련으로 이어지는 민스서프의 프로그램은 ‘발리의 태릉선수촌’이라 불릴 만큼 혹독했다. 한국인들은 이상하게도 그런 ‘빡셈’을 좋아했는데 태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휴가지에서도 기꺼이 구슬땀을 흘리려는 손님들은 입소문을 따라 이곳을 찾았고, 그런 손님들 중에서도 가장 하드코어한 장기 강습생으로 반년을 지낸 태경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지자 아예 이곳 강사로 취직했다.
 
  강사가 된 후에도 태경은 매일 바다로 나갔다. 강습을 하면서 태경 또한 그날그날 달라지는 파도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퀘스트를 뚫는 일을 낙으로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벅찬 하루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삶이었다. 다른 익스트림스포츠처럼 서핑도 위험하리만치 중독성이 강한 운동이었다. 만약 그 사고를 겪지 않았더라면 태경은 여전히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뇌를 절여가며 바다 위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사고는 2018년 10월의 어느 일요일에 벌어졌다. 
 
  태경은 울루와뚜 스팟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상급자 캠프생 대여섯명과 함께 종민을 따라 발리섬 남쪽으로 향했다. 주말은 강습일이 아니었지만 몸이 근질근질하기는 태경도 마찬가지였고 서핑 고수들이 모여드는 울루와뚜였기에 더욱 욕심이 났다. 울루와뚜 스팟은 날카로운 산호초와 뾰족한 바위들이 즐비해 위험하기로 유명한데 잘못 고꾸라지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딱딱한 지형 때문에 마치 컨베이어벨트에서 찍어내듯 서핑에 안성맞춤인 파도가 항상 같은 지점에서 만들어졌다. 서퍼들은 이런 지점을 ‘포인트브레이크’라 부르는데, 원숭이들이 노니는 절벽사원으로 유명한 울루와뚜 꼭대기서부터 하염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 바다로 200미터가량 나가면 이런 포인트브레이크들에 당도할 수 있었다. 파도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발리의 로컬서퍼들과 호주에서 온 프로서핑선수들로 붐비는 오른편의 메인 구역에 비해, 파고가 2미터 내외인 좌측의 포인트브레이크들은 약 일년간 서핑에 매진해온 태경 정도의 실력으로도 파도를 잡을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실력이 어떠하든 간에 일단 울루와뚜 정도 되는 바다에 들어온 이상 어느 지점을 택하더라도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자비심을 다른 서퍼들에게 바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1960년대 하와이에서 현대적인 서핑이 시작된 이래, 서퍼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위에서 이 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을 발달시켜왔지만 지난 수십년간 변함없이 가장 중요하게 지켜지는 규칙은 이것이다.
 
 
‘하나의 파도에는 한명만 타야 한다.’
 
 
  솟아오른 파도가 하얗게 깨지기 시작하는 부분. 서퍼들은 그곳을 ‘피크’라 부른다. 파도에 대한 우선권은 피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진다. 보드에 엎드려 팔을 젓는 동작인 ‘패들링’을 하면서 피크가 만들어지는 ‘라인업’까지 나간 서퍼들은 그곳에 둥둥 떠서 자기만의 파도를 기다린다. 그러다 먼바다에서부터 너울이 꿈틀대면 피크를 먼저 잡기 위해 서퍼들이 너울을 등지고 미친 듯이 패들링을 한다. 보드의 꼬리 부분이 확 들리면서 머리부터 물에 처박힐 것만 같은 그때, 공포를 이기고 일어선 사람만이 파도의 주인이 된다.
 
  이 규칙을 고의로 어기면 로컬서퍼들에게 찍혀 다시는 같은 해변에 발을 붙이지 못하기도 한다. 파도를 뺏긴 서퍼와 파도를 뺏은 서퍼가 잘잘못을 따지며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도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뭍에서 관망하면 가장 자유로워 보이는 이 스포츠는 사실 무척 엄격한 룰에 의해서 유지된다.
 
  “마! 너 저기 가면 모가지 따여.”
 
  메인 구역으로 가고 싶어하는 태경에게 종민이 경고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깡마른 몸에 파란색 반바지만 입은 종민이 숏보드 위에 앉아 누런 단발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파도에 휘말리면 몸을 둥글게 말아라. 어차피 몸은 뜨게 되어 있다. 파도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나오려고 애쓰지 마라. 물 밖으로 나올 때는 머리를 감싸라. 한번 시작하면 듣는 사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따따따 쏘아대는 종민의 잔소리에 태경이 “오빠! 내가 무슨 초밥도 아니고!”라며 역정을 냈다.
 
  “그래, 가봐. 겪어봐야 늘지.”
 
  종민이 다가오는 너울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너울이 바짝 다가오자 너울을 등지고 보드에 엎드린 종민이 팔을 세번 젓고는 바로 테이크오프 동작을 취했다. 두 팔을 아래로 쭉 뻗어 보드를 지그시 누른 그가 피크 반대편인 왼쪽 면을 바라보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보드는 종민의 시선을 따라 왼편으로 부드럽게 틀어졌고, 한쪽 무릎을 가슴팍으로 가져와 어깨너비 보폭으로 보드 위에 구부정하게 선 종민이 파도의 면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멀어졌다. 
 
  파도 보는 눈을 키워라. 올바른 정보를 숙지해라. 보기에만 그럴 듯한 몸은 필요 없다. 정확한 근육을 발달시켜라. 
 
  자수성가한 한국 아저씨 특유의 앵앵거림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타협 없는 그의 운동철학만큼은 태경이 속 깊이 존경하는 부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라이딩하는 종민을 지켜보던 태경은 보드를 돌려 메인 라인업으로 향했다. 
 
 
  동양인 여성 숏보더는 서핑의 성지인 발리에서도 찾아보기 드물었다. 라인업에 떠 있는 남자들은 인종을 불문하고 태경 곁에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발리에 온 지는 얼마나 됐느냐, 어디서 지내냐, 이따 빈땅 맥주 한잔 하자는 식으로 말을 걸면서 파도를 조금씩 양보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사이 저마다의 언어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다는 것쯤은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느껴졌으므로 태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파도를 잡는 일에만 집중했다. 태경이 아무런 대꾸 없이 파도를 두어번 파도를 잡자 그들이 잠깐 보여주었던 관대함은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Don’t waste a wave, bitch!”
 
  백인 서퍼 하나가 소리를 내질렀지만 피크에 더 가까이 있던 태경은 욕지거리를 무시하고 계속 패들링을 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격렬하게 팔을 휘젓는 태경이 무안해질 만큼 가벼운 패들링으로 태경의 앞을 질러 순식간에 피크를 차지했다. 매너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나 규칙은 규칙이었다. 아무리 열이 받아도 걸음마를 뗄 때부터 파도를 탄 이들을 제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자가 테이크오프를 하더니 태경을 째려보며 괴성을 질러댔다. 태경의 코앞에서 백사이드 턴을 한 남자는 스프레이를 뿌리듯이 보드 아래 붙은 날카로운 핀으로 촤악, 하고 물을 튀겼다. 태경이 하얗게 질려 파도 뒤로 몸을 피하자 다른 서퍼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낄낄거렸다.
 
  숏보드의 최고 시속은 70킬로미터다. 유리섬유로 폴리우레탄이나 에폭시 수지를 단단히 감싼 보드가 목을 가격한다면 당연히 즉사한다. 태경을 향한 그들의 조소는 네가 죽지 않을 만큼 보드를 제어한다는 과시였다. 달리 말하면 빨리 꺼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태경이 분하다는 듯이 한쪽 손바닥으로 수면을 내리치자 그들은 더욱 크게 웃어댔다. 붉어진 얼굴로 진저리를 친 태경은 보드 앞머리를 돌렸다. 종민과 캠프생들이 있는 지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패들링을 하려는 찰나, 라인업 저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Outside!”
 
  그것은 경고 메시지였다. 좌우로 한꺼번에 부서져 길이 만들어지지 않는 파도, 즉 ‘클로즈아웃’이 다가오고 있으니 파도 안에 갇히기 전에 너울 뒤로 넘어가라는 뜻이었다.
 
  태경이 뒤돌아보니 파도는 못해도 3미터는 족히 넘을 듯했다. 너울을 향해 보드 앞머리를 돌린 태경이 보드에 엎드린 채 너울의 경사면이 코앞에 바짝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두 손으로 보드를 힘껏 눌렀다. 파도로 부서져가는 너울 아래로 보드의 뾰족한 앞부분이 파고들었다. 보드와 함께 태경의 몸도 경사면 아래로 꽂혀들자 물살이 웅, 소리를 내며 먹먹해진 귓가를 스쳤다. 
 
  너울이 품고 있는 위치 에너지는 파도로 부서지면서 운동 에너지로 전환된다. 파도의 운동 에너지는 피크 아래부터 파도의 골까지 이어지는 경사면에서 극대화되는데, 서핑은 이 부분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스포츠이지만 제때 테이크오프를 하지 못한다면 세탁기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파도에 휘말려 통돌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이 경사면 아래로 잠수하기만 하면 아무런 저항도 없는 고요한 수중 세계가 잠시 펼쳐진다. 숏보드는 사이즈가 작은 만큼 부력도 작아 서퍼가 힘을 아래로 주면 서퍼와 함께 잠영을 하게 된다. 경사면 아래로 들어가 숨을 참으며 눈을 홉뜬 태경 위로 해파리 한마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파도가 머리 위를 지나가자마자 태경은 오른발로 보드 뒤쪽을 찍어 눌렀다. 보드 앞이 들리면서 수면 위로 솟아오른 그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는 얼굴을 닦았다.
 
  바늘을 꿰는 것처럼 수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 타지 못할 파도를 피하는 이 기술을 서퍼들은 ‘덕다이브’라고 부른다. 기억에 남을 만한 큰 파도를 상대로 덕다이브에 성공한 태경이 미역줄기처럼 내려와 눈을 가린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쓸어 넘기는데 방금 지나간 파도의 곱절은 될 듯한 너울이 그의 정면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파도와 파도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연달아 몰아치는, 소리 없이 다가와 서퍼들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해서 한국 서퍼들 사이에서는 소위 ‘귀신 세트’라고 불리는 ‘스니크 세트’였다.
 
  아…… 좆됐다.
 
  허겁지겁 보드에 엎드린 태경이 다시 덕다이브를 시도했지만 이미 하얀 포말로 덮쳐오는 파도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보드와 같이 파도에 휘말린 그는 거센 물살을 따라 급전직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물 아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산호초인지 암초인지 모를 뾰족한 물체가 왼쪽 옆구리부터 등까지 찢자 태경의 입에서 비명이 공기방울로 터져나왔다. 부족해진 공기 때문에 태경은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렸으나 몸은 계속 물속에 붙잡혀 있었다. 발목과 보드 뒤쪽을 연결하는 고탄력 끈인 ‘리쉬’가 바위틈에 엉킨 탓이었다. 다급한 손길로 오른쪽 종아리를 더듬거린 태경이 발목을 휘감은 리쉬의 벨크로를 뜯어내다시피 풀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 무섭게 다음 파도가 또 몰아쳤다. 그 파도를 타고 두 동강난 제 보드의 반쪽이 태경에게로 돌진해왔다. 반파된 보드가 머리를 반사적으로 감싼 태경을 강타했다.
 
 
  “이 화상아!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종민은 로컬서퍼들에게 구조된 태경이 해변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를 운전하면서도, 현지인 의사가 태경의 상처를 봉합하는 중에도, 태경이 엑스레이를 찍을 때도 종민은 자기가 뭐랬느냐며, 살아 있는 게 요행인 줄 알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아 진짜, 그만 좀 하라고! 누군 다치고 싶어서 다쳤나!”
 
  진료실에서 태경이 대거리를 하자 “시끄러! 넌 아가리부터 조졌어야 됐어!”라며 소리친 종민은 흥분한 목소리 그대로 의사에게 인도네시아 말로 무어라 물었다. 의사가 짤막하게 한마디 하니 종민이 “아유, 진짜!”라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람 겁나게 왜 그러느냐며, 심각한 거냐고 묻는 태경을 노려본 종민이 “마!”하고 호통을 쳤다.
 
  “너도 병원일 해봐서 알 거 아냐?”
 
  “뭔 상관이래…… 왜요? 쟤가 뭐라는데?”
 
  “의사 새끼들 하는 말이 다 똑같지. 쉬란다, 푸욱!”
 
  종민이 ‘푸욱’이란 말과 함께 검지로 태경의 이마를 밀었다. 얼굴을 찌푸린 태경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평소 같으면 왜 사람 머리를 건드리냐며 짜증을 냈겠지만 종민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까닭도 이해가 갔기에 태경은 입맛 다시는 소리만 내고는 입을 꾹 닫았다.
 
  교외의 단층주택 한 채로 서핑캠프를 운영하던 종민은 그즈음 짱구 시내의 삼층짜리 풀빌라를 임대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일머리 좋은 직원이 열외가 되는 건 종민의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반파된 보드를 막느라 손목 인대가 찢어진 태경은 석달간 현장강습에 참여하지 못했다. 풀빌라로 옮겨갈 시기에 맞춰 강사 일을 시작하기로 했던 지호가 시일을 앞당겨 발리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캠프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졌을 것이다. 지호는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생 때부터 제주도의 서핑스쿨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터라 바다에서 태경의 빈자리를 그럭저럭 메웠다. 종민은 지호가 현장강습을 끝낸 강습생들을 데리고 캠프로 돌아오면 현지인 촬영기사가 해변에서 찍은 라이딩 영상을 강습생들과 함께 돌려봤다. 올바른 자세와 규칙 준수, 그리고 단단한 멘탈을 중시하는 종민은 강습생 각자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며 제대로 지키지 못한 서핑 규칙이나 안전수칙을 복기시켰다. 그러면서도 파도에 겁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약한 정신머리를 호되게 나무랐는데, 그 모습은 마치 따끔한 일침으로 유명한 대치동 일타 강사를 방불케 했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지상훈련을 도맡게 된 태경은 종민의 지적사항들을 기억해뒀다가 영상 리뷰가 끝나면 거실과 풀장 곳곳에서 강습생들이 바른 자세를 숙달할 때까지 같은 동작을 최소한 백번씩은 반복시켰다. 에누리 없이 진행되는 훈련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다음날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온 강습생들은 하루 만에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누구보다 본인들이 가장 만족해했다. 
 
  강습생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나름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태경에게 서핑을 하지 못하는 발리는 지루한 휴양지 이상이 되지 못했다. 재활을 하는 동안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에 시달렸던 태경은 부상에서 얼마간 회복되고부터는 서핑에 필요한 코어 근육과 상체를 발달시키는 운동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아직 자신이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간 이러한 삶이 가능했음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태경은 오래도록 파도를 타고 싶었다. 이외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만 둬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최대한 그날을 먼 미래로 미루고 싶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또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이곳에서의 삶이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처마를 때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태경은 검은색 보호대를 찬 오른쪽 손목을 꾹꾹 주물렀다. 사고 이후, 태경의 왼쪽 옆구리에는 맹수가 할퀸 듯한 흉터 두줄이 남았다. 태경의 흉터를 처음 보는 강습생들은 커버업 타투를 해보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태경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 흉터는 서퍼들 사이에서 일종의 훈장이었다. 하지만 통증은 달랐다. 보이지 않는 고통은 명예가 되지 못했다. 팔목의 통증은 한동안 사라진 것 같다가도 아무 예고 없이 돌아왔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지는 우기가 되면 통증이 오는 주기도 더욱 빈번해졌다.
 
  이 비가 그치면 태경은 해변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캠프에서 승합차를 타고 출발한 마지막 강습생들이 먼저 도착해 있을 것이다. ‘마지막 강습생’이라는 말이 태경의 입 안을 낯설게 맴돌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면 자신도 떠나야 한다. 돌아갈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돌아갈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처마를 때리던 빗소리가 뚝 그치자 문턱에서 몸을 일으킨 태경이 엉덩이를 털었다. 언제 퍼부었냐는 듯 말개진 하늘처럼 어느 것 하나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사실은 다영의 존재였다. 마지막 강습생 중에 여전히 다영이 남아 있었다. 그를 떠올리다 헛웃음을 낸 태경은 도리질을 치고는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정말 가야 할 시간이었다.
 
 
 
 
* Pirata. 죽었으나 화장되지 않은 자들의 혼령.


 


이현석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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