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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윤혜지
2021년 06월 09일
                  



 
지붕


 
열세살 여름, 지붕을 갖게 되었다. 다락방에 살게 된 것만으로도 흥분 상태였는데 지붕이라니.『소공녀』와『빨강머리 앤』『행복한 폴리아나』같은 명작동화 ‘다락방 시리즈’에 심취해 있던 (특히 폴리아나가 더운 여름밤, 벌레가 들어올 수 있으니 창문을 열지 말라는 이모의 말을 어기지 않으려고 지붕 위로 나가서 자는 장면을 좋아했다. 과연 그게 이모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도 지붕에서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푹신한 베개와 이불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자버리는 거야……) 나는 참을 수 없었고, 삼각형 모양의 방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동생들이 뒤따랐다.  
 
이사 간 집의 지붕은 비대칭 형태의 박공지붕이었다. 경사가 완만한 편이었고, 폭이 좁긴 했지만 옥상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지붕 주위를 3분의 2쯤 에워싸고 있어서 미끄러져도 바로 땅으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옥상 벽이 둘러 있지 않은 마당 쪽 지붕은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지붕 위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가 지고 있어서 맞은편 초등학교 건물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반짝였다. 학교 뒤 야산의 무성한 나무들도. 그 연하고 순한 빛들. 
 
우리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걷는다,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하나둘씩 불이 켜진다. 바깥은 어두워지는데 안은 촘촘히 환해지는 모습에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를 목격한 선량한 이웃이 아래층에 있던 엄마에게 알려줄 때까지(아세요? 이 집 애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고요!) 우리는 오래도록 지붕에 머물렀다. 
 
엄마가 엄포를 놓았지만 그후에도 지붕 위에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순 없었다. 부모의 머리 위에서 부모가 기겁할 일을 벌이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으니까. 다만 나는 동생들 없이 홀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문 한낮을 골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은 미칠 듯 더웠고, 응달 하나 없이 정직했다. 땡볕 아래에서도 나는 퍽 즐거웠다. 피크닉 기분을 내며 아끼는 책과 과자, 음료수 따위를 들고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읽고 먹는 일은 드물었고 주로 보았다. 높은 것들과 멀리 있는 것들을 바라보다 눈길을 내리면 지붕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지붕 아래 깃들어 있던 나와 지붕 위에 있는 나는 다른 사람 같았다. 
 
지붕 아래 있을 때 나는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야만 했다. 무언가 일어난/일어나고 있는 세계와 나를 분리하기 위해, ‘괄호’ 치기 위해.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일은 나한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어,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괄호를 치다보면 마음에 칸막이가 쳐졌다. 여러개의 텅 빈 마음. 그 마음들을 지닌 채 나는 표면이 매끄러운 메모지에 어두운 문장들을 적어나갔다. 마침내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문장을 쓰고야 말았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 두려워져 이내 ‘아닙니다,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다 취소입니다’라고 다시 쓰고 잘게 찢어 버렸다. 그러고 나면 실컷 울고 난 기분이 들었다. 속이 온통 매캐한데 개운한 느낌. 지붕 위에 올라가면 문장들을 쓰지 않아도 그랬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지붕 위에서 죽은 새를 보았다. 새는 누가 놓아둔 듯 가지런하게 누워 있었다. 죽은 몸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어서 나는 조금 긴장하며 새를 살폈다. 새는 볕 아래 바짝 말라 있었다. 희고 가느다란 실이 엉켜 있는 것 같았고, 모든 게 빠져나간 형상이 이상하게도 청결해 보였다. 
 
나는 새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아 여느 날처럼 여러 것들을 보았다. 다른 집의 옥상과 지붕들, 학교 운동장과 창문,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짙어지는 산, ‘지구’라거나 ‘우주’ 같은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깊은 하늘을, 유독 더 멀리 있는 것들을 보았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나의 위에 놓여 있을 새를 생각했다. 새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계속 지붕 위에 있을까, 아니면 말라가다가 점점 더 조그맣게 알갱이가 되어 사라지는 걸까. 새가 있어주길 기대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있었으면 하면서도 동시에 없었으면 하는 마음. 사랑하지만 죽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나는 집 안과 밖도 아닌 지붕 위로 올라간 걸까. 며칠 뒤 가보니 새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름이 지나고 나는 더이상 지붕 위에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 나는 부모의 집을 떠났다. 이제 다락방은 창고가 되었다. 가끔 그 집에 가더라도 지붕은커녕 다락방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이제 지붕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아래층에서 서성이며 늙은 부모의 안부를 살핀다. 땅에 붙어서 속 시끄러운 일들에 골몰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기를 반복하다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그곳을 벗어나 나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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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모임에서「빈티지한 물의 기운」을 낭독한 적이 있다. 시를 읽다 갑자기 울컥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놀랐다. 어째서? 모든 일은 완료되었는데, 이제 나는 안전한 곳에 있는데, 내게 맞는 삶을 찾았는데.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 속 문장이 나를 붙들었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읽고 쓰며 내 고통은 제자리를 찾았을까. 나는 주저했는데, ‘고통’이란 말이 내겐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감히 내가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것은 그저 알 수 없는 먹먹함과 내내 손에 움켜쥐고 있던 어떤 열감이었을 뿐. 그리하여 나는 고통이란 메모를 잘게 찢는다. 작아진 그것들을 한낮의 지붕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앉아 있던 시간을 떠올린다. 먼 산과 하늘보다 더 멀리 있는 것처럼, 그것들을 아득하게 바라보던 시절에 대하여, 여전히 지붕 위에서 볕을 받으며 말라가고 있을 것들을 생각한다.           



 
* 크리스티앙 보뱅『작은 파티 드레스』, 이창실 옮김, 1984BOOKS 2021.

 
 


윤혜지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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