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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9회)

박서련
2021년 08월 31일




 
9. 할말은 입 안에서 빙빙 돌고*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표가 났는지 아로아는 손을 놓았다. 
 
“당장 변화를 바라거나 뭔가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운명 같은 말, 부담스럽게 들렸다면 사과할게요.”
 
“그……”
 
그런 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너무 뒤죽박죽이어서 뭐가 아닌지, 아닌 게 뭔지 헷갈렸다. 
 
“하지만 나는 예언의 마법소녀예요.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을 거예요.”
 
당당하고 씩씩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아로아를 보니, 말의 내용은 둘째치고, 뭐랄까……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아로아가 좋아. 아로아와 같은 마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로아가 계속 곁에 있으면 좋겠어. 어쩌다 나 같은 게 마음에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건 아로아 마음이니까…… 
 
“고마워요.”
 
나의 대답에 아로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고 봐요. 반드시 나도 좋아요,라고 말하게 될 거예요.”
 
예언의 마법소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나는 아로아의 손을 잡으면서 생각했다. 공중에 둥둥 떠 있던 우산이 내려와 아로아의 다른 한 손에 착륙했다. 내가 먼저 아로아의 손을 잡은 것은 지금까지 없던 일이라는 사실을, 한참 걷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



 
“시간의 마법소녀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접촉에 성공했는지를 묻는 것보다 이 편이 더 대답을 듣기 쉬울 것 같아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아로아는 잠깐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내 의중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서운 사람.”
 
흠, 만나봤다는 거구나. 아마도 나보다 어리겠지? 마구 없이도 스스로 각성한 사람이니 능력도 대단하겠지. 
 
“우리 편이면?”
 
“좋을 텐데.”
 
아로아는 엉뚱한 대답으로 문장을 완성했다. 
 
“우리 편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직까지는 딱히 누구의 편도 아니죠. 다만 연대체에 합류하기를 거절한 일이나 그밖에도 다른 성향을 보았을 때, 어쩌면……”
 
아로아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추었다가 말머리를 틀었다. 
 
“마법소녀의 자연 각성에는 대체로 계기가 있어요. 트리거(trigger)라고 하죠. 학생이 한명뿐인 작은 학교에 다니던 시골 아이가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강하게 품었을 때 제작의 마법소녀가 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이가 사고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끈질기게 생각하다가 예언의 마법소녀가 되는…… 그런 거죠.”
 
아로아 이야기일까? 아로아와 이어진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게 정말 당신 얘기라면 나와 당신은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나와 당신 사이에 운명이 있다는 당신의 말을 믿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시간의 마법소녀는 어떻게 각성한 건가요?”
 
내가 묻자 아로아는 곧바로 되물었다.
 
“사람은 어떤 순간에 ‘지금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까요?”
 
“음…… 너무 행복할 때?”
 
아로아는 멈춰서더니 의아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높이 치켜올린 채로 나를 보았다.
 
“왜요?”
 
“글쎄요…… 너무 아프거나 뭔가 끔찍한 경험을 했을 때도 시간이 멈추길 바라겠지만,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걸 계속 겪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는 시간을 돌려서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말이에요. 행복한 시간은 여러번 멈추거나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하고.”
 
아로아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조금 떨구고 걷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정확히 반대의 선택을 했어요.”
 
그래서였구나. 내가 시간의 마법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해서 의아하게 본 거구나. 그야 뭐 시간의 마법소녀가 아니니까. 그건 이제 나하고는 별 상관 없는 일이어서 아로아가 나를 그렇게 쳐다본 게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정말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겠지만.)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에 시간이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했고…… 각성이 일어났죠. 시간이 멈췄어요.”
 
혹시 그래서 그걸 트리거라고 부르는 걸까? 마법소녀의 자연각성은 어쩐지 대체로 아프고 괴로운 계기로 일어나는 것처럼 들렸다. 괜한 것을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로아는 아주 조심스레 말을 고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간의 마법소녀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몸을 빼내고, 자기가 어떤 능력을 얻었는지를 곧바로 깨달았어요. 각성하자마자 능력을 그 정도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마법소녀는 별로 없는데……”
 
마치 태어나자마자 똑바로 서서 걷는 네발동물처럼 말이지. 역시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시간의 마법소녀가 되어서 잘된 게 아닐까. 아니다, 무능하지만 우리 편인 거랑 유능하지만 우리 편이 아닌 것 중에는 전자가 좀 낫지 않나.
 
“시간의 마법소녀는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던 사람의 시간만을 멈춰서 부엌으로 끌고 갔어요. 체구 차이가 커서 쉽지 않았죠.” 
 
“부엌이라면,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건가요?”
 
아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집에 있는 냄비 중에 제일 큰 것에 물을 가득 채워 끓이고…… 아마 냄비의 시간을 가속했겠죠. 순식간에 끓어오른 물에 가해자의 얼굴을 처박은 다음 시간을 원래 속도로 돌려놓았어요.”
 
나도 아로아도 잠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그 얘기를 다 해줬어요?”
 
“그건 내가 ‘본’ 거예요. 시간의 마법소녀가 각성하던 순간에.”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운동장에 주저앉던 아로아를 떠올렸다. 직접 겪기에도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컸을 텐데. 그날 갑자기 떠나버린 아로아를 조금이나마 원망스러워했던 게 후회되었다. 
 
“그런 걸 봐버려서 미안하지만, 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어요. 왜 그 사람이 시간의 마법소녀가 되어야 했는지. 왜 협회에 힘을 보태기를 거절하는지.”
 
아로아는 그렇게 말하고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이런 세계에서 마법소녀가 무조건 선하기를 바라는 건 동화에 나오는 요정이 진짜 있다고 믿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이에요. 그걸 이해해버리니까…… 힘드네요.”
 
정말 그렇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소녀들은 무조건 착할 수도 없고 착할 필요도 없다. 이건 만화가 아니니까. 사랑과 희망, 선의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나 어떤 마법세계에서 온 존재들과 맞서는 게 아니라, 먹고 사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쳐가면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마법의 힘을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불행히도 모든 것이 만화 같지는 않아서, 이 세계에서 마법소녀와 누군가가 싸우면 누군가가 다친다. 누군가는 피를 흘린다. 그 누군가란 필연적으로 마법소녀와 같은 인간. 그렇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각성한 사례가 그렇듯, 마법소녀로서의 최초의 싸움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투니까. 
 
그렇지만, 그렇다면, 혹시, 만약, 마법소녀와 마법소녀가 서로 싸워야 한다면? 시간의 마법소녀를 두고 아로아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 편이 아니라면 두려워할 만한 사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그걸 물어봤었죠, 소녀가 아니어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냐고.”
 
아로아가 문득 말했다. 아, 응, 네. 생각에 잠겨 걷다가 급하게 대답했더니 아로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론이라기엔 너무 어설픈 얘기지만, 내 생각은 이래요. 뭐랄까, 세계의 의지가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하는 거예요.” 
 
“균형?”
 
“마법소녀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그 힘이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니까. 거꾸로 말하면, 각성 직전의 마법소녀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
 
어느덧 집앞이었다. 잠깐 앉아서 차라도 한잔 하겠냐고 권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권할 차가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래도 고백을 받은 직후여서 들어오라고 하기가 민망했다.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부여되기 때문에 소녀들에게만 마법의 힘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그게 내 생각이에요.”
 
아로아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더니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는 아로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켜준다고 호언장담할 땐 언제고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가는 거야.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혹시 아로아도 부끄러웠던 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늘 택시를 타고 다니던 아로아가 우산을 들고 걸어서 나를 데리러 와준 점에 대해서도. 
 
갑자기 날씨의 마법소녀가 되고 싶어졌다. 
 
아로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고 힘주어 기원해 보았지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여전했다. 날씨의 마법소녀가 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마법소녀가 아니라도 아로아에게, 그러니까 협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소망은 너무 힘이 없었다. 나보다야 소풍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아이 쪽에 날씨의 마법소녀로서의 소질이 풍부할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대체 무슨 마법소녀가 될까. 
 
아마도 엄청나게 하찮은 능력을 지닌 마법소녀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 지니고 나간 기억도 없는데 어느새 주머니에서 나온 신용카드 모양 마구를 쥔 채로 나는 생각했다. 
 
아마 곧 아로아도 알게 될 거야. 아로아처럼 멋진 사람은 나 같은 애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마음이 조금 아파졌다. 
 
 
 


*‘영심이’ 삽입곡 - 「영심아 난 너만 보면 그래」
 
 
 


박서련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이 있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 플랫폼 던전(www.d5nz5n.com)의 운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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