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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정나란
2021년 09월 01일



 
와온


 
나는 네 실험의 
마지막 조각이 되려 했다
산그늘을 달렸다
누군가 끝없이 던진 밤인가
신의 망막을 달리는 일인가
부서진 다리
끊어진 나무
어둠을 모으면서 웅성거리는 저녁이
길을 잃은 소떼처럼
울음을 놓고 있다
신의 손에도 
피가 흐르는가
밤은 피 없이 완성될 수 있을까
나는 긁지 않고는 새벽을 지날 수 없다
종이와 상자와 아스팔트가 하나의 표면으로
내 손을 당긴다
 
어제를 달린 것은 
어떤 망막의 장면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을 알려고 아침에 일어났다
그것을 알려고
바지를 입었다. 셔츠를 목에 끼웠다
동전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동전을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은색 열쇠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이
돌아오는 길이 아닌 것을 알았다
신경증 환자의 말이 흘러다녔다
흘러다니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진짜는 모두 바닥으로 간다
 
와온에 잘못 도착한 것 같아
반음절로 굴러다닌 피아노 건반을 본 것처럼
도착한 것들이 여기가 아닌 것을 
토해내고 있다
나는 새벽에 잠이 깼어
귀에 대고 끝없이 말해
안심해 비닐봉지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말하는 여자는 파마를 새로 했고
샤넬 립스틱을 사기로 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았어, 비닐봉지
 
그 많은 도착한 것들이 또다시 도착해야 한다니
돌부리를 걷어차는 
지느러미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피아노 속은 아직 
영원이 가득해
 

 


정나란
2019년 『쓺』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굉음』 『흙에 도달하는 것들, 가장 가까이 있는 말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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