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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10회)

박서련
2021년 09월 07일




 
10. 멈추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며*
 
 
 
 
 
 
멀리서 관찰할 수 있다면, 이런 것을 보고도 균형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대륙에서는 산불이 타오르는데 동시에 어떤 대륙에서는 대홍수가 일어나는 것. 이 행성 표면의 어느 한점이 극도로 고온건조해졌을 때 다른 편 또 어느 한점은 대야에 떨어진 종잇조각처럼 흐물흐물하게 젖어서 퍼져버리는 것. 한파도, 무더위도, 해수면 상승도 토네이도도 이 거대한 구체의 어느 한점 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그 모두를 합치면 그저 평균이 된다…… (되겠지?) 한 행성의 기온과 습도의 평균. 
 
멀리서 관찰하는 눈이 실제로 있다면, 그 눈의 주인은 아마 그 점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산불이 일어나면 수많은 동식물이 목숨을 빼앗긴다. 태풍이나 해일로 대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잃고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어났을 것이다. 딱히 기후 재난이 아니어도 그냥. 이 행성이 물을 가지고 있고, 약간 기울어진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으며, 거대한 열과 빛의 구체 주변을 크게 둘러 달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 비슷한 이유에서 이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태어난 생명체들은, 저항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적과 공존하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질해왔을 것이다. 기후라는 친밀한 적으로부터…… 최소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기후의 잔인성이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고, 애초에 인격을 갖지도 않은 어떤 현상에 자비심을 바라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원래도 전혀 다정하지 않았던 그것이 이제는 재난이라 불리는 데에도 까닭이 있을 것이다. 수천, 수만년간 함께해왔기 때문에 얼마간 파악된 것처럼 보였던 그것의 성향이 어느덧 훨씬 사나워지고 종잡을 수 없어졌다는 것. 더위와 추위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물론, 일년에 한두번 우리나라를 지나갈까 말까 하던 태풍들이 여름 내내 일어나고, 빙하가 녹아 흐른 물 때문에 땅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입 안에 물고 있던 사탕이 작아질수록 점점 더 빨리 녹아가는 것처럼.
 
아로아를 만난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나흘이 되도록 그치지 않고 있었다. 
 
거리에 빗물이 고이기 시작해서 반지하인 우리집에도 물기가 침범해왔다. 누군가 건물 현관문을 열 때마다 엎질러지듯 빗물이 계단으로 흐르고, 그게 쌓여서 우리 집 문틈으로 조금씩 스미는 것이었다. 현관으로 새어들어온 물기를 닦고 걸레를 짜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문 앞 복도에 물이 차오를 테고, 그러면 우리 집도 물에 잠기는 건 시간 문제겠지. 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걸레를 의자 등받이에 걸고 돌아서다가 벽 한가운데에 작고 검은 얼룩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기미인지 내가 잡았던 벌레의 흔적인지 확인하려고 들여다보다가, 조금 위에 그대로 머리를 박은 채로 눈물을 닦았다. 
 
저녁에 출근은 어떻게 하지? 
 
새삼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길에 빗물이 넘치는데도 누군가 자꾸 현관문을 여닫는 것은, 비가 이렇게 오는데도 위층 사람들이 생활을 지속한다는 의미니까. 출근하고 퇴근하고 필요한 것을 사러 가게에 다녀오고, 그런 일들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보통이라도 되기 위해서는 보통만큼의 노력은 해야 하는 거다. 그 보통 사람만큼의 노력이라는 것이 하필 큰비가 여러날 이어지는 와중의 첫 출근이라는 게 조금 억울하고 기막히지만…… 
 
날씨를 감안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어차피 조끼 유니폼을 껴입어야 해서 근무복에 따로 제한은 없지만 긴 바지와 앞코가 막힌 신발을 착용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옷을 입고서는 발목까지 물에 잠기는 길을 헤치고 길 건너 동네 편의점까지 갈 수가 없어서 가방에 따로 챙기고 슬리퍼를 신었다. 슬리퍼가 꺼덕거리며 발에서 떨어져 물살을 가를 때마다 노를 젓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슬리퍼와 발바닥 사이로 물이 지나가는 게 간지럽고 꺼림칙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편의점은 무사히 영업 중이었다. 
 
“아가씨! 안 오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게.”
 
점장의 말에 시간을 보니 근무 시작 시간 삼분 전이었다. 헐레벌떡 바지를 갈아입고 신발을 바꿔 신고 조끼를 꿰어 입고 나와 카운터 앞에 서자 점장은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았다. 아무리 시급 받고 하는 일이라도 여덟시 땡 치고서야 일 시작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늘처럼 옷 갈아입을 일 있고 하면 더 일찍 왔어야 한다, 더군다나 첫 출근이어서 일할 것보다 배울 것이 많은데 시간 딱 맞춰 와버리면 어쩌란 말이냐…… 좀더 일찍 오는 것이 좋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크게 잘못한 것도 없이 출근하자마자 혼만 나는 것 같아서 주눅이 들었다. 
 
점장은 몇시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귀가 따가울 만큼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출근하고 한시간쯤 뒤면 유제품과 아이스크림류가 입고된다. 밤 열두시가 되면 그날의 현금 매출을 금고에 넣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더라도 손님이 들어오면 일단 내려놓고 카운터로 돌아갈 것. 새벽 두시에 김밥, 샌드위치류가 입고된다. 받아서 검수기로 찍고 매대에 진열해야 한다. 선입선출이라고, 유통기한이 빠른 것이 먼저 나가는 게 원칙이니 오늘 받은 제품은 매대 가장 안쪽으로 가게 넣어야 한다. 폐기 제품은, 원래 그러면 안 되지만, 가져가서 먹어도 눈감아주겠다. 유통기한 한두시간 지난 삼각김밥 같은 건 팔지는 못하지만 먹는다고 탈이 나지도 않는다. 찝찝하면 버리고 괜찮으면 먹어도 된다. 이것도 아까워서 자기가 가져가려고 싸서 냉장고 뒤쪽에 두라고 하는 점장들 많다. 나 같은 사람이 별로 없다. 냉장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다른 매대 재고 보충은 낮에 내가 할 테지만, 음료수는 좀 채워뒀으면 한다. 아침 여섯시쯤 쓱 봐서 예를 들어 콜라가, 알로에주스가 좀 비어보인다 싶으면 줄을 세워주란 얘기다. 
 
네. 아, 네. 네네. 넵. 알겠습니다. 넵!
 
마지막으로 화장실 사용법을 배웠다. 왼쪽으로 돌아가서 반층 올라가면 같은 건물 노래방과 함께 쓰는 화장실이 있는데 평소에는 잠겨 있고 열쇠는 여기 있고 휴지는 내부에 있는데 세면대가 없어서 손은 스탭룸에서 씻어야 하고…… 뭐 마려운 걸 도로 빨아들일 수야 없겠지만 웬만하면 손님이 적은 두시에서 세시 사이에 다녀왔으면 한다고 점장은 귀띔했다.
 
막연히 생각하기로는 우산이 많이 팔릴 것 같았지만, 오히려 우산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요즘처럼 비가 내내 오는 때에는 모두들 집을 나설 때 이미 우산을 들고 있을 테니 집 앞에 다 와서 갑자기 고장 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편의점에 들러 일부러 우산을 살 일도 없을 듯했다. 일단 비 오는 주말 밤이어서 밖에 나다니는 사람도 없겠거니 했는데 묘하게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


 
두시 무렵부터 점장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두시에서 세시 사이에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지, 그때 손님이 적다고. 점장이 직접 말로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이 무렵에 점장처럼 눈을 좀 붙여두어도 괜찮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점장이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보았다. 휴대폰 화면에 요즘의 이상기후에 대한 유튜브 영상이 떠 있었고, 졸고 있는 점장의 손 안에서 음소거 된 상태로 계속 재생 중이었다. 드문드문 뜨는 자막 내용에 따르면 전문가들도 지금 내리는 긴 비에 대한 뚜렷한 소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이미 시작된 이상 기후, 기후 재난 때문. 평균 기온 변화와 빙하 후퇴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 정말 그럴까……? 
 
그 의견이 틀리다고 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내게는 다른 의심이 있었다. 어쩌면 이 날씨와 시간의 마법소녀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한동안 내 주변에서 일어난 잡스러운 변화들을 시간의 마법소녀 탓으로 돌렸던 건 그냥 내 마음이 좁아서였지만, 이 날씨야말로 분명 시간의 마법소녀의 의지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는. 
 
점장의 휴대폰에서 재생되던 영상이 끝났다. 자동재생 추천으로 뜬 다음 영상은 조금 이상했다. 평범하게 생긴,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나이도 잘 짐작되지 않는 어떤 여자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든 채 그냥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뭐라뭐라 말하고 있을 뿐이고, 영상 길이가 이분을 조금 넘는 정도인데, 조회수가 엄청나게 높았다. 뭐 때문에 그렇게 조회수가 높은 거지?
 
그게 이상기후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방금 나오던 내용과 연관 동영상으로 나오지? 
 
이 의문이 곧장 위화감으로 이어졌다. 그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게 해달라고 하려고 어깨에 손을 얹었더니 점장은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어어, 내가 살짝 졸았네.”
 
점장은 침이 흐르지도 않은 입가를 허둥지둥 닦으며 민망해했다.
 
“나 아침에 다시 올 테니까, 매장 청소랑 자잘한 거는 이따 또 배우자? 뭐 모르는 거 있으면 전화하고.”
 
점장은 유니폼 조끼를 벗어들고 분주히 스탭룸으로 갔다가 몇초 지나지도 않아 가방을 챙겨 나오더니 내 인사도 받지 않고 떠났다. 순간적으로 점장의 퇴근 기세에 압도되었다가, 조금 후에야 다시 문제의 영상을 떠올렸다. 뭐라고 검색해야 나오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인터넷 어플을 켜자마자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이미 ‘시간의 마법소녀’가 떠올라 있었다.
 
어렵지 않게 그 영상을 다시 찾아 이번에는 소리와 함께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미래라고 합니다.”
 
얼굴만 보았을 때에는 열일곱살이라고 해도 스물다섯살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할 법한 느낌이었는데 목소리는 확실히 소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와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말투가 묘한 부조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쩜 이름도 미래람? 시간의 마법소녀로 태어난 사람답게. 
 
“저는 가정폭력 생존자입니다. 이런 단어만으로 저를 정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우선 드리고 싶은 소개는 이렇습니다.” 
 
장미꽃을 들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일까? 나는 휴대폰을 바짝 당겨 들여다보았다. 이미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또한 최근 알 수 없는 계기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실 법한 개념으로 표현하면, 마법소녀로 각성한 듯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마법소녀 연대체인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에서 알려주신 바에 따르면, 저는 시간의 마법소녀라고 합니다.”
 
이 때문일까? 이 영상의 조회수가 이렇게나 높은 까닭은.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소녀가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 영상이어서? 
 
“전마협에서는 마법소녀가 된 저에게 기후재난으로 인한 세계멸망을 저지하자는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시간의 마법소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말입니다. 막 마법소녀로 각성한 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신 것에는 감사드리지만, 저는 그 뜻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한민국을 넘어 모든 지구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아로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시간의 마법소녀. 우리 편이 아니라면 무서운 사람. 
 
“저는 지구에 인류의 존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래는 이렇게 말한 후에 말을 잠시 멈추었다. 
 
“이 생각은 최초에는 저의 사적인 고통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큰 차원에서도 저의 의견이 옳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지구인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고 이 행성에도 해를 끼칩니다. 저는 저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 힘이 주어진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힘을 사용하여 보다 빠른 인류 멸망을 이루고자 합니다. 아무리 마법소녀라 하더라도 그런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시간의 마법소녀라는 것 자체를 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건 무슨 뜻이지? 나는 이미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상 하단의 슬라이더를 앞으로 돌렸다가 오초씩 건너뛰며 다시 보았다. 정확히 똑같은 내용의 영상이 반복되었다. 아까 보다 만 지점에 다다르자 이미래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닌 힘을 이해하신다면 이 계획의 실행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인류가 지금이라도 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마지막을 준비하기를 바라며 알립니다. 지금부터 기후 재난의 도래가 가속됩니다. 아이디어를 주신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에 감사드립니다.”
 
자기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듯한 그 짧은 영상의 끝에서 이미래는 쥐고 있던 장미꽃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래의 말과 표정에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영상이 시작될 때에는 생생한 꽃봉오리 상태였던 장미꽃이 이분 남짓한 이미래의 연설 시간 사이에 완전히 시들어 있었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장미꽃의 시간을 가속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힘이 자기에게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 ‘마법기사 레이어스’ 여는 노래 - 「꺼지지 않는 소망」
 
 
 
 


박서련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이 있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 플랫폼 던전(www.d5nz5n.com)의 운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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