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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에 가게 된 건

정나란
2021년 09월 14일



 
와온에 가게 된 건


 
 어딘가에 가는 일은 적어도 우연히 생겨나는 일이다. 설령 일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일의 시작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면 그것은 마치 우연성의 세계에 옥좌를 잡고 앉아 있는 순도 높은 우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의 약한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높은 곳에 앉은 빛나는 형상이 ‘그 일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단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면 필연인가. 순도 높은 우연은 그렇게 필연이 되어버리기로 하고 맞닿아 있나.
 
 와온에 가게 된 것은 순천 어느 곳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 우리가 앉아 있던 까페가 너무 시끄러워서였다. 시끄럽지 않은 까페를 찾아 나서긴 지쳤고 밖은 조용했지만 뜨거웠다. 나는 뜨겁고 조용한 밖으로 시선을 자주 뺏기고 있었다. 까페 안의 탁자와 의자들은 여러 색상으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그 또한 아주 큰 소음처럼 여겨졌다. 한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온통 힘이 빠져 기진맥진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지인에게 와온에 가자고 했다. 그곳에 가면 그늘 아래서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와온에 가자는 말을 나는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와온에는 두번 가보았을 뿐인데 자주 와온이나 갈까? 하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곳에 딱히 가지 않아도 와온을 부를 때마다 평온하고 따스한 바람이 드는 곳에 있는 것 같고 어쩐지 내가 순한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와온에 도착할 때까지 마치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고장 난 사람이 되었다 풀려난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때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와온에 가는 것 맞지? 이건 꼭 서울이나 대구에 가는 기분이야. 고속도로 같은데? 그러나 이내 어느 경계지점에서 도로는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고 갑자기 등장하는 낮은 언덕들과 무언가 규모가 어중간한 과수원과 작물이 심긴 밭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등장에 조금 놀랐지만 주의 깊게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소한 것에 크게 신경 쓰거나 자주 정신이 팔리는 자신을 속으로 나무라며 정신을 붙잡고 구불거리는 길을 돌고 돌았다. 
 
 와온에 가는 내내 와온이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와온이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오래 전, 와온이라는 이름에 매료되었지만 와온이라는 이름과 그 장소 사이의 간극, 내 기대와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거나 주저하고 있었다. 
 
 와온에 처음 간 것은 육년 전이었고 그때 바다는 멀었고 하늘도 구름도 멀었으며 사람들 또한 멀었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너무 멀구나. 그런 곳이 와온이구나. 한해 전 와온을 다시 찾았을 때 와온은 결코 멀지 않았다. 그곳은 나처럼 바다를 보겠다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칼라풍선이 가장 크게 눈에 띄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사로 촬영 중인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와온은 어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빠 보였다. 멀어질 틈이 없어 보였다. 움직이지 않아도 땀이 나고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부두에 앉아 내가 신은 자주색 그물 스타킹을 구경하고 바다와 그물 스타킹과 칼라 풍선과 부둣가를 달리는 아이들의 맹목적인 움직임과 안절부절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들의 팔을 붙잡는 어른들과 그물을 걷어 올리는 정박한 배 위, 어부들의 어색한 조합을 보다가 저녁나절 돌아왔다. 그날의 기억은 나는 그물 스타킹을 신었다,에 멈춰 있었고 그물 스타킹은 이제 올이 나가 더이상 신을 수 없게 되었다. 자주색 그물 스타킹을 신은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게 두번째 와온을 떠나올 때 나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어차피 와온은 이름 때문에 자주 떠올리는 것이니까 괜찮다고 달래어보았다. 맥이 풀리는 위안이었다. 
 
 어떤 장소에 굳이 찾아가는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도를 달리거나 외곽의 우연한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마주치는 아름다운 것들은 흔하지만 흔하다 말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해 보인다. 어쩜 너희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울 수 있니? 묻고 싶을 정도로 많다. 직립보행을 부여받아 그 중에 꼿꼿하게 서 있는 내가 초라하고 무용하게 느껴질 만큼 그것들은 아름다움으로 지천이다. 하지만 기어코 찾아가는 명소들은 차차 못 생겨지는 곳들이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부석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다녀오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그것은 한 장소에 대한 위안과 제의 같은 것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는 가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마음을 가져야 마지막이 될 방문을 실행할 수 있는지 아마도 그런 것들이 웅성웅성 마음 깊이에서 다투는 중인 것 같다. 그곳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기념하려 하고 그곳을 위안하려 하고 그렇게 되어버릴 것 같다. 대부분 그런 곳을 떠나올 땐 먹먹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들은 어쩌면 그곳과 상관없는 것일 테다. 
 
 지인과 와온에 도착해서 부둣가에 앉았다. 햇볕은 뜨겁고 바람은 소금기를 머금어 따가웠다. 폭이 넓은 치마는 바람에 아주 혼자 신이 나서 높이 오르고 가라앉길 반복했다. 그것이 보기 싫지 않았지만 그대로 그것을 두자면 거의 옷을 벗는 꼴이 될 것이었고 그렇다고 꼭 붙들고 있자니 그 또한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다를 보며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바다는 지쳐 보였고 바다는 외로워 보였고 바다는 정말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고 있는 것처럼 좋지 않아 보였다. 사람은 예상보다 적었고 (죄다 근처 까페에 몰려 있었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지친 감정을 바다를 보면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인과 나는 바닷가에 있는 아주 지저분한 정자에 앉았다.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바다를 보고 앉으려면 정자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정자 안은 먼지가 한눈에 보아도 켜켜이 수북했다. 바다를 등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입맛을 쩝 다시거나 씁쓸한 미소를 짓는, 아니면 점점 더 멀리 사라지고 있는 오래전의 바다를 생각했다. 어떤 곳에 들어설 때 그곳의 묵묵함은 어쩌면 그곳이 그간 살아낸 시간의 쌓임에서 오는 것일까. 잠시 머물다 가는 나는 서툴고 어리고 스쳐지나가는 지구인에 불과할 뿐.

 그런데 와온 어딘가에, 내 서운한 한조각쯤은 어쩌면 그곳이 영영 다른 곳이 될 때까지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여러곳에 지금 갑작스레 호명하고 싶어지는 당신과 함께 있던 아니면 당신이 없던 그때의 나를 조금씩 남겨두고 왔다. 방에 혼자 누워 오래전의 장소를 떠올린다. 나는 그곳에 있을 때 사실 그곳이 아닌 모든 다른 곳만을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정나란
2019년 『쓺』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굉음』 『흙에 도달하는 것들, 가장 가까이 있는 말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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