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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11회)

박서련
2021년 09월 14일




 
11. 더이상 약해지지 않아*
 
 
 
 
 
니들은 이걸 믿냐, 조작 영상이다, 꽃 한송이를 고속 촬영해서 CG로 합성한 게 틀림없다, 이게 조작이면 왜 이렇게 조회수가 높냐, 조회수가 높은 거 자체가 니들이 다 호구라는 증거다.
 
댓글난에서 벌어진 무의미한 설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영상을 껐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각성했음을 미리 알던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로서 (그걸 나의 행운으로 여겨야 할지 불운으로 여겨야 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미래가 시간의 마법소녀라는 주장을 의심할 수 없었다. 
 
또한 내가 아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추정하건대, 이미래가 이 영상을 이런 식으로 찍은 것은 그가 시간의 마법소녀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관용이었다. 각성 즉시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이미래라면, 더 잔인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가령 사람을 하나 세워두고 그 사람의 시간을 초고속으로 흐르게 해서 노화에서 사망까지 보여준다든지, 돌멩이를 던진 후 가속해서 그 사람의 몸을 꿰뚫어버린다든지…… (그런데 이런 방식이라면 스너프필름이나 다름없어서 유튜브에서 영상을 삭제해버렸을지도?) 
 
애초에 인류의 종말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예의 바른 자기소개 따위는 생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의 시간을 멈춰 자전을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간단히 끝낼 수도 있는 사람인 걸. 내리는 빗줄기를 가속해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릴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걸.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 아이디어를 준 것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이다’라는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협회의 입장이 곤란하게 됐겠구나. 오금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로아가 걱정되어서. 전화를 걸어볼까. 그러기에는 늦은 시간. 그렇지만 대책 회의 같은 걸 하느라 깨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내 생각이고 오히려 잠을 깨우는 거라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겠지.
 
마음이 괜히 분주해져서 서 있기도 곤란하고 앉아 있기도 불편했다. 매장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만약 이런 곳에서 버틴다면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 같은 게 될 수 있을까…… 상상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점장이 와서는 이왕 안 자고 있을 거 청소라도 하지 그랬냐고 야단을 쳤다.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가, 정확히 말하면 나빠야 할 것 같은데 나빠지지가 않았다. 곧 우리 모두 끝장이 나게 생겼는데 편의점 청소 같은 게 대수일까요…… 그보다 청소는 이따 배우자면서요, 뭘 사용해서 어찌어찌 하라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잖아요.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밤을 새워서인지 이미래 영상을 본 탓인지 말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세상 쓸모없게 느껴지는 편의점 청소를 마치고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삼각김밥을 받아 나왔다. 아침 여덟시인데도 비 때문에 퇴근길은 어두컴컴했다. 일하다 문득문득 집에 빗물이 얼마나 들이쳤을지를 걱정하기도 했는데, 퇴근해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직은 걸레로 수습 가능한 정도였다. 
 
씻고 자리에 누웠지만 피곤하기만 했지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일단 오늘 밤에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잠은 자 두는 게 좋을 텐데. 뒤척거리다 휴대폰을 보면 이삼십분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 있어서 어리둥절했다.
 
신경쓰이게시리 ‘시간의 마법소녀’는 계속 인기 검색어 자리에 있었다. 보고 나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클릭해서 관련 뉴스를 확인하게 되었다. 전문가 소견에 따르면 이미래의 영상은 합성 등의 조작이 일절 없음. ‘마법소녀 사유화에 반대하는 모임’등 국내 마법소녀 관련 단체에서 일제 성명문 발표. 세계 기후위기 감시기구에서 시간의 마법소녀에 대항하여 연합 전선 펼칠 가능성…… 
 
아무리 마법소녀라지만 여자애 하나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선포하겠다는 의미인가? 벌떡 일어나서 액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도로 누웠다. 당장은 잠을 자야 한다고. 제발. 
 
열한시가 되자 포털사이트 검색창 바로 아래에 LIVE● 표시가 붉게 점등되었다. 타이틀을 보니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 의장 기자회견. 
 
발표대 옆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연리지 의장님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의장님은 자세를 바로하고 발표대에 서서 마이크를 조금 높게 조정한 후에 차분한 목소리로 회견문을 읽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부에서는 두가지 질의에 답해줄 것을 요구하며 이 자리를 주선해주었습니다만, 이에 답하면서 더욱 중요한 사안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길지 않은 이야기이니 부디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첫째, 현재 크게 이목을 끌며 국민적 불안을 상승시키고 있는 시간의 마법소녀 영상 진위 여부는.” 
 
의장님은 협회 차원에서 시간의 마법소녀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영상의 주인공 이미래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답변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각지에서 마법소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나 이번처럼 본인이 마법소녀임을 밝힌 사례는 매우 드물었기에 국민적 동요가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다음 두번째 질문, 시간의 마법소녀가 실재할 경우 영상 내용처럼 위협적일 것인가? 질문들의 의도는 시간의 마법소녀로 인해 빚어진 전국적인 불안의 실체를 확인하고 해소해달라는 것인 듯했다. 의장님은 목메어 하듯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가 몸담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은 국내 마법소녀 연대체 중 가장 대표성이 있는 단체이며, 전마협에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삼백여명의 마법소녀 중 과반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저 혼자 서 있으나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구성원이 시간의 마법소녀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실제로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에 구성원 머릿수로 대답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이렇게 쪽수가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지만,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전부 모여야 할 만큼 상대의 힘이 강력하다는 뜻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시간의 마법소녀와 대적해야 하는 것만은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나는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이보다 더욱 중대한 사안이란, 이 순간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안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마법소녀들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의장님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계속 말했다.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져서 앞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 텐데도.
 
“협회 안팎의 모든 마법소녀들이 힘을 합쳐 시간의 마법소녀를 저지하면 그때부터 기후재난이 안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이미 시한폭탄의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는데, 그 시간을 앞당기는 존재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 시간의 마법소녀를 저지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최선을 다해 시간의 마법소녀를 ‘설득’하는 것은 저희의 몫입니다만, 성패를 떠나 국민 여러분께서 이 사태를 최후의 경고로 받아들여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의장님의 발언이 끝났다. 질문을 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기자들의 뒤통수가 불쑥불쑥 카메라를 가렸고, 곧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다.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두방망이질 쳤다.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달라는 말은 시간의 마법소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성패를 떠나’라는 말은 반대의 의미로 느껴졌다. 만약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데 시간을 손가락 접었다 펴는 것처럼 제어하는 존재를 상대로 이기는 게 가능한가?
 
무엇보다 결국 마법소녀와 마법소녀가 서로 싸워야 한다는 점, 그건 무서운 것과도 불안한 것과도 구분되는 불쾌감을 주는 사실이었다.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면서도 나는 시간의 마법소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해도 어쨌든 나름의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였고, 의장님이 들었던 비유처럼 인간들이 원래 불을 당겨놓은 폭탄의 카운트다운을 빠르게 하는 것일 뿐, 최소한, 보다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식을 추구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시간의 마법소녀를, 이미래의 의지를 저지한다는 건, 여차하면 그 사람을 해쳐야만 한다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건 또한, 그 사람을 상대할 수많은 마법소녀들 역시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는 의미.
 
어떡하지……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했던 생각 때문이었을까, 깨어나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전마협. 시간의 마법소녀. 아로아. 이름과 단어들이 두서없이 머리를 스쳤고 그 와중에 내가 팔자 좋게 잠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나도 참 나구나 하고 코웃음을 피식 흘렸다. 
 
“낮잠 잔 거예요?”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로아가 쪼그려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도 아니었다. 막 깨어나 시야가 좁아서 몰랐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주변에는 아로아 말고도 사람이 꽤 많았다. 장소는 무려 텅 빈 8차선 도로 위였다. 그런 곳에서, 그런 상황에, 나는 자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 아니 지금 몇시…… 뭐죠, 이게 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리다 의장님이 커다란 무선청소기를 기타리스트처럼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협회원들을 소환하고 계신 거예요. 의장님이 마구를 만들어준 마법소녀들을요.”
 
아, 마구…… 잠옷 삼아 입는 낡은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보자 카드가 손에 잡혔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찢으며 마법소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마침맞게 낯익은 얼굴이 나와 아로아 앞의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어!”
 
최희진도 나를 알아보고 반가움과 불쾌함이 묘하게 섞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씨, 또 견학이야? 민간인 좀 달고 다니지 말자고 했잖아, 내가.”
 
아로아가 한마디 해주려는 듯 벌떡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었는데, 내가 선수를 쳤다.
 
“견학 아니에요. 마구 때문에 온 거예요.”
 
“언니, 마구 있어?”
 
나는 조금 우쭐해하면서 카드를 꺼내 최희진에게 보여주었다.  
 
“능력이 뭔데?”
 
“아직 각성을 못했어요.”
 
“에이씨, 민간인 맞구만. 걸리적거리지 말고 구석으로 가 있어.”
 
어차피 자기가 다른 쪽으로 갈 거면서 최희진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최희진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아로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에요? 지금 무슨 상황이고요?”
 
“여기는 전마협 훈련 전용 아공간(亞空間)이에요. 예전에 희진씨가 만들어둔 거고요. 혹시 오늘 기자회견 봤어요?”
 
“네.”
 
그걸 보다가 잤거든요.
 
“시간의 마법소녀를 이쪽으로 데려와서 제압하는 작전을 펼칠 거예요.”
 
아로아는 누가 들을세라 염려라도 되는 듯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주목!”
 
의장님의 목소리였다. 의장님은 주머니에 청소기를 넣고 쥘부채를 두개 꺼내 펼치더니 땅바닥을 향해 날개짓하듯 부쳤다. 그러자 의장님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우와, 했는데, 의장님이 그러는 걸 처음 본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멋지죠? 마법소녀 워크숍 중에 비행 훈련이 있어요. 나중에 들어봐요. 능력을 최적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기도 하거든요.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날아오를 수 있을지 창의적으로 떠올려야 하니까요.”
 
“아로아도 날 수 있어요?”
 
“제 경우엔 어떻게 해야 죽지 않고 낙하할 수 있을까에 가깝긴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 가능은 하죠.”
 
의장님은 주변을 둘러싼 마법소녀들 누구나 볼 수 있는 높이가 될 때까지 부채질을 계속했다.
 
“시간의 마법소녀 생포 작전의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다솜씨,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는 마법소녀를 제 쪽으로.”
 
작전은 대략 이랬다. 예언의 마법소녀인 아로아가 시간의 마법소녀의 현재 소재를 파악한다. 마음의 마법소녀(라는 사람은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하는 듯했다) 배진희가 즉시 전마협 모든 회원들에게 이 정보를 고지한다. 공간의 마법소녀 최희진이 시간의 마법소녀의 등 뒤로 통로를 만들고 향기의 마법소녀 차민화가 마취향으로 시간의 마법소녀를 제압한다. 
 
제일 먼저 이름을 불린 게 하필 아로아여서, 아로아는 유다솜이 염동력의 마법소녀라고 귀띔해주다 말고 둥실 떠올랐다. 
 
현장 투입조로 최희진, 차민화, 유다솜이 들어가고, 아공간으로 시간의 마법소녀를 데려온 다음에는 의장님 본인이 나서서 재협상을 시도하는 작전.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최악을 염두에 두고, 협회원 전원 호출 및 전 세계 마법소녀들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 최희진이 한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그러면 왜 생포 작전인데요? 처음부터 힘 못 쓰게 죽여버리는 게 낫지 않나?”
 
“그 가공할 힘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시간의 마법소녀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글쎄, 이미래가 과연 순순히 힘을 빌려줄까. 그렇지만 시간의 마법소녀를 죽여버려야 한다는 난폭한 의견에도 마음이 기울지는 않았다. 최희진은 왜 저럴까? 공간의 힘도 충분히 강력한데, 자기보다 더 대단한 시간의 힘을 지닌 사람이어서 이미래가 미운 걸까? 
 
의장님은 다시 모든 마법소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명심하세요. 시간의 마법소녀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다른 마법소녀들의 힘을 알기 전인 지금, 단 한번의 기회밖에는 없습니다.”
 
 
 
 


* ‘마법소녀 리나 Try’ 여는 노래 - 「Breeze」
 
 
 
 


박서련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이 있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 플랫폼 던전(www.d5nz5n.com)의 운영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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