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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본 문단

이진혁
2017년 02월 21일
문단–(편집)–문학


국어교사가 제 친구의 귀싸대기를 후릴 때 저는 숨죽였습니다. 한대, 두대, 열대, 열한대. 정확하게 몇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는 꽤 긴 시간동안 뺨따귀 위로 ‘가드 한번 못 올리고’ 맞고 있었습니다. 빼빼 마른 친구여서 걱정했지만 볼이 터지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그 국어교사에게는 별명이 없었습니다. 독사, 불독, 깡패…… 따귀를 한번에 수십차례 올려붙이는 교사라면 으레 하나쯤 있을 법도 했는데. 별명이 없어서인지 졸업 후에도 그는 좀처럼 우리 입길에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친구도 그 교사를 미워했습니다. 그는 문학을 가르쳤고 우리는 그 수업시간마다 딴짓을 했습니다. 그게 열여덟살 때였습니다.  
 
친구가 ‘문창과’에 진학할 거라고 했을 때 놀랐습니다. 일단은 그런 학과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고(나중에 제가 ‘인류학’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그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문학수업을 1년에 10분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는 국어시험에서 18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 문제를 실수로 틀려 15점을 받았습니다). 등단을 한 다음 시인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전 등단이 뭔지 몰랐으나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친구가 어떤 시를 쓰는지에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쓴 걸 보여달라고 했고, 친구는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솔직한 느낌’은 ‘형식 자유시, 주제 자식을 잃은 슬픔, 은유법 영탄법 밑줄 쫙’보다는 즐거웠습니다. 그의 시를 ‘솔직하게 읽어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친구는 등단해서 시인이 되었고, 저는 직업 편집자가 되었으니 우린 꽤 성공적인 동행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모든 게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원하던 문창과에 진학한 친구가 처음 분통을 터뜨린 대상은 ‘문단’이었습니다. 저는 문단이 뭔지 궁금하지 않았으나, 공감을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인맥, 좌지우지, 독점 같은 단어를 써가며 문단이 뭔지 설명했습니다. 듣고 난 다음 저는 ‘배드민턴 동호회 같은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문단의 ‘단(壇)’은 ‘제단’ ‘단상’ ‘강단’ 할 때 단과 같은 한자를 쓴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안과 밖, 그리고 높낮이를 전제한 단어입니다. 그 단상 위에서 보면 안과 밖은 한끝 차이겠지만 밖에서 보면 경계는 명확하고, 소외는 깊습니다. 당시 친구에게 문단은 막막하고도 배타적인 벽이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평소 좋아하던 소설가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주 잘나가는 소설가였는데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문인은 괴팍하고 독특하고 무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을 깨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는 한국어에 대한 애정, 소설과 역사 등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문득, “한국 문단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소설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었습니다. 그는 “문단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학에 있지요”라는 아주 멋진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친구에게 전해줬습니다. “있지, 나 최근에, OOO 인터뷰했는데, 그 사람 좋더라? 근데 내가 한국 문단 문제 많지 않냐고 물었는데, 문단이 아니라 문학이 문제래.” 친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답했습니다. “그런 게 문단의 문제야.” 그게 스물두살 때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 문단은 너무나 먼 세계였고, 문단도 문학도 나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은 좀 했던 것 같습니다. 문단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했던 때는 친구가 등단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름 난 문예지로 등단한 친구의 시상식은 화려했습니다. 뒤풀이는 늦게까지 이어졌고, 내가 시인이 된 것도 아닌데도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뒤풀이가 한창일 무렵, 그러니까 새벽 두시쯤 우리 앞에 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시인 아무개라고 소개한 그는 몹시 언짢아보였습니다. 그가 언짢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고, 나는 빨리 그 남자가 사라진 다음 이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 몇살이냐?” 별로 대수롭지 않은 신상털기로 시작한 그의 진상짓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시를 몇년이나 썼지?” “어느 학교에 다녀?” “선생님이 누구지?” “시를 누가 많이 봐줬어?” 그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자르고 붙여 제 멋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시를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 시인이 몇명인 줄 알아? 등단하니까 대단한 것 같으냐, 지도교수가 누구인데 오늘 모셔오지도 않았니, 엉덩이가 그렇게 무거워서 어떡하니, 오늘 같은 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눈도장이라도 찍어야지, 너같이 버릇없는 애들이 문단을 망치는 거야. (제가 느낀 바를 제 멋대로 요약하다보니 다소간 원래 표현보다 거칠어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새끼 저 새끼를 입에 올리지야 않았겠지요, 설마.)
 
우리는 숙연한 척을 했습니다. 막 시인이 된 친구의 미래를 저주하는 단어들을 듣고만 있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귀싸대기를 맞고 있을 때도 가만히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왠지 친구의 지도교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염치도 모르고 차지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단에는 안팎만 있는 게 아니라, 문단 안에도 수없이 많은 안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마터면 내 친구에게 이제 어엿한 시인이 되었으니 “글쓰기 말고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할 뻔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문단은 넓은 단상 같은 게 아니라 피라미드 같은 건가 생각했습니다. 자꾸 안으로 들어가야, 자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가 등장하기 한참 전 이야기인데, 그때의 진상 시인이 성폭력 범죄 문인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단 문제에 대해 겨우 10년 남짓 들어왔지만, 문학에도 문단에도 큰 뜻을 품어본 적 없는 제가 알 정도면 사실 문단 문제는 훨씬 오래된 일 같습니다. 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사라진 문인도 많겠지요. 그렇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일이 더러워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요. 
 
*
 
편집자가 되고 나서는 좀더 자세히 문단이 무엇인지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집자는 문단 안에서 보면 문단 밖에 있고, 문단 밖에서 보면 문단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 경계에 서 있는 순간에는, 문단이 단상으로도 피라미드로도 보이지 않고, 문단은, 마치, 저녁식사로 보입니다.
 
성폭력 문제로 문단의 자성 분위기가 높던 시기에 겪은 일입니다. 터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경악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일부 변태 같은 문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단 내 성폭력’으로 불린 데는 분명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꼭 문단 내 문제이기만 하겠느냐”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관점도 있었지만요. 
 
문단을 개혁해보자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됐습니다. 꼭 문단 개혁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때는’ 그런 토론이 자연스럽게 뒤따랐습니다. 회의 중 문학평론가 한명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나라도 등단 제도를 없애야 한다. 작가를 발굴하는 사람과, 작가를 비평하는 사람이 같은 현실이 비정상적인 권력을 낳는다. 우리도 미국처럼 편집자가 작가를 발굴하고, 비평가는 발굴된 작가를 비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른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그건 안 된다. 우리나라 편집자는 문학을 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좋은 작가를 선발하는 일은 비평적 작업이어야 하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 비평가다. 문단의 일부 문제로 비평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편집자가 비평가의 역할을 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 편집자는 너무 바빠서 문학을 읽을 틈이 없다. 잡무가 많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말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저는 문학을 보는 눈이 부족하고, 어떤 문학 작품이 좋은 이유를 정제된 언어로 설명할 능력도 부족합니다. 편집자가 신인을 선발하는 것은 더 나쁜 식으로 문단 권력이 변질될 우려가 있으며, 미국과 우리나라는 출판 풍토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가지, 끝내 마음에 걸리는 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편집자는 잡무가 많아서 문학을 읽을 틈이 없다. 
 
그 발언이 나올 때 저는 회의가 끝나고 뒤풀이를 어디서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잡무’였으니까요. 저는 늘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스무명 정도가 들어갈 정도로 넓은 곳, 가서 기다리는 일 없도록 예약이 가능한 곳, 지난번 회의 뒤풀이 장소와 다른 곳, 시끄럽지 않은 곳 분위기 있는 곳 너무 저렴해 보이지 않지만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게 1인당 3만원을 넘지 않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단을 떠올릴 때마다 어디서 저녁을 먹는 게 좋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선배는 “편집자는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편집자가 맡은 역할은 무언가의 사이를 조율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책 한권을 만드는 일은 작가와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인쇄소와 독자를 잘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 사이를 잘 매개해서 책이 ‘스무스하게’ 출간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늘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친구의 시를 읽어온 10년의 동행도 편집이 될 수 있겠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지금 저는 끝내주는 뒤풀이 장소를 잡음으로써, 문학과 문단을 끝내주게 잘 연결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 글을 너무 힘들게 쓰고 있고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그러다 보니 마감기한을 넘겨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독촉 전화를 건 모든 분께 죄송합니다), 대체로 그 고민은 너무 많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편집자 주제에’ 문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례가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검열하는 이 실체 없는 압력이 문단은 아닐까요.  
 
편집이란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멋모르던 시절, 저는 한 단편소설에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나온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편집자가 작가에게 그런 지적을 하는 것은 오버”라는 ‘지적’을 역으로 당해야 했습니다. 문학 작품에 쓰인 이상 그 단어를 쓴 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만약 그게 문제가 있다면 그 비판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시에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등장했다면, 저는 그에게 “그것은 잘못된 단어”라고 말했을 겁니다. 친구가, 혹은 친구의 문학작품이 비난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는 제 이야기를 듣고 비장애인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그 행 전체를 다른 내용으로 새로 쓰거나 했을 겁니다. 그런 동행이 편집자를 직업으로 택한 지금 더 힘들어진 것은 왜인지 오래 묻게 됩니다. 
 
얼른 글을 마무리짓고 친구에게 저녁이나 한끼 먹자고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좁아터지고 시끄럽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 한참 줄을 서서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예전에 너 귀싸대기 맞은 날 있잖아, 그때 그 선생 이름이 뭐였지? 그리고 있지, 내가 최근에 문단에 대해 좀 생각해봤는데……” 하고요.



이진혁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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