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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 거룩하게, 야하게 (2)

김태권
2017년 03월 03일
(이전 글에서 계속)


 ‘숨 막히는 뒤태’가 칼침을 불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베누스」
 
허리가 잘록한 여인. 알몸으로 드러누웠다. 앞모습은 우리 쪽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거울을 보며 넋이 빠진 것 같다. 자기 눈에도 아름답나보다. 서양미술에서 벌거벗은 채 거울을 보는 여인이 나오면, 사랑의 여신 베누스(Venus)일 확률이 높다.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Aphrodite)가 그다. 여기처럼 날개 달린 꼬마와 함께 나오면 거의 100퍼센트다. 꼬마의 정체는 천사가 아니라 쿠피도(Cupido). 우리가 ‘큐피드의 화살’이라 할 때 큐피드(Cupid)가 바로 이 친구다. 작가는 에스파냐 바로크의 대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서양문화에서 베누스는 여성을 대표한다. 여성을 나타내는 ‘♀’라는 기호는 원래 베누스의 상징이다. 손거울 모양이라나. 점성술 등에서 하늘에 반짝반짝하는 별 금성을 나타낼 때도 ♀라는 기호를 쓴다. 서양에서 금성을 베누스라고 하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하는 말은, 외계인의 지구 침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마르스(Mars) 같은 남성과 베누스 같은 여성, 즉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라는 의미. (남자 기호 ♂는 둥근 방패와 뾰족한 창, 즉 전쟁의 신 마르스의 상징. 여성의 상징은 왜 하필 거울인가. 여성은 제 모습에 반하는 허영심 가득한 존재란 말인가. 이 역시 고민해볼 문제다.)
 
베누스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남성적이다. 어려운 말로 ‘타자화됐다’고 한다. 신화 속 베누스는 사랑의 여신. 육체적 사랑도 베누스의 몫. 영어로 성병은 ‘버니리얼 디지즈(venereal disease)’. 철자를 잘 보자. ‘버니리얼’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베누스. 베누스는 거룩한 여신인 동시에 성적으로 야한 존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다.
 
유명한 그림이다. 다음 사건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메리 리처드슨(Mary Richardson)이라는 사람이 1914년에 미술관에 쳐들어와 고기 써는 칼로 이 그림을 퍽퍽 찍었다. 다행히 감쪽같이 복원했지만, 끔찍한 범죄였다. 리처드슨이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나중에는 더욱 정신줄을 놓고 파시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단다, 그것도 영국 본토에서!) 그래도 리처드슨이 이런 짓을 저지른 명분을 들어보자. “그림 속 여인의 뒤태에 넋이 나가 걸근대는 남성들의 시선이 싫었다.” 훗날 그가 밝힌 범행동기였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의 시선은, 칼침을 맞아도 싸다는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미움받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남자로서 나 역시 뜨끔한 마음이다.
 
 
판타지의 대상, 신비한 타자
 
폴 고갱 「죽은 이의 유령이 본다」

벌거벗은 소녀 곁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할머니가 아니라 저승사자일지도 모른다. 소녀는 무얼 보는 걸까. 관객을? 아니면 우리 어깨 너머로 무언가를? 우리 세계 너머의 신비한 저승세계라도 보고 있을까?
 
이 그림의 제목은 ‘죽은 이의 유령이 본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작품. 여성이 유령을 보는지 유령이 여성을 보는지는 불분명하다. 고갱의 작품을 보통 후기인상주의라고 부른다. 이름 때문에 헛갈리기 쉬운데, 인상주의와는 다른 사조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인상주의가 과학적인 그림을 추구한 반면 후기인상주의는 과학적인 합리성에 반대하고, 이성의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신비한 것을 좋아했다. 그림이 안 팔려 생활이 어려웠던 고갱은 물가가 싼 식민지 타히티(Tahiti)로 이주한 후, ‘자기야말로 그 신비를 찾아 머나먼 섬나라까지 간 참된 예술가’라고 선전했다.
 
문제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신비한 세계를 보는 여신 또는 무녀 같다. 그런데 그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소녀를, 벌거벗은 채 엎드린 모습으로 그렸다. 여신처럼 넘보지 못할 존재이자 또한 성적으로 만만한 존재. 또 나왔다, 남성의 판타지.
 
이런 점도 생각해보자. 소녀는 어느 모로 봐도 고갱보다 사회적 약자다. 타히티는 그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유색인종에 나이도 까마득히 어리고 심지어 여성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아저씨 화가가 식민지 조선의 시골을 찾아가 벌거벗고 웅크린 조선소녀를 그려놓고 “원시적 신비”라고 주장한다면 우리 기분이 어떨까. 그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편할까? 타자화할 대상을 찾아 여기까지 찾아왔냐고 화가 날 것 같다.
 
고갱의 시선은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심지어 같은 시대 프랑스 남성 화가도 불편해했다. “고갱이 타히티 사람들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갱의 친구 피사로(Pissarro)도 이렇게 투덜댔다나. 고갱은 위대한 예술가지만, 여성, 특히 식민지 여성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그의 시선은 두고두고 욕을 먹는 중이다.
 
 
딸을 보는 엄마의 시선
 
베르트 모리조 「딸과 유모」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의 시선에 대해 알아봤다. 여성을 보는 여성의 시선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대표 작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가 그린 「딸과 유모」. 이 그림에 드러난 인상주의의 특징은? 첫째, 광선이다. 화가는 빛에 관심이 많다. 두 사람이 창을 등졌다. 하지만 창으로 들어온 빛이 실내에 반사되어 다시 사람들 얼굴을 밝게 물들인다. 일상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다. 아늑하다. 둘째, 붓 자국이다. 붓이 빠르게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화가의 능숙한 붓놀림이 상상 가능하다. 셋째, 주제가 생활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거창한 사건 사고가 아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스냅사진 같달까. 화가면서 가정주부였던 모리조는 당시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일상을, 딸 쥘리 마네(Julie Manet)의 성장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인상주의에 대해 더 알아보자. 빛, 붓질, 순간포착. 또하나의 특징은 화가들끼리 그룹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인상주의자가 하는 일이다.) 나라에서 열어주는 전시회 대신 마음 맞는 젊은 화가들끼리 모여 ‘인상주의자’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열었다. 처음에 실패하고 잊힐 수도 있었는데, 한 세대 위의 유명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가 함께해준 덕분에 전시회는 성공이었다. 마네는 젊은 친구들과 그림이 달랐는데도 말이다. (마네가 인상주의로 묶이지는 않지만 미술사 책에 인상주의 작가들과 늘 함께 나오는 이유다.) 그러고 보면 젊은 화가들 각각도 그림이 달랐다. 이렇게 개성이 제각각인 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데에는 베르트 모리조의 공이 크다. 모리조는 마네 동생의 부인이면서, 젊은 화가들과도 친했고, 스스로도 훌륭한 화가였다.
 
그러나 베르트 모리조의 이름은 남성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마네 그림의 모델로, 또는 마네와 ‘썸을 탔을지도 모르는 여성’ 정도로만 알려진 면도 있다. 세상이 남자만 기억해서 그럴 것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또하나의 포인트. 세상은 왜 남자가 중심인 것처럼 돌아갈까. 세계 위인전을 꺼내놓고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을 한번 따져보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기 자신을 보는 여성의 시선
 
케테 콜비츠 「자화상」(1924)
 
여성이 여성을 보는 시선, 이번에는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여성화가라면 두 사람이 생각난다.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와 프리다 칼로(Frida Khalo). 칼로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림에 드러냈다. 그림 속 자기 몸통을 열어 교통사고로 부러진 척추를 보여주기도 하고,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사슴의 몸통에 자기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쳤다. 케테 콜비츠는 다르다. 자기 모습을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렇다고 콜비츠가 겪은 고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콜비츠의 미술사적 위치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표현주의라고도 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보기도 한다. (콜비츠에 영향받은 좌파 화가가 많기는 많다.) 정작 콜비츠는 이념에 매인 사람은 아니었다. 남편 카를 콜비츠(Karl Kollwitz)는 가난한 사람을 진료하던 의사. 케테 콜비츠는 병원을 찾은 노동자 가족을 그리며 자연스럽게 자기 작품세계를 열었다. 삶에서 우러난 작품을 남긴 것이다.
 
1924년의 「자화상」. 평생에 걸쳐 수많은 자화상을 그린 콜비츠, 남성 가운데 비슷한 화가라면 렘브란트(Rembrandt)가 있다. 두 사람의 자화상은 자주 비교된다. 나는 여기서 두 사람의 자화상을 보는 ‘시선’을 비교하고 싶다. 콜비츠의 「자화상」은 종종 ‘여류화가의 자화상’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런데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볼 때 우리는 한 ‘인간’에 대해 생각하지 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콜비츠의 「자화상」을 볼 때 역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여류화가’라는 말도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다.)
 
남자가 남자를 만날 때, 남자는 그 남자를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많은 이들이 그 여자를 ‘여자’라고 한다. 한술 더 떠, 숭배의 대상으로 보거나 성적으로 얕잡아보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냥 같은 ‘인간’으로 보면 안될까? 어떤 여성 디자이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여자를 일 때문에 만나면서도 잠재적인 연애상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 여성은 남성의 걸근대는 시선을 받아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긴 하겠지만, 차차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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