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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 가난하지 않을 권리: 궁핍으로부터의 자유(1)

김태권
2017년 03월 07일
‘유민도’, 옛날 중국의 다큐멘터리
 
주신 「유민도」(부분)
 
동양미술에서 인물화란? 서양미술 전통처럼 인물화가 많지는 않다. 아주 옛날에는 많이 그렸다. 북송시대만 해도 도시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통째로 그려놓은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같은 걸작이 있었다. 하지만 남송 이후로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 확 줄었다. 그래도 가끔 이런 특이한 작품이 있다. 강렬한 붓으로 가난한 사람을 그렸다. 그냥 가난한 정도가 아니다. 못 먹고 못 입어 정신까지 온전치 않은 모습이다. 보는 사람까지 슬프다.
 
무슨 사연이 있는 그림일까. 명나라 화가 주신(周臣)의 「유민도」다. 유민(流民)이란 유랑민,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떠도는 사람. 주신은 이런 이들을 연작으로 그렸다. 어떤 작품은 미국 클리블랜드(Cleveland) 미술관에, 어떤 작품은 호놀룰루(Honolulu) 미술관에 있다. 주신만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동양미술에는 옛날부터 ‘유민도’를 그리는 전통이 있었다.
 
중국 북송시대에 정협(鄭俠)이란 사람이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린다’고 임금한테 알리고 싶은데, 말로 하면 흘려들을까 걱정이었다. 가난에 찌들어 떠돌이가 된 ‘유민’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황제한테 올렸다. ‘그림 보고서’는 효과 만점이었다. 황제가 충격을 받고 정책을 바꾸었다고 하니까.
 
우리도 같은 전통이 있다. 조선 선조(宣祖) 시절, 전쟁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의 모습을 유민도로 그려 바쳤다고 한다. 정조(正祖) 때에는 암행어사로 나간 정약용(丁若鏞)이 그림 대신 시로. “옛날 정협의 「유민도」를 본받아/새로 시 한편을 지어 임금께 바친다.” 정약용의 시 「적성촌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요컨대 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해 글과 그림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셈. 임금이 보고 정신 차리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유민도의 전통.
 
 
누구를 위하여 그린 유민도인가
 
장자오허 「유민도」(부분)
 
이 작품은 20세기의 화가 장자오허(蔣兆和)가 그린 「유민도」. 가난으로 고통받는 인간 군상을 담았다. ‘유민도’라는 옛날 장르를 20세기에 그리다니, 동양미술사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다. 하지만 임금 보라고 그린 그림은 아니다. 20세기에는 임금이 없으니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부러 전통을 빌린 셈이다. 중국미술에서 전통의 계승과 극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옛날 유민도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백성이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임금 때문이다. 그러니 임금이 정치 똑바로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반면 장자오허의 그림은 어떤가. 이 사람들은 어째서 고통받는가. 중국정부의 잘못도 있으리라. 지방토호의 횡포나 잘못된 인습 따위도 이들이 가난한 이유다. 그러나 이들이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게 된 데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장자오허가 이 그림을 그린 때가 1943년, 중일전쟁 막바지였다. 20세기에 인류는 여러 문제를 겪었다.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는 까닭도 다양하다. 20세기의 유민도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담아야 한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유민도인가. 이 점도 문제다. 옛날에 백성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은 임금의 책임이었다. 좋은 임금이 되려면 (사실은 나쁜 임금으로 찍혀 목이 잘리지 않으려면) 가난한 백성을 보살펴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임금 없는 세상이 됐다. 이제 가난한 사람을 보살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유민도를 그려야 하나?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서 ‘사회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가난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보자는 의견이다. 옛날 왕조시대에는 나라님이나 동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줘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가난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시대다. 돈 많은 사람의 호의에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가난한 사람이 복지를 누리는 것은 자기 권리의 당당한 주장이다.
 
 
사진으로 남은 미국 유민도
 
도로시아 랭 「이주자 어머니」
 
1929년에 시작한 세계대공황. 1930년대 미국은 가난에 시달렸다. 많은 농민이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녔다. 현대판 ‘유민’이다. 미국 정부의 농업안정국(FSA)은 당대의 내로라하던 사진가를 모아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나라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현대의 유민도는 동료 시민한테 보여주고자 만든다.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의 사회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농업안정국 사진가의 작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의 「이주자 어머니」다.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어머니와 두 아이다. 아이는 엄마를 붙든 채 카메라를 등지고 서 있다. 엄마의 얼굴만 보인다. 그래서 어머니의 표정에 시선이 집중된다. 가난 때문에 힘들다는 고통, 하지만 어떻게든 가난을 이겨내겠다는 결의. 감동적이다. 보는 사람 마음을 울리는 사진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사진인 것도 같다. 서양격언에 “눈물은 빨리 마른다”는 말이 있다. 감정에 호소하면 효과는 빠르다.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왜 내 세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쓴단 말인가 불평하는 사람이라도, 이 사진을 보면 마음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그럴까? 아이의 꾀죄죄한 모습에, 엄마의 심난한 표정에, 마음이 흔들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뒷이야기가 있다. 도로시아 랭은 이 모자의 사진을 여러장 찍었단다. 엄마 표정이 어둡지 않은 사진도 있고, 아이들 얼굴이 잘 보이는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사진만큼 감동받지 않더란다. 유독 「이주자 어머니」만 주목받았고, 경제대공황을 대표하는 미국의 사진이 되었다. “왜 그리 감상적인 사진을 찍었느냐”고 쏘아붙이면 랭도 억울해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 사진만 좋아하는데 랭인들 어찌하랴.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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