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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까: 장애인의 권리와 장애에 대한 시선(1)

김태권
2017년 03월 14일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리페랭스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묘를 찾은 순례자들」
 
스위스의 바젤(Basel)이란 도시에 가보았다. 복지의 ‘끝판왕’ 같은 곳. 처음에는 놀랐다. 거리며 공원이며 박물관이며 어디서나 장애인과 마주쳤다. 몇달 지내며 깨달았다. 바젤은 장애인이 특별히 많은 곳이 아니라, 그저 인프라가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장애인이 마음껏 외출했구나. 우리 사회의 장애인은 집안에 갇혀 지낸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분이 참담했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장애인이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사회라면,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점자표지판은 드물고, 계단은 너무 많으며 휠체어용 승강기는 고장이 잦다. 저상버스도 아직 부족. 거리에 나서는 장애인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것이 장애인의 잘못일까?
 
리페랭스(Lieferinxe). 우리한테 생소한 화가다. 150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 남부에서 활동했다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것이 적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세바스티아노(Sebastiano) 성인의 묘를 찾은 순례자들」. 성당 안에 놓인 것은 성인의 유골함이다. 그 주위를 둘러싼 이들은 순례자들이다. 중세 사람들은 성인의 유물과 유골을 찾아가 병을 낫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그림 가운데 당당하게 서서 유골함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은 장애인이다.
 
이 작품에는 생각할 거리가 두가지 있다. 첫째, 그림 속 인물의 험난한 여정. 교통이 요즘 같지 않던 시대다. 순례는 비장애인에게도 고된 여정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존재할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그 힘든 길을, 그림 속 저 사람은 목발을 짚고 찾아온 것이다. 가슴에 사무치는 장면이다.
 
둘째, 화가가 장애인을 그리는 방식. 장애인을 놀림감 삼던 잔인한 시대였으나, 리페랭스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렇다고 장애인을 마냥 가엽게 그린 것도 아니다. 화면 중앙을 차지한 늠름한 모습. 화가는 장애인을 대상화하지도 타자화하지도 않았다.
 
 
장애인을 놀리는 잔인한 시선
 
안토니스 모르 「그랑벨 추기경의 광대」
 
리페랭스의 따뜻한 시선은 사실 예외에 가깝다. 서양미술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시선은 두고두고 잔인했다. 사회가 장애인을 잔인하게 대했으니까.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겼다. 높으신 양반들은 장애인한테 애완동물 돌보는 일을 맡겼다. 왜소증 장애인은 궁정의 광대로 취직하기도 했다. 어느 경우건 동물과 함께 사람들 앞에 나타나곤 했다. 비뚤어진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동물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일반인일까? 그건 ‘비장애인’의 주장일 뿐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살린다고 쳐도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나.) 아무려나 기분 나쁜 시선이다.
 
이 그림은 차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왜소증 장애인에게 일부러 큰 옷을 입힌 것부터가 잔인하다. 심지어 개와 나란히 세워놓았다. 마스티프(mastiff) 종의 개, 하필 몸집도 크다. 인간과 개가 비슷한 덩치로 보일 수밖에. 근육은 개 쪽이 더 발달한 것도 같다. 해도 너무한다. 장애인 광대를 놀리려는 속셈.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저 사람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왜 험상궂은 표정일까. 정말 화가 났을까, 아니면 높으신 양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일부러 화가 난 척 연기한 걸까? 어느 쪽이건 끔찍한 일이지만, 화가는 더 깊이는 파고들지 않는다.
 
「그랑벨(Granvelle) 추기경의 광대」라고 불리는 작품. 르네상스 화가 안토니스 모르(Anthonis Moor)가 그렸다. 그랑벨 추기경은 미술 애호가로 알려졌다. 그는 모르처럼 당대 잘나가던 작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추기경이라는 성직자가 왜소증 장애인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씁쓸하다. 당시 고위성직자가 종교생활과는 별 관계없고 주로 집안 잘난 덕을 보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랑벨 추기경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나는 의미심장한 조각글을 마주쳤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랑벨 추기경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오늘날 더 유명한 작품으로 남은 쪽은 정작 「그랑벨 추기경의 광대」 초상화”라나. 하하, 고것 참 쌤통이네. 나의 마음은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조금이나마 정의가 실현된 기분이다. 엉뚱한 방법으로라도.
 

공주처럼 당당하게
 
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부분)
 
처음 봐서는 복잡한 줄도 모르는 복잡한 그림. 도대체 무슨 장면인가? 그림 왼쪽부터 이상하다.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선 화가가 왜 우리를 바라볼까? 우리 쪽에 무엇이 있기에? 혹시 우리 쪽에 거울이 있어서, 자기 모습을 보고 그리는 걸까? 아니다. 자화상 속 화가의 모습은 보통 ‘왼손’에 붓을 잡는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오른손에 붓을 잡았다. 그러니 우리 쪽에 거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화면 중앙에 멀리 거울이 있다. 거울 속에 두사람이 있다. 아, 그렇다면 우리 쪽에 두사람이 서 있고, 화가는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이구나. 그림 중간에 서 있는 이들은 화가와 모델을 찾아온 게로구나.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다. ‘시녀들’이라는 뜻. 에스파냐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 도중, 어린 공주가 시녀들과 광대들을 거느리고 방문한다. 이 상황을 다시 벨라스케스가 그림으로 그렸다. 복잡하기도 하지. (그림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를테면 멀리 보이는 엉거주춤한 사나이는 방에 들어오는 걸까, 방에서 나가는 걸까? 수백년째 논쟁중이다.)
 
「라스 메니나스」가 미술사에서 워낙 중요한 작품이다보니 그림 속 인물의 이름이 모두 남아 있다. 일단 언급하지 말고 넘어가자.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에스파냐 귀족의 이름은 너무 길어 읽기도 힘들다.) 그림 오른쪽의 왜소증 장애인 두사람의 이름만 알아보자. 정면을 보는 사람의 이름은 마리바르볼라(Maribárbola). 개를 툭툭 차며 장난을 치는 이는 페르투사토(Pertusato).
 
이 사람들의 신분은 궁정광대. 공주의 놀이친구였다. 벨라스케스는 이 사람들을 불쌍하거나 기괴하게 그리지 않았다. 특히 마리바르볼라는 공주만큼이나 당당하게 관객을 마주 본다. 그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 해도 믿겠다. 벨라스케스의 시선은 장애인을 비장애인 못지않은 당당한 인간으로 그려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세바스티안 데 모라의 초상」
 
이 그림 역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다. 「세바스티안 데 모라(Sebastián de Morra)의 초상」. 당시 에스파냐 궁정의 광대였던 데 모라를 그렸다. 왜소증 때문에 길게 자라지 않은 다리를, 우리를 향해 들이민다. 저 강렬한 눈빛을 보라. 우리 관객의 동정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사람이 나다.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타자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장애인끼리 서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듯, 장애가 있는 내 몸을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한다.’ 데 모라는 당당하다.
 
캐리커처를 그리는 만화가 옵 드 벡(Op De Beeck)에게, 한번은 자기를 그려달라며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찾아왔단다. “눈은 작고 눈썹은 선 하나, 이마는 좁고 목은 보통사람의 두배, 얼굴은 부었고 입은 튀어나와 보였다.” 만화가는 당황했다. 캐리커처란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는 그림. 평범한 얼굴을 평범하게 그려도 ‘나를 왜 이렇게 잘생기지 않게 그리느냐’며 따지기 일쑤다. 혹시 모델에게 상처를 주게 되면 어쩌나. 만화가는 함께 온 비장애인에게 솔직히 물었다. “내가 어떻게 그려야 할까요?” 대답은 이랬다. “당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그려주시오. 대충 빼먹지 말고!” 비장애인을 대할 때와 다르게 대하지 말라는, 당당한 태도였다. 만화가는 큰 감동을 받았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볼 때면 나는 그 일화를 떠올린다. 벨라스케스의 의도는 여전히 논쟁거리. 그러나 나는 이 초상화가 세바스티안 데 모라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비장애인을 그리는 방식과 다르지 않게 데 모라를 그렸기 때문이다. 공들여 그린 초상화를 통해 우리는 데 모라의 강인한 정신과 당당한 기개를 만난다. 벨라스케스는 이런 식으로 당시 궁정광대들의 초상화 연작을 남겼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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