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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1회)

조우리
2017년 04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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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 춤처럼.
 
8년 동안이나 같은 춤을 추었다. 같은 노래에 맞춰, 같은 동작을 했다. 길었다,고 다인은 생각했다. 열다섯살에 처음 이 노래를 알았고, 노래에 맞춰 춤을 연습했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준희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준희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준희의 방에서 교복을 입고 이 춤을 추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여서 늦은 오후였지만 방에는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창을 등지고 춤을 추는 다인에게 준희는 말했다. 네 뒤에 조명이 비추는 거 같아. 그런 무대 같아. 준희가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부르며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그날로부터 8년이 지났다. 스물세살이 된 다인은 아이돌 걸그룹 ‘제로캐럿’의 멤버로 첫 단독콘서트를 아홉시간 앞두고 있었다. 데뷔 4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였다. 그에 맞춰 스페셜 앨범도 발매될 예정이었다.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서 다인은 이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이다. 더이상은 추지 않을 것이다. 다인은 다짐했다. 절대로.
 
다인, 루비나, 지유, 재키, 준의 다섯 멤버로 데뷔한 제로캐럿은 데뷔 멤버 중 지유와 재키가 탈퇴하고 새 멤버 마린을 영입했다. 김다인, 이수빈, 이지은, 홍재영, 송준희. 팬들은 지유와 재키가 없는 무대를 향해 다섯명의 이름을 불렀다.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마린은 여러번 윙크했다. 왜 꼭 본명을 부르는 걸까. 굳이 이름을 지었는데 말이야.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린, 최마린. 마린과 다인만이 알고 있다. 제로캐럿의 첫 단독콘서트는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며, 스페셜 앨범은 제로캐럿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다. 제로캐럿은 콘서트가 끝나면 활동종료를 선언한다. 그리고 다인과 마린만이 회사에 남는다. 다른 멤버들에 대한 계약을 회사는 연장하지 않는다.
 
지유와 재키의 탈퇴가 발표되던 날도 다인은 이 춤을 추고 있었다. 라디오 공개방송 현장이었다. 진행자가 말했다. 다인씨, 그 유명한 춤 있잖아요. 다인씨를 지금의 다인씨가 되도록 해준 그 춤. 그거 한번 보여주시죠. 진행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라디오인데, 춤을 추나요? 그렇게 묻지 못했다. 누군가 다인의 이름을 크게 불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다인의 이름이 적힌 피켓이 흔들리고 있었다. 팬분들도 원하시네요. 보여주실 거죠? 다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다인은 준비했다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오프닝은 다인이 춤으로 하자. 그리고 이어서 마린이 솔로곡 하나 하고. 김 실장은 두시간짜리 콘서트를 종이 한장으로 설명했다. 데뷔 후 제로캐럿이 발표했던 모든 노래가 콘서트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고작 스물일곱 곡이었다. 탈퇴한 지유와 재키의 파트는 마린이 맡을 것이다. 거기에 세 곡의 노래가 더해져서 다인은 춤을 추고, 마린은 노래를 하고, 루비나와 준이 듀엣 퍼포먼스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뒤에 앵콜곡으로 데뷔곡을 부르면 콘서트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게 끝이야. 제로캐럿은 끝이야. 김 실장이 말했다. 듀엣 퍼포먼스를 준비하라며 루비나와 준을 내보내고, 다인과 마린만 남아 있는 회의실에서였다. 데뷔 날짜를 기준으로 4년. 계약서에 적혀 있다고 말했다. 최대, 이게 최대거든. 버틸 만큼 버텼다는 거지. 김 실장은 앞으로의 계획이라며 이런 저런 서류를 보여주었다. 다인은 드라마에 출연할 것이고, 마린은 그 드라마의 주제곡을 부를 것이다. 그뒤에는 무슨 영화가 있고, 또다른 영화가 있고, 그런 이야기들. 마린은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았고, 다인은 재계약을 하고, 루비나와 준은 계약이 만료된다. 루비나와 준의 만료된 계약은 연장되지 않는다. 제로캐럿도 연장되지 않는다.
 
다인은 생각했다. 이제 춤을 추라고, 제로캐럿의 다인을 있게 한 춤을 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거절할 수 있다. 제로캐럿은 끝났으니까. 마지막으로 춤을 추기에 적당한 날이다. 무대 앞에는 제로캐럿을 연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두고, 조명을 받으면서. 무대 뒤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루비나와 준을 두고, 환호를 들으면서. 마린, 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글쎄. 아마도 처음부터?
 
마린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처음이라면 언제일까. 김 실장이 나간 뒤 회의실에서 마린과 단둘이 마주 앉은 다인은 다시 물었다. 제로캐럿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회사와 계약했을 때부터?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이런 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알았다고 해야 하나.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왜 그렇게 심각해? 그냥 이런 일은 흔한 일이잖아. 설마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벌써 두명이 나간 팀인데?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팀인데? 그때는 미리 설명을 들은 적이 있어? 그냥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곳이잖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재계약. 그렇게 말하던 마린의 얼굴을 다인은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준희의 앞에서 춤을 추던 날, 흥얼대던 준희의 목소리처럼. 언제나 춤을 출 때면 그 목소리가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던 열다섯의 자신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지유와 재키가 팀을 탈퇴한다는 회사의 발표가 있던 날, 바로 그날 아침까지도 제로캐럿 다섯명은 공동생활을 하는 숙소에 있었다. 데뷔 후 늘 그래왔듯이 거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정해진 시각에 아침식사로 샐러드 도시락을 먹었다. 같은 방을 쓰는 지유와 재키가 조금 늦게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특별한 것이 없는 아침이었다. 나는 오늘 라디오 공개방송 스케줄이 있어. 루비나는 필라테스 수업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암묵적인 순서대로 지유가 일과를 공유할 차례였지만 지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유가 입을 다물고 삶은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는 동안, 다인은 지유의 옆자리에 앉은 준이 지유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 있어? 다인이 물었고, 이상하게도 재키가 대답했다. 별일 없어. 아무 일도 없어. 지유가 그 말을 따라했다. 아무 일도 없어. 준이 이제 자기 순서라는 듯이 회사 연습실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왜 항상 그 순서였을까. 안녕하세요, 제로캐럿입니다. 제로캐럿의 다인입니다. 제로캐럿의 루비나입니다. 제로캐럿의 지유입니다. 제로캐럿의 재키입니다. 제로캐럿의 준입니다. 반드시 그 순서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데뷔한 뒤로 줄곧 그렇게 말해왔다. 무대에서는 언제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를 지켜 일렬로 섰고, 인터뷰를 할 때면 마이크를 꼭 그 순서대로만 넘겼다. 지유와 재키가 탈퇴한 뒤로는 마린이 그 자리에 있었다. 제로캐럿의 마린입니다. 마린이 인사하고 나면 언제나 준은 한박자 쉬고 인사를 이었다. 그걸 누구든 알아챌 수 있었다. 멤버 불화설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준은 알고 있었을까. 지유와 재키가 탈퇴할 거라는 걸. 다른 세 멤버들보다 먼저 회사에 들어와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유와 재키의 계약서는 달랐다는 걸. 준은 알고 있었을까. 지유에게서 들었을까. 그래서 그날 무슨 일이 있느냐고 지유에게 물었던 다인을 차가운 눈으로 보았을까. 지유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서. 준희야. 너는 알고 있었니?
 
그날 밤, 다인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다인은 숙소로 오는 차 안에서 지유와 재키의 탈퇴 소식을 들었다. 운전을 하고 있던 매니저는 그렇게 되었으니 알아두라고 했다. 일이 그렇게 되었고, 이미 그렇게 되었으니 알아두라고 했다. 조심하고. 그렇게 덧붙였다. 뭘 조심해요? 매니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 그렇게 물어보는 거. 그런 걸 조심하라고. 넌 데뷔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걸 모르니? 다인은 지유와 재키가 쓰는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이전에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싱글 침대 두개, 화장대 하나, 옷장이 두개, 지유의 파란 이불, 재키의 노란 이불. 그런데 이걸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지? 그게 언제였지?
 
라스트 러브. 나는 너를 잊지 못하고 있어.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나는 너를 자꾸 생각하고 있어. 내일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오늘도. 마이 라스트 러브. 라스트 러브. 제로캐럿의 데뷔곡 ‘라스트 러브’는 콘서트의 이름이기도 했다. 제로캐럿의 첫 단독콘서트이자 마지막 콘서트가 될 라스트 러브. 콘서트의 마지막 인사에서 제로캐럿의 활동종료가 발표되고 앵콜곡으로 부르게 될 라스트 러브.
 
노래는 끝났고, 다인은 춤을 멈췄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 저희 제로캐럿은 지난 4년간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제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여러분이 주신 사랑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이렇게 멋진 무대에서 벅찬 감동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게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여러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 멤버들은 저마다의 길을 갈 것입니다. 부디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로캐럿의 데뷔곡이자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마지막 곡, 라스트 러브.
 
함께 불러요. 다인은 그렇게 말하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그때 무대 위에서 다른 멤버들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객석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다인 자신은 어떤 얼굴일까. 어떤 목소리로 그 말을 하고 있을까. 그 말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함께 부르자고, 마지막 노래를.
 
 
(2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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